<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보여준 품격

전통과 자유 사이에서 드러나는 윤리.

by 찡따맨


"다 죽여버리자!" 격정 속의 절제


심심해서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다.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단순한 댄스 경연에 있지 않다. 참가자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오늘 다 끝장낼 거야.", "다 죽여버리자." 같은 말들을 내뱉는데 말과 몸짓 모두가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들의 눈에는 진심과 살기가 담겨 있고, 어깨에는 국가대표라는 묵직한 자존심이 걸려 있다. 댄서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생존과 삶의 무게를 말해준다. 그렇게 이들이 보여주는 춤은 단순 아름다운 동작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이자 무기 때로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방식이 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춤은 사뭇 다르다. 형식은 파괴되고, 복장은 자유로우며 감정은 직설적이다. 그렇다고 하여 기존의 전통과 도덕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는 자기 단련이라는 거대한 윤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으로 밤을 보내야 했는지, 한 동작에 어떤 감정을 얼마나 담아야 하는지, 이는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도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몸짓에는 거짓이 없으며, 동작 하나하나에는 수백 번의 훈련 끝에 만들어진 질서이기도 하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참가자들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모든 감정을 실은 무대가 끝나고, 판정이 내려지면 이들은 결과 앞에 담담히 고개를 숙인다. 물론 판정에 불복종하는 사람들이 편집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때로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상대방의 승리를 기꺼이 인정하는 모습에서 놀랍도록 순수한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강한 승부욕과 순수한 승복. 이 극적인 대비는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예능의 의미를 갖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한다.



춤은 누구의 것인가?


일반적으로 춤이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는 전통과 하나는 자유로움이다. 전통 발레는 고요하고 정확한 선을 추구한다면, 현대 무용의 추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쪽 세계는 감상과 해석이 필요한 예술적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만큼 각종 기호와 은유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때로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긴 시간 동안 훈련을 거쳐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안무가와 무용수가 나누는 창작의 과정은 더욱 경건하게 다루기 일쑤다. 마치 이 전통의 영역에 자리한 춤은 미술관의 작품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만들어진 것이자 보호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로움이란 이미지가 있다. 거리의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비트 위에서 신체가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이 즉석에서 터져 나오는 즉흥적인 세계닼. 월드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는 이러한 춤을 담고 있다. 힙합, 크럼프, 팝핑, 락킹, 하우스, 재즈 등 이름도 다양하다. 이 춤들은 화려하면서도 직관적이며 무엇보다 정제된 게 아닌 살아 있는 생생한 움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춤은 하나의 예술적 도구로 훈련된 게 아닌 일상 속 감정과 에너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분출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춤을 배운다는 게 아닌, 스며들듯이 받아들이고, 규율이 아닌 태도와 자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벽화를 방불케 하는 그래비티가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듯이 거리의 춤 또한 무대가 아닌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를 정의한다.


사실 춤이 품고 있는 두 가치가 사회 안에서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춤은 오랫동안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이분법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무용이란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클래식과 발레, 현대무용처럼 무대 위의 관객 앞에서 경건하게 공연되는 형식을 떠올리게 되었으며, 스트릿 댄스나 대중문화 속 춤은 오락, 유희, 비전문적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짙다. 심지어 예술계 내부에서도 어떤 춤은 제대로 된 예술로 간주가 되는 반면에 어떤 춤은 단지 재미에 머문다는 무의식적인 구분이 존재한다. 이는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1화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같은 댄서임에도 한국팀 댄서 아이키가 틱톡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러 댄서들에게 무시받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만든 춤


과거 프랑스에서는 무용을 제도적으로 분리하여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문화를 국가 정책 중심 의제로 떠올렸다. 당시 문화부 장관은 혁신과 창조성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현대 무용을 새로운 국책 예술로 제도화하였고, 클래식 발레는 보수적인 예술로 밀려나게 되었다. 물론 이는 프랑스 역사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럽 궁정에서 제도화된 발레는 신체의 움직임을 연출하는 게 아닌, 당시 사회의 이상적 인간상과 권위의 상징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루이 14세가 창설한 왕립 무용 아카메디는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예술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 다시 말해, 궁정에서의 춤은 단순 오락이나 유희가 아니며 질서와 위계를 형성하기 위한 신체적 언어였다.


미테랑 정부는 무용의 다양성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현대 무용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렇게 현대무용이 뜨는 반면에 클래식 발레는 시대에 뒤처진 보수 예술로 밀려났고, 동시에 거리에서 태어난 춤들이 비제도권이라는 낙인 아래 예술 정책에서 거의 배제되었다. 여기서 따라오는 문제는 정부 보조금이나 공연장 지원은 주로 제도권 무용단체와 현대 무용 작가들에게 집중되었으며, 힙합과 스트릿 댄스는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춤이라는 것은 상당히 자유로워 보이지만 이 또한 정치와 문화적 위계에 따라 자리가 잡았던 것이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힙합 댄스 강사에게 국가 공인 자격증 제도를 도입하려는 법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며,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브레이크댄스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이는 스트릿 댄스도 제도권 예술로 편입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움직임이기도 하다. 그렇게 비제도권으로 분류되던 춤이 다시 제도의 의하여 정의되고 있다는 점은 무용과 춤 그리고 자유와 규율, 중심과 주변에 대해 다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제도가 춤을 품기 시작한 지금, 그 안에서 어떤 예술은 살아남고 또 어떤 예술은 다시 희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움직임은 어디서 오는가?


물론 이러한 흐름을 단순 정책 문제로만 환원시킬 수 없다. 예술과 비예술 그리고 중심과 주변, 고급과 저급이라는 사회적 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누가 춤을 출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춤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지, 어떤 춤이 가르쳐질 가치가 있는지 등의 질문은 단지 예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교육과 제도, 미디어 나아가 계급 감각으로도 연결된다. 발레리나는 백조가 되어 호수 위를 나는 꿈을 꾸는가 하면, 스트릿 댄서는 자기 동네 지하철역 앞에서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현실. 이 두 삶은 사회가 춤을 대하는 방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이 오랜 경계를 뒤흔든다. 거리의 춤이 중심 무대로 올라왔고, 그것도 여성 댄서들이 전면에 서서 전두지휘한다. 이들은 예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춤이란 어떤 언어인지 시청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단순 누가 더 우아하게 춤을 추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진실하게 움직이는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춤의 가치는 움직임과 배경 그리고 내면의 곁에서 나온다는 걸, 이 프로그램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춤은 두 세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공연장에 걸린 커튼과 길거리 벽의 그래비티 사이 어느 한쪽이 더 고귀하거나 덜 진지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자, 각자의 맥락 안에서 고유하게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며, 결국 춤은 어느 무대에 오르든 진심으로 몸으로 말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국민의 힘의 태도


2025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 힘이 보여준 태도는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치열하게 경쟁한 댄서들의 태도와 정반대였다. 표면적으로는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으나, 이어진 발언과 행동은 사실상 불복에 가까웠다. 일단 패배한 정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지자들이 실망에 빠지지 않도록 단호하고 또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책임 있게 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태도다. 하지만 국민의 힘은 마지막까지도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김문수 후보는 6월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지하 1층 캠프에서 해단식을 열었다. 이날 현장에는 '사전 선거 원천 무효'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지지자들이 모여 있었다. 김문수 후보는 무대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린 뒤 "오늘 국민 대부분이 원하지 않았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역사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승복이 아니라 국민의 선택을 부정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권성동 원내대표 또한 "이재명 후보가 도덕적, 인격적으로 얼마나 결함이 많은가? 사법 리스크는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민주당 후보로 선정된 뒤 당선을 위해 잡음 하나 없이 뛰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의 사법장악과 일방적 독재 행태가 걱정된다." 같은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패배한 정당은 자기반성 그리고 전략적 재정비를 다시 할 필요가 있다. 김문수 후보를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거 패배 이후 깔끔한 승복 후에 단발적인 감정을 호소할 게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지금은 졌지만,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정도의 반성과 성찰의 메시지를 보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재명 독재 체제가 시작됐다며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메시지를 쏙 빼놓고 있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아직까지 네거티브 전략을 고수하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은 아직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듯하다.



나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기대했다.


"저는 이번 대선 패배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국민의 선택이기에 저는 받아들입니다. 이는 저를 포함한 우리가 더 많이 배우고 돌아볼 시간을 준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더 낮은 자리에서 국민의 삶을 들여다 보고, 지역 현장에 귀를 기울이고,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는 더 공정한 대한민국, 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민주주의 질서와 선거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 보상받고, 기업이 더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투는 게 아닌 협력과 해결의 길로 나아가겠습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다시 뛰겠습니다. 우리는 권력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그럼 20,000."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말한다. 진심을 다해서 싸웠다면, 결과 앞에서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의힘 또한 "우리는 졌지만, 국민의 선택을 옳았다." 정도의 말이라도 할 줄 아는 게 야당의 품격이자, 정당 정치의 책임이기도 한데, 이 사람들 태도를 보면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 할 것 같다.

아 나는 다시 운동 시작해야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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