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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비둘기

날개 달린 쥐와 살아간다는 것

by 찡따맨

나는 오늘 산책을 했다.


산책! 오늘 내가 한 일 중 가장 문명적인 행동이랄까~?

걷는다는 건 아주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지.

목적지도 없고 그저 걷기 위해 걷는 것.

어쩌면 이는 부패한 문명의 단면이기도 하다.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길.

경비아저씨가 비둘기들에게 뭔가를 흩뿌리고 있다.

빵 조각인지, 막다 남긴 강냉이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비둘기에게 애정을 품고 계신다는 것이다.

반면 비둘기는 늘 그렇듯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정확히 내 신발 앞에 똥을 싼다.


난 이 장면이 당황스러웠다.

누군가 던져주는 부스러기에 달려드는 모습.

매스컴이 던지는 정보. 광고가 던지는 욕망, 정치인이 던지는 공약.

그것들에 열광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경비아저씨는 뭘 모르시는 것 같다.

비둘기는 날개 달린 쥐에 가까운데 말이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다.

대한민국 환경부가 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했거든.


물론 경비 아저씨도 내가 산책하듯 아무 의미 없이 비둘기 밥을 던져주시는 거겠지.

유해한 것과 이로운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으셨겠지.

아저씨에게는 날개 달린 쥐가 아닌, 비둘기. 그저 비둘기일 뿐.


그것보다 저기 저저 날개 달린 쥐돌이는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린다.

아마 취객의 토사물을 혼자 잔뜩 먹은 게 분명하다.

저기 저저 날개 달린 쥐돌이는 경비아저씨가 준 밥을 혼자 다 처먹었는지

날지도 걷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의 비둘기들은 우리가 만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쓰레기통을 뒤지고, 술에 취한 인간들이 남긴 토사물도 먹는다.

그들이 더러운가, 아니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인간이 더러울까.

비둘기는 생존을 위해 적응했을 뿐인데 말이다.

내 신발 앞에 똥을 싼 것도 그런 이유일까?


어쩌면 비둘기의 멍청함이 곧 인간의 무해함이고

그것은 곧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겠지.

멍청함과 무해함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지 않는 존재는 악의를 품지 않는다.

비둘기는 그 누구도 해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다만 의도치 않게 피해를 줄 뿐, 내 신발 앞에 똥을 싼 것처럼.


그래. 날개 달린 쥐들아! 그렇게 살아가라.

도시가 너희들을 조롱해도 물러가지 않을 테니.

그들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먹고 싸며 살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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