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들은 KTX 화장실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을까
오늘 KTX를 탔다.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기차 객실 안은 가득 차 있었고, 객실 입구 쪽 복도 또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표를 끊을 때만 하더라도 입석도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입석은 바쁜 현대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기이하면서도 불합리한 처우 중 하나다. 복도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리를 잡고 존엄을 지키여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 눈을 속일 수 없지. 누군가는 소중한 캐러이를 붙잡은 상태로 서 있었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지만 정신은 균형을 잡는 데 쏟고 있었다. 나는 그 어딘가에 있는 그림자처럼 아무 곳에서 속하지 못한 채로 객실 입구 통로 쪽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다 무수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며 들어온 어느 여성은 내 앞을 지나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머릿결 끝이 흔들리며 내 소매를 스치는 순간, 어떤 향기가 허공을 가르며 내 인중을 간지럽혔다. KTX 특유의 떨림 때문이었을까, 찐따 특유의 긴장감 때문일까. 그 순간 세상은 느리게 흔들렸다.
그녀가 팔을 들어 손끝으로 벽을 두드리는 순간, 그 팔꿈치와 내 손등 사이는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간격이 있었다. 그 거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팽팽하게 당겨진 실에 가까웠다. 나는 숨을 고르며 몸을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서 있었던 곳이 바로 여자 화장실 앞이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청초한 옷차림만 보자면, 생애 단 한 번도 화장실을 가본 적이 없을 것만 같은. 아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화장실과 관련된 것과는 무관한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화장실을 향해 서 있었다. 그녀는 문을 두드린 뒤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그녀의 다리를 훔쳐보는 음흉 음침남 같았고, 고개를 들면 어지러워서 멀미 올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다 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나는 그제야 작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내 숨 안에 담겨져 있던 것은 그녀의 아주 연한 향수와 내 손등 위에 남겨진 그녀의 온기 정도랄까.
그것보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다른 여성이 볼일을 보고 나오길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니 나는 여자 화장실에 실수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는 가성비충이기 때문에 조조 영화를 자주 보는데, 이른 아침 한적한 영화관에 자리를 잡은 다음에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간 화장실은 남성용 소변기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칸막이로 가득 채워진 공간. 독서실이나 모텔 복도를 연상케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 화장실은 조금 다르네? 리모델링이라도 하는건가?" 같은 생각으로 특정 칸으로 문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양변기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앉아 소변을 누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톡, 톡, 톡,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하이힐 굽이 타일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여기가 여자 화장실이었구나. 그래서 다 칸막이로 이루어져 있던 것이었구나."
그 순간의 당혹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한 순간에 범죄자로 몰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나는 칸막이 안에서 숨을 죽인 채, 탈북자마냥, 몸을 움츠렸다. 소변을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바지 올릴 생각은 커녕, 물 흐르는 소리, 핸드백을 여는 소리 등등 모든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그녀가 쾌변하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왜냐명 영화 상영 시간이 조금 지났거든. 결과는 별 탈 없이 빠져나와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그 이후부터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그림만 보지 않고 글씨까지 함께 읽고 들어가게 되었지.
무튼, 다시 KTX로 돌아와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잡이를 돌리고 밀고 당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 뒤에야 문이 접히며 열렸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면, 그녀는 바로 내 앞으로 서게 되는 묘한 구조였다. 그 찰나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내 눈가를 스칠 때 즈음 그녀는 다시 내 앞을 지나쳤다. 머릿결에서 다시 한 번 희미한 향기가 풍겨왔으며, 그 속에는 비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다음은 빨간색 등산복을 입으신 아주머니가 복도를 따라 다가왔다. 아주머니가 품은 빨간색은 촌스러움보다는 활기차고 밝은 단풍의 기운을 드러내는 듯했다. 다만 걸음걸이에는 앞선 여성과 다른 의연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사람이니까 화장실에 가는 건 당연하지." 같은.
아주머니가 화장실 앞에 이르자 방금 전 여성처럼 문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톡톡톡. 경쾌하면서도 주저함이 없는 호전적인 노크 소리. 입구 앞 모든 사람들에게 볼일을 보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 나는 화장실 문지기가 된 것처럼, 이 좁은 길을 관리하는 놈마냥 입을 열었다. "안에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나는 입석표를 끊어 이곳에 서 있는 승객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통제하는 안내자이자 화장실의 상태를 알리는 비공식 관리인이 된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내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손잡이를 옆으로 젖힌 뒤 문 가운데 경첩 부분을 밀었다. 그러자 화장실 문이 중간에서 접히며 열렸다. 그 순간 안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다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머니는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갔고, 문을 다시 접히며 닫혔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 20대에서 30대 정도의 여성 5~6명이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동일하게 "안에 아무도 없어요." 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젊은 여성들 중 그 누구도 빨간색 등산복의 아주머니만큼 화장실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여성은 시원하게 볼 일을 보지 못했는지,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문제가 뭐였을까? 일단 둘 중 하나다. 화장실이 지나치게 불편했거나, 문 앞에 서 있는 내가 불편했거나. 당시 KTX 입석표를 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여자 화장실 앞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녀들이 안에서 무엇을 하든 나는 문 앞에 있어야만 했다. 발을 디딜 곳이 없었거든. 그렇다보니 화장실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보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나서 들리는 천의 마찰음, 물이 흐르는 소리, 지퍼 올리는 소음, 수도꼭지를 여는 삐걱거림 등등까지 모든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그 순간 묘한 생각에 빠졌다. 어쩌면 나도 어벤저스 능력자인걸까?
잠깐 에어팟이라도 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에어팟을 끼면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길을 막게 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그려지겠지. 그렇게 나는 그냥 서 있는 상태로 내 귀에 기차 소리를 담아보려 최대한 노력했다.
어떤 여성은 손을 오래 씻었다. 물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샤워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나를 의식해서 그런거겠지. 아니면 최대한 청결하게 나가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여성은 화장을 고치기도 했다. 파우치를 여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렸거든. 나가기 전 자신을 가다듬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화장실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이유가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그녀들이 화장실에서 서둘러 나온 이유, 급하게 들어갔다가 급하게 나오는 이유가 문 앞에 서 있는 찐따남 때문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문이 열렸을 때 나는 살짝 보았다. 아니,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것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 그 불빛은 내가 서 있는 복도보다 환하고 밝았다. 차갑고 무자비한 백생광이 그 좁은 화장실을 남김없이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백색광은 하얀 변기의 표면 그 위에 미세한 물방울 자국까지도. 나아가 바닥에 낀 먼지와 떄의 흔적까지도 드러낸 정도로 환했다. 그렇게 여성들은 치마를 걷어 올린 자세, 바지를 무릎까지 내린 모습, 볼일을 보는 동안의 미묘한 표정 변화, 안도하는 순간의 이완 나아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화장이 조금 번진 눈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 앉아 있을 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자세까지 모두 그 빛 아래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프릴 블라우스를 입고, 섬세하게 화장을 하고, 우아한 향수를 뿌려도, KTX 화장실은 그녀들에게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화장실은 어두워야 한다. 적어도 간접조명을 통하여 은은하고 부드럽게 드러내야 하는 곳이다. 가능하다면 희미한 촛불 같은 빛이나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여리고 여린 자연광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한껏 꾸미고 나온 옷차림 속에 감춰진, 자신의 육체적 필연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맨살을 부드럽게 감싸줄 때에야 어둠이 육체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어줄 때에야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동물적인 행위가 어둠 속에 묻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수치로 여기지 않고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어둠은 동물을 인간처럼, 비천함을 고귀함으로 바꿔주는 힘을 갖고 있다. 생각해보니 나 같은 찐따와 잠자리를 했던 취향이 독특한 전 여자친구는 나에게 무조건 불을 끄고 해야한다며 박박 우겼는데 그게 이 이유이기도 하겠지.
물론 KTX 화장실이 밝은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이니 위생과 청결이라는 명목 하에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간을 환하게 만들어야지. 하지만 위생과 청결이라는 가치만 쫓느라 지켜야 할 또 다른 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은밀하게 마주해야 하는, 사적이면서도 마지막 존엄이라 할 수 있는 그 영역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여자 화장실 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젊은 여성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 것은, 문을 열자마자 마주치는 자리에 서 있는 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밝은 빛이었다는 것을. 아니먄 말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