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어디서 피어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개나 꽃밭 등을 향해 아름답다고 외친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도 사람 구실을 하려면, 무지개와 꽃밭과 같은 자연을 향해 "아름답다!"라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진달래와 개나리 그리고 보도블럭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 비가 그친 후 피어난 무지개 그리고 산책로 으슥한 곳에서 내 눈치를 보며 짝짓기 하는 고양이까지. 자연 속 존재들을 보며 "아름다워."하고 무표정하게 집으로 돌아올 정도의 사회성을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아름다움이라는 건 시력 테스트 하듯 눈으로 꼼꼼하게 스캔할 때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실수로 친구의 스마트폰을 하수구에 떨어뜨렸을 때가 있었다. 스마트폰은 박살 나, 500년 뒤에 후손들이 고대 유물처럼 다룰 게 뻔할 정도였다. 나는 하수구에 들어가는 시늉을 할 정도로 미안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괜찮아. 스마트폰은 하나 더 살 수 있지만, 너라는 친구는 돈으로 살 수 없잖아?"라며 웃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아름답고 찬란한 무지개가 10,871개 정도 떠올랐다. (사실 방금 지어낸 이야기다.)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낙서장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은 멋진 여행 사진, 누군가에게 찍힌 사진 등을 올리지만. 나는 오늘 먹은 미트볼, 판교 멋쟁이 형아가 우산을 빌려준 이야기, 내가 책을 사놓고 읽지 않고 있고 게으름 피우는 모습, 방구석에 누워 천장을 찍은 사진 등 잡다하고 사소한 것들을 올린다. 팔로워는 1,000명 정도 되는데, 대분의 사람들은 내가 올리는 글을 보고 특별히 반응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내 글은 스크롤을 내리며 손가락 운동을 하기 위한 존재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나아가 인스타그램은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한 장이기도 하다. 1,000명의 팔로워인 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부터 대학원생, 사업가, 간호사, 치위생사, 변리사,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 필라테스 강사, 눈썹문신, 틱톡커, 인터넷 방송 BJ,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무원, 비서, 호텔리어, 소극장 연극 배우, 승무원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 10명 남짓의 소수는 상당히 너그러운 반응을 보인다. 1,000명 중 10명이니까, 너그러움을 품은 사람을 대한민ㅁ국의 1% 정도로 보면 될까?
사실 나는 대단한 글을 쓴 것도 아니다. 머릿속에 쌓인 잡념들을 화장실에서 볼 일 보듯이 털어낼 뿐이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긍정적인 반응이 오면 사기꾼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면 누군가의 헛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긍정적인 무언가를 뽑아내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바쁘고, 지쳐있기 때문이다. 특히 맛집에서 줄 서는 것만으로도 하루 소진할 수 있는 인내력의 90%를 소모하게 되는데, 누군가의 헛소리를 끝까지 들어줄 만한 인내력을 발휘한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일이다.
여기서 너그러움과 친절은 구분해야 한다. 친절은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이라면, 너그러움은 문에 머리를 세 번이나 부딪혀도 비웃지 않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완전함 그 자체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도 너그러움을 품고 있다. 장 발장이 은촛대를 훔치다 들켰을 때, 미리엘 주교는 그를 혼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주려던 걸 깜박했네 ㅎㅎ;;;" 같은 말을 하며 품어주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두 사람이 공범이 아닌 이상,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어쩌면 너그러움은 보다 고차원의 영역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순간의 너그러움이 장 발장의 인생을 바꿔놓은 게 아닐까. 은촛대라는 오브제 하나로 누군가의 인생을 갈아엎은 것인데, 이건 이케아에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인의 애인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결혼해도 되겠군."이라고 자연스럽게 말을 뱉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아 물론, 누군가의 낯선 칭찬에 격하게 반응하는 순간 오만해질 거 같아서 답장은 안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자주 혼남;
아! 지금 문득 생각해 보니 특별히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도 너그러운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 사진을 보며 "조명 각도가 이상하네", "색맹인가?" 같은 비판을 속으로 삼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생각을 나에게 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너그러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자연에서만 피어나는 게 아닌, 너그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게 아닐까? 꽃이 물과 햇볕을 받아야 피어날 수 있듯이, 아름다움은 너그러움이라는 토양이 갖춰져야 건강하게 필 수 있는 것이다.
서로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서툰 점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없다. 도시 풍경을 색다르게 만드는 랜드마크 건물, K-POP이 전 세계로 울려 퍼지고 있어도,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뚫어도, 대한민국이 월드컵 우승을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움은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