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과 전시의 경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
누구에게나 낯선 시선을 받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SNS에 업로드 하거나, 하루 중 가장 아름답거나 재미있는 순간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리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연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처음 만났을 때의 짜릿한 긴장감이나 설렘이 희미해지곤 합니다. 이는 커플 데이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건전하게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때로는 상대와의 섹스 장면을 제 3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고개를 들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전시욕에 기인한 변태적 행위' 정도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복잡한 동기가 숨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뭐지?
오랫동안 맞팔이었지만, 자주 소통하지 않는 여성이 DM을 보냈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밝게 웃는 평범한 얼굴, 하지만 메시지 창에 떠 있는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라는 문구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나는 망설이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상 속 그녀는 부끄러운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가녀린 그림자를 드리운 채, 미세하게 떨리는 눈꺼풀은 수줍음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과 따뜻한 미열이 번지는 숨결은 남성의 은밀한 곳을 감싸고 있었다. 남성의 숨소리가 얕게 떨릴 때마다 그녀는 더욱 천천히, 확고하게 깊은 곳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매끄러운 움직임 속에서도 어딘가 서툴고 어색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저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고, 남성이 절정에 다다를 때 즈음, "이제 그만 찍어." 라는 여성의 말과 함께 영상은 종료되었다.
물론 나는 1년에 3~4번 정도 SNS 맞팔인 여성에게 야한 사진 또는 동영상, 묘한 음성 메시지를 받는다. 소수의 여성분들이 나 같은 찐따에게 이걸 보내는 이유는 내가 섹스에 대해 진지하게 떠든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좋은 마음보다 감사함만 느낄 뿐이다. 만나본 적도 없는 나를 이렇게 믿고 보내주다니. 그런데 얼굴까지 보여주는 영상은 처음이라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잘못 보내신 것 같은데."
볼 거 다 보고도 뒤늦게 말하는 찐따..
그녀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어때요? 저 잘하죠?"
문장을 읽는 순간, 손끝이 움찔했고, 생각보다 천천히 타자를 쳤다.
"네. 잘하시네요."
그녀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실망."
뭐지? 왜 반말? 찐따인 날 무시하는건가!?
부들 부들...
하지만 침착하자..
"저한테 보낸 거 맞아요?"
"네. 실망이에요."
그녀는 여전히 가볍게 답했다
뭐지? 내 고추라도 보내줘야 하는건가? 난 싫은데?
"뭐가 실망이에요?"
"답장이 성의 없어서요."
그녀의 메시지는 짧고 간결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하나? 아니면 이제부터 메시지를 무시해야 하나?
"아~~~ 제가 당황해서요. 얼굴까지 다 나오는데 괜찮아요?"
"네. 뭐 어때요. 맞팔한 지도 오래됐고, 이런 거 저장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상대의 태연한 태도에 당황스러웠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녀가 실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여, 나는 장난스럽게 답했다.
"오~ 역시 잘 빠시.. 아니..ㅎㅎ 사람을 잘 보시네요!!"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답장이 도착했다.
"근데 끝까지 넣어야 목구멍에 닿아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아쉬운 내색하지 않고 그 순간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남성분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영상 속 분위기를 보면~ "
그렇게 나는 찐따 본능을 살려 어떤 부분이 아름다웠는지 조잘거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사랑하는 행위를 누군가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마음은, 쉽게 표현해 증인을 요청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증인의 역할은 외부인이라는 낯선 시선을 바탕으로 둘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오래된 연인 관계는 상대를 익숙하게 여겨, 처음에 매력을 느꼈던 순간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던 사람의 욕망 어린 눈길이 파트너에게 쏟아질 때, 우리는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떨림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내 집이 얼마나 멋진 공간인지 잊고 지내다가, 초대받은 손님들이 “짱짱 멋있는 집이네요!”라고 감탄할 때 비로소 그 집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구조는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 이라는 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결투로 인한 42일간의 가택 연금형을, 오히려 방 안에서 여행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편안하고 익숙하기 짝이 없던 자신의 방이, 낯설게 바라보니 전혀 새로운 공간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침대 모서리를 산처럼, 구석구석을 미지의 세계처럼 탐험하면서 지루함과 단절감에서 벗어났습니다. 누군가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이 공간을 벗어나거나, 연인에게 질려 바람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스트르의 생각을 통해 오히려 지금 여기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것이, 내 곁에 있는 것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메스트르의 방법을 섹스에도 적용시키면 이와 같습니다. 내 파트너가 낯선 이에게서 느껴지는 욕망 어린 시선을 받을 때, 나 역시 다시금 그 사람을 낯선 존재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손목이나 귓볼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있는지, 하늘을 보며 어떤 생각에 잠기는지,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 등을 생각해보면 궁금한 것은 끝이 없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으니까”라는 말에 기댄 채 수많은 호기심을 질식시켜온 것입니다. 그런데 제 3자의 시선이 조금만 비추어지면, 나 역시 그 호기심을 다시 되살릴 수 있습니다. 길들여진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희미해졌던 설렘과 탄성이, 제삼자가 발하는 욕망의 눈빛을 통해 다시금 자극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개나 전시가 반드시 변태적인 외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나, 섹스 클럽이나, 고속도로 임시 주차 구역에서 노출을 시도하는 일의 이면에는 “다시 한번 파트너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보다, 그들의 시선이 만들어줄 새로운 틈을 통해 파트너와의 관계를 재발견하겠다는 의지에 더 가깝습니다. 드 메스트르가 보여준 <내 방 여행하는 법> 방식처럼, 떠나거나 외부에서 새로운 물건을 찾지 않아도, 마음의 눈을 달리 뜨면 익숙함에 가려진 매력을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낯선 이의 시선을 즐기고 싶어지는 이유는, 오랜 시간 함께하며 매너리즘에 빠진 관계를 다시 한번 눈부시게 만들기 위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내 곁에 있는 상대방의 지도를 다 그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사람의 삶은 아직 무수한 빈 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낯선 시선은 그 빈 칸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강렬한 자극제입니다. 이는 단순한 관음증이나 노출증과는 다른 차원에서, 서로의 매력과 관계의 깊이를 재발견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새삼 처음에 왜 서로에게 끌렸고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를 생생하게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외부에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닌 내 안에 잠든 새로운 시선을 깨우는 일이야말로 낯선 시선을 즐기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아 빨리 양치하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