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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석가를 믿는다고!?!?

신앙과 도덕, 끝없는 자기기만

by 찡따맨


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따르는 사람은 예수와 석가다. 이 둘의 공통점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데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예수나 석가를 따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들여다보면, 공자의 세계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공자는 가정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다. 이러한 공자의 논리는 이상할 게 없다. 그가 살던 당시의 중국은 농경사회였고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니 가족의 단위가 크면 클수록 좋았고, 효율적인 노동력을 위해 가족을 단합시키는 게 중요했다. 가족을 단합시키려면 엄격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공자는 개인의 깨달음을 통해 사회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걸 이상적인 사회로 연결 지었다. 국가가 곧 가족이라는 주장은 국가나 가정이 지옥이든 천당이든 관계없이, 개인은 그 안에서 당연히 종속되어 비굴할 정도로 참아나가는 게 바람직한 삶으로 연결된 셈이다. 과거 우리나라 또한 농경사회였기에 예수나 석가처럼 가족관계에서 벗어나는 삶보다, 가족구성원으로 자리하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공자왈을 외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예수와 석가를 따르는 사람들은 공자의 세계관에 기반하여 살아가고 있다. 정치 또한 진영에 갇혀있지 않나. 어쩌면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예수와 석가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자의 유령에 지배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특정 종교인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상상을 하니, 무섭다!! 무서워~~~~


독일의 철학자 포이에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을 통해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투영하여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서는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 '신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이에르바흐에 의하면 신이란 인간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욕망의 부산물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대다. 종교적 환상을 통하여 자신을 위안하는 게 아닌, 욕망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면, '이것이 신이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일이다.' 같은 식의 논리를 통하여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현실의 탐욕을 신의 뜻으로 둔갑시키거나 업보를 쌓으면 내세에서 보상받을 것이라는 묘한 논리로 정당화시키면서 폭력을 매우 가볍게 여긴다.


진짜 부자가 되고 싶다면, 기도보다 경제활동을 하는 게 우선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수행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의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게 우선이다. 고로 욕망을 종교적 환상으로만 만지고 다루려고 하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어쩌면 공자의 유령에 사로 잡혀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해.


지금 나는 독서모임에 참석할까 말까를 고민 중이다. 물론 사회부적응자 찐따답게, '말까'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여기서 읽을 첫 번째 책은 돈키호테다. 왜 돈키호테가 첫 번째일까!? 단순하다. <돈키호테>는 이미 정해진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이상을 좇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곳,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인간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평범한 농부에서 기사로, 더 나아가 신적인 존재로 변모할 수 있으며, 시간의 제약을 초월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것'이라고 믿는 수명, 가족, 삶, 운명, 사주팔자 같은 것들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새롭게 창조하려는 움직임에 가까운 것이다.


도교의 어느 설화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간 사람이 염라대왕을 속이고 이승으로 도망쳐 다시 삶을 이어나가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미 정해진 것을 극복하려면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세워져 있던 도덕적 질서를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형은 꿈속에서 말을 안 듣는 아들을 향해 주먹으로 여러 대 후려쳤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때린 것이 아니고 꿈속에서. 하지만 우리 형은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죄책감이 가시질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난 우리 형을 존경하고 참으로 좋아하지만, 이런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가 없다. 이미 초자아라는 검열관이 24시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이게 도덕적으로 맞나?" 라며 스스로를 심문하느라 숨 쉴 틈이 없겠지. (물론 나 또한 이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사람은 삶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며 잠을 자는 동안에도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이러한 위선과 이중성에 갇힌 사람들이 출세를 한다고 한들, 결국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삶이 그려질 게 뻔하다. 그게 지옥과 다를 게 무엇인가!?!?



물론 우리 형아 최고!! 짱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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