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모욕
우리는 일상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분노를 느낍니다. ㅂㄷㅂㄷㅂㄷㅂㄷ 가볍게 "찐따야"를 넘어, "개새키.", "쉬발럼아" 같은 막말을 들으면 머릿속은 불쾌함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커플들은 섹스할 때만 모욕적인 표현을 즐기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서는 안 된다고 배운 욕설을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할 때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분명 역설적으로 다가옵니다. 일상에서 상대를 경멸하거나 혐오할 때 쓰는 말이, 가장 친밀한 순간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를 단편적으로 보면 부도덕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모순적인 충동 뒤에는, 평소 억눌러 왔던 욕망의 해방을 누리고 싶은 것일 지도 모릅니다.
침대에서의 열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그녀는 베개를 끌어안고 나를 바라보았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살며시 떨리며 커다란 눈망울은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오늘따라 더욱 촉촉해 보였고, 미세하게 올라간 눈꼬리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콧날은 곧고 정교하며, 조그만 입술은 막 깨어난 듯 살짝 부어올라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입술 가장자리에 맺힌 미소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이었다. 그런 그녀는 내가 다시 덮칠 것 깨달았는지, 입술을 가볍게 깨물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욕 같은 거 안 하지?"
목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은근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가끔 해."
"진짜? 언제?"
그녀의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는 반짝였고, 호기심이 가득한 눈길이 나를 향했다. 놀란 듯한 표정 속에서도 어딘가에 장난기가 느껴졌다.
"음..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 그때 나 자신에게 '븅신~' 이러면서 욕하지."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몸을 돌려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피부는 유리처럼 매끄러웠고, 희고 고운 볼에는 옅은 붉은빛이 감돌았다. 긴 속눈썹 아래에서 커다란 눈동자가 천천히 깜빡였고, 눈썹은 가늘고 반듯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손가락 끝으로 내 팔을 툭툭 건드렸다.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한테 욕해봐."
"왜?"
"그냥. 듣고 싶어서."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동자가 반짝였고,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나는 한쪽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말했다.
"알았어. 아이큐 두 자릿수 멍청아."
"야.. 싸울래? 그런 거 말고."
그녀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볍게 찌르며 토라진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늘 이렇게 작은 감정을 표정과 행동으로 풍부하게 드러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어떻게 욕을 할 수 있지? 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뭐? 뭘 하라고??
그녀는 입술을 한 번 오므렸다가 다시 풀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썅년아, 걸레 같은 년아."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긴 속눈썹 아래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상대를 지그시 바라봤다. 장난인지, 시험인지, 아니면 그저 호기심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어딘가 짓궂으면서도 능청스러운 태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폈다. 장난을 치는 건 분명한데, 그 눈빛 안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어딘가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왜? 너는 평소 욕 들을 일이 없어서 욕을 먹고 싶은 거야?"
"웅.. 역시 똑똑해! 한 번만 해봐."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아이가 장난을 치듯 순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안에는 묘한 긴장감도 엿보였다.
나는 그녀의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며 잠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침대 옆에 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기다려봐.."
"뭐 해?"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바라보기 위해 두 손으로 베개를 꼭 끌어안은 채 상체를 살짝 일으키며 내 볼과 그녀의 볼이 맞닿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며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긴 속눈썹이 떨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따뜻한 숨결이 미세하게 내 뺨을 스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눈길은 스마트폰 화면을 향했지만, 가끔 나를 힐끔 쳐다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리는 게 느껴졌다. 때로는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고, 발끝이 이불 아래에서 살짝 움직였다. 기대와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잔잔하게 귀에 닿아, 마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썅년, 걸레만 외치면 재미없잖아. 다른 재미있는 욕 좀 찾아볼게. 기다려."
그렇게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내 옆으로 몸을 더 밀착시켰고 따뜻한 체온이 나에게 가볍게 스며들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숨결은 잔잔하게 퍼졌고, 그녀의 손끝은 내 팔을 훑듯이 움직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욕설을 발견할 때마다, 그녀는 내 팔을 살짝 꼬집듯이 건드리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촉촉한 입술이 한 번씩 살짝 벌어질 때마다 그녀의 미소는 더욱 선명해졌다. 눈동자는 장난스러우면서도 몽환적인 빛을 머금고 있었다.
***
금기를 용납한다는 것
우리는 일상이라는 작은 무대 위에서 공손함을 연기합니다. 말은 신중히, 몸짓은 점잖게 하려 애씁니다. 그렇게 해야만 '바람직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른 침대 위에서 전혀 다른 배역을 맡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의 바른 얼굴 대신, 차마 내뱉기 어려운 거친 욕설을 쏟아붓는, 이른바 싸이코패스 악역 같은 역할을 자처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터무니없고 기괴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섹스라는 특별한 무대에서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 내면에는 공손함이라는 커튼 뒤에 감춰진 욕망이 있습니다. "너를 모욕하고 싶다." 또는 "내가 막말을 들어도 좋다." 같은 기이한 충동이 대표적입니다. 평소에는 절대 드러내지 못할, 오랜 세월 억눌려 왔던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충동은 일상이라는 무대 위가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은밀하게 대면할 때 드러납니다. 침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상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하고픈 유혹이기도 합니다.
섹스는 성기와 성기가 만나는 육체적인 결합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가장 투명하게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렇게 거친 말을 해도 날 여전히 사랑해 줄까?라는 호기심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곤 합니다. 이때 욕설은 폭력이 아닐 , "내가 이런 싸이코패스 역할을 맡아도, 나를 사랑해 줄 거지?"라는 질문이 됩니다. 이는 일종 심리적 시험장에 가깝습니다. 평소 깔끔하고 정돈된 이미지를 탈피해도 괜찮은지, 그 밑바닥마저 상대가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과거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재석 씨가 박명수 씨 특유의 코믹한 악역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유재석 씨가 박명수 씨처럼 독설을 날리고 야유가 쏟아져도 묘한 해방감을 느낀 것처럼. 침대 위에서 악역을 자청함으로써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쾌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가 놀이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를 섬세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욕설이 진심으로 상대를 혐오하거나 심리적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이는 해방감은커녕 상처만 남기 때문입니다. 고로, 금기를 넘는다는 것은 매우 짜릿한 일이지만 안전줄 정도는 단단히 메고 있어야 사고를 피할 수 있습니다.
욕설을 듣고 흥분하는 이유는?
욕설을 수 없이 많이 들었던 저는 욕설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그렇기에 어느 여성이 저에게 욕을 해달라는 제안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욕설을 듣는 행위 역시 그동안 쌓아 올렸던 방어막을 허무는 쾌감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그 사실이 일종의 희열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침대라는 사적인 세계에서 거친 말을 서슴없이 주고받거나,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나 이렇게 망가지는데도 괜찮네?" 같은 해방감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본능적 욕구가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면 안 된다고 금기시해왔던 욕망이 문득 눈앞에 펼쳐지면 우리는 거기서 불편함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예상치 못한 흥분은 배가 됩니다.
그렇게 욕설을 뱉은 사람은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벗어던져도 여전히 괜찮은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되며, 욕설을 듣는 사람은 "이런 천박한 말을 듣고도 멀쩡한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어느 때보다 강렬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틀이 되기도 합니다. 마치 같은 범죄를 저지른 공범끼리만 나누는 비밀스러운 일체감에 가깝습니다. 고로 일상에서 커플이 욕설을 주고받으면, 관계가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섹스라는 은밀한 관계에서 상호 존중 하에 욕설을 주고받는 걸 넘어 침까지 뱉을 수 있다면 친밀감이 더욱 증폭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 욕을 해야 할까?
욕설을 주고받는 섹스는 가파른 절벽을 등반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오르다간 크게 다칠 수 있지만, 서로에게 안전장치를 걸어 주고 하나하나 발 디딜 곳을 살피면 전에 없던 스릴과 성취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말하는 안전장치는 합의와 존중입니다.
욕설 섹스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수용과 안도감입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너는 여전히 나를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상대가 "너라면 모든 게 괜찮아."라고 대답해 준다면, 안도감은 몇 배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상한 가면을 벗어던진다 해도 관계가 온전하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 중 무례한 욕설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깊고 다채로운 색깔을 지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상처가 될 수 있는 거친 말을 주고받아도 상대가 나를 받아줄 수 있는지 궁금하고, 또 그것이 가능할 대 오는 해방과 결속감을 맛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 모습은 "내가 어디까지 솔직해져도 괜찮은지"를 시험해 보는 장이기도 합니다. 도덕과 규범이 깔끔하게 짜인 일상 속에서 결코 시도하지 못할 밑바닥 감정과 대면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밑바닥마저도 상호 간에 품어낼 수 있다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능해지는 친밀감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결국 이 모순적이고도 매혹적인 측면이야 말로 섹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해방감의 본질일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속으로만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장 은밀한 순간에 금기를 맛보고 싶어 합니다. 그 경계에서 느껴지는 전율이야 말로, 인간의 욕망이 가진 무궁무진한 얼굴 중 하나일 지도 모릅니다.
침대에서의 내 모습이 꼭 바람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잠시 악역이 되더라도 괜찮은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욕설과 모욕은 가시처럼 날카로울 수 있지만, 사랑이라는 꽃을 더 아름답게 피울 수 있는 진한 거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행복지수, 7,128,682,112
이유 - 월요일이 노는 날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