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 때까지만 하자
나는 정말이지 건전한 인간이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야채를 마시고 초콜렛을 까먹으며 산책을 한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아침엔 뭘 박살 낼까?" 같은 생각을 하며 가볍게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이번 주말은 완전히 망가졌다 ㅠㅜㅠㅜㅠㅜㅜㅠㅜㅠㅠㅜㅠㅜㅠㅜㅠ
이 모든 원인은 게임이 아니다!! 토요일부터 패배를 하지 않은 게 진짜 원인이다!
나는 승부욕이 강한 편은 아니다. 나는 “빨리 끝내고 책이나 읽어야지.", "적당히 즐기고, 내 할 일을 해야지." 같은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게임은 내 삶을 지배하지 않는다. 게임으로 즐기되, 게임이 내 일상에 끼어드는 순간 가차 없이 끊을 줄 아는 강인한 인간이다. 조금 더 오바하자면, 내가 게임을 대하는 태도, 철학은 학부모 모임에서도 모범적인 표본으로 소개될 것이다!!
학부모 모임에서 여러 어머님들이 게임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
"아니, 애들이 게임만 하고 끊질 않아요!"
"게임 중독이 문제예요! 누가 모범을 좀 보여줘야 하는데!"
그때 어떤 사람이 고민을 토로한 어머님의 어깨를 두드린다.
"저기.. 찡따맨이라고.. 모범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 모든 학부모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린다.
"게임을 '질 때까지만' 하는 것. 그것이 찡따맨의 철학입니다."
어떤 어머님이 말한다.
"찡따맨!?!?? 이거야!! 이걱!!! 우리 애들이 본받아야 할 태도야!!!!"
학부모 모임에 홀로 있던 어느 아버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린다.
"게임을 즐기되, 패배했을 때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현실에 있었다니..!! 찡따맨!! 그는 누구인가!?!?!?"
이제 찡따맨은 학부모 모임에서 '건전한 게이머의 표본'으로 떠오르고, 어떤 부모는 나를 자기 아이들의 롤모델로 삼을 것이다.
"아들아.. 너도 저 찡따맨처럼 패배를 받아들이고, 승리의 여운을 즐길 줄 알아야 해!"
그런데 찡따맨의 멋진 게임 철학에도 흠이 있다. 지지 않고 계속 이기면 문제라는 것이가 ㅜㅜㅜㅜ. 계속, 또 계속, 또 또 계속.. ㅠㅜㅠㅜㅠㅜ
초반에는 정말 즐거웠다. 나를 향한 팀원들의 칭찬.. 나를 죽이질 않아서 패배했다는 상대팀의 가소로운 푸념... 그런데 몇 시간 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덫이다!! 나는 원래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반응 속도? 그냥 나무늘보 그 자체다. 전략적 사고? 초등학생이랑 체스하면 내가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이기고 있다. 대체 왜?!
그렇게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게임은 질 때까지 해야 하는데, 패배가 오질 않는다. 게임이 나를 풀어주지 않는다. 이건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저녁 식사 같은 느낌이다. 이미 배가 터질 것 같은데, 누군가가 계속해서 요리를 들고 오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언제 패배할 수 있을까? 나에게 패배란 없는 걸까..? 어쩌면 게임사에서 최근 이용자 수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난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상대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사실은 인간이 아닌, 플레이어들에게 승리라는 도파민을 충족시켜주고자, 대신 져주기 위해 만들어진 AI는 아닐까?
나는 점점 패배를 원하기 시작했다. 승리가 계속되니 게임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흔히 '승자의 여유'라는 말을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패배자의 여유'였다.
빨리 패배하고 쉬고 싶다 ㅠㅠ
그렇게 나는 패배를 원했다. 패배를 통해 주말의 자유를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패배는 긴 시간 동안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오버워치 캐릭터를 조종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오버워치가 나를 조종하는 기분이다.
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나를 플레이하고 있는 기분.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이런 걸까?!?!?!? ㅠㅜㅠㅜㅠㅜ 무섭다 무섭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