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착한 자본가에서 균열까지
백종원은 한때 착한 사업가의 표본처럼 여겨졌다. 통통한 인상에 구수한 말투를 구사하는 이 남자는 친근한 미소로 미디어에 등장해 손가락 하나로 식당을 구원하고 국자 하나로 상권을 살렸다. 그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소비자의 편에 서 있는 착한 자본가 이미지에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상징 백종원
백종원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이유는 단순 맛있는 제육볶음을 만들 줄 알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요리를 꽤 잘한다. 밥도 잘 짓고, 고기도 잘 굽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맛이 무엇인지 귀신같이 알아낸다. 하지만 백종원이 진정으로 대중의 뇌리에 박힌 건, 그가 단순한 요리사나 사업가를 넘어 사회적인 상징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핵심에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겉으로 보기엔 망해가는 골목 식당을 살려주는 훈훈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백종원이 무대 위에 오른 주연 배우로서 백종원 역할을 연기하는 거대한 쇼에 가까웠다. 그는 위생 상태가 엉망인 식당에 들어가 눈썹을 찡그리고, 국물 맛을 보며 "이건 좀 아니네요."라고 말하고, 주방 한편에 쌓인 쓰레기통을 보며 정색을 했다. 그리고 냉장고 정리, 메뉴 조정, 가격 재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개입하여 마치 대한민국의 요식업 수호자처럼 행동했다.
이 모습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마치 소비자의 정의를 실현하는 사도, 자영업의 구원자 그리고 동시에 착한 자본주의 실천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는 소비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전문가의 카리스마 생활인의 따뜻함을 오가는 인물을 연기해 낸 것이다.
백종원은 실제 인물인 동시에 자신을 브랜드화한 인물이며,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소비자의 편에 서는 사업가라는 캐릭터가 굳건해졌다. 그렇게 백종원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 자산이 되었다. 마치 애플 로고가 박힌 제품을 보면 왠지 튼튼하고 세련됐을 것 같은 착각이 들듯이, 백종원의 사진과 이름이 붙은 가게나 제품은 어딘가 정직하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따라붙는다. 이건 단지 이름값이 아니라, 그가 미디어를 통해 쌓아 올린 신뢰 자산의 결실이다.
그렇게 백종원은 품질 보증서이자 도덕적 상징이 되었다. 냉동볶음밥 하나를 집어 들고 포장지에 적힌 작은 글씨를 보는 대신, '백종원이 만들었대'라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바구니에 넣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중들은 수십 번 그를 봐왔고, "소비자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소비자를 위한 착한 자본가, 사업가라는 상징을 얻게 되었다.
환상과 현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속 백종원은 여러 사장님들의 멘토였고, 소비자의 대변인이었으며 착한 자본가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운영하는 회사인 더본코리아는 그만큼 멋져 보이지 않았다.
더본코리아는 제법 크다. 우리가 지나치는 수많은 골목, 먹자골목, 지하상가, 쇼핑몰 구석구석에서 백종원의 브랜드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새마을식당, 홍콩반점, 한신포차, 백다방 그리고 요즘 논란의 중심인 빽햄까지 그는 사실상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브랜드들이 백종원의 방송에서 직접 전파하던 철학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이다. 안타깝게도 대답은 '그렇게 많이는 아니다.'에 가깝다.
빽햄이라고 불리는 백종원표 통조림은 출시와 동시에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지만, 맛과 가격 측면에서 매력도가 높지 않았다. 기대한 만큼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미디어에 현혹되어 있던 소비자들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내가 이걸 산 건 맛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가 방송에서 강조하던 가성비, 진정성, 소비자 중심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더본 코리아의 매장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가격도 맛도 양도 어느 하나 특별함이 없는 느낌이다. 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더본코리아의 정체성이다.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에 기대하는 감정적, 기능적 보장이 실현되지 않을 때 브랜드의 충성도는 급속도로 무너진다. 다시 말해 "이건 백종원 브랜드니까 믿을 수 있어."라는 믿음이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거 살 걸"이라는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브랜드의 신뢰는 금이 간다.
물론 백종원의 더본코리아 프렌차이즈 매장의 가격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백종원은 2018년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해 "우리는 골목상권이 아닌, 먹자골목에서 경쟁한다."고 밝혔다. 영세상인과 직접 경쟁하는 게 아닌, 임대료가 높은 먹자골목에서 경쟁하는 것이므로 프렌차이즈 점주들을 위해서라도 음식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맛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기업은 때때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성장하면서 본래의 철학을 잃곤 한다. 그리고 이건 악의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때론 단순한 확장의 피로에서 비롯된다. 브랜드가 확장되면 매뉴얼이 필요해지고, 매뉴얼이 늘어나면 사람 대신 시스템이 대체되고, 시스템은 점차 인간적인 온도를 잃는다. 그렇게 진심으로 요리하는 백종원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진심으로 김치를 담근 사람이 개발한 조리법을 매뉴얼화한 공장에서, 누군가의 손을 거쳐 대량으로 생산된 김치찌개가 있을 뿐이다. 거기서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조금씩 증발한다. 그렇게 백종원의 얼굴이 신뢰의 메시지가 아닌, 피로로 읽히기 시작된 것이다.
단가 후려치기
백종원은 모든 자영업자를 전부 돕지 못했어도. 그럴 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편의점에서 김혜자, 백종원 도시락을 먼저 선택하게 된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제는 백종원이 그동안 했던 말들이 동화 수준의 환상처럼 다가온다는 점이다. 과거 백종원은 방송에서 "맛은 올리고 가격은 낮추세요."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조언 같아 보였고, 정말 그 말대로 하면 골목식당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말을 곱씹어 보면, 그건 도덕적 충고인 동시에 일종의 시장 지배자의 프레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격을 낮춘다는 건 결국 비용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고, 비용을 줄인다는 건 누군가의 노동이나 품질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백종원의 가격 인하 요구는 왜 괜찮고,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는 왜 그렇게 욕을 먹는 건가?"
사실 둘 다 비슷한 논리다. 더 싸게, 더 잘 만들려는 의지다. 대기업이 부품 업체에 "이거 원가 좀 깎아보시죠."라고 말하는 것과 백종원이 골목식당 사장들에게 "맛은 올리고 가격은 낮추셔야죠."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윗선에서 아래에 "고생은 네 몫이야. 그래야 소비자가 행복하지."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대기업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고 백종원에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를 매일 사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많아야 2년에 한 번, 자동차는 빨라야 5년에 한 번 산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가격이 저렴해지거나 가격이 동결되어도 감동은 금세 잊힌다. 하지만 돈가스와 제육볶음은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일주일에 다섯 번, 많게는 일곱 번도 먹는다. 치킨, 김밥, 짬뽕, 제윢볶음.. 이건 우리 삶 그 자체다.
백종원이 말한 가격 인하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 점심값이 1,000원 싸졌다'는 뚜렷한 체감을 주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경제정책보다 제육볶음 가격이 더 빠르게 체감된다는 한국 소비자 속성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백종원은 대기업 관료들처럼 양복을 입고 나서지 않는다. 후줄근하고 푸근한 옷차림에 앞치마를 두르고,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며 친근하게 단가를 후려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소비자의 편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각인시킨 것이다. 소상공인을 위한 구조개선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소비자의 행복을 위한 개입에 가까웠던 셈이다. 그렇게 그는 소상공인이 아닌 소비자의 공감만 자극하여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소비자들이 "맛있고 싸게 먹자."라고 말하는 동안, 맛있고 싸고 깔끔한 돈가스를 만드는 사람이 하루 14시간 일하는 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돈가스 장인으로 불리던 연돈 사장님이 백종원을 따라 제주도로 갔지만, 매출이 13억임에도 불구하고 연 순수익이 7천만 원이라는 이야기가 다시 주목을 받은 이유다.
백종원의 단가 후려치기는 가격 혁신,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는 을에 대한 착취로 인식했다. 실상은 둘 다 같은 게임인데 말이다. 우리는 자주 마주치는 경기에서만 감정이입을 한 셈이다. 거기서 백종원은 의도치 않게 매우 조용하게 승리한 셈이다.
새로운 승부처
빽햄 사태를 시작으로 알게 된 건 꽤 단순하다. 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 믿음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증발한다.
백종원은 그동안 참 많은 말을 했다. 그중에서도 "점주가 힘들어야 손님이 행복하다.", "가격을 낮추고 맛을 올려야 한다."
이런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자영업자의 도덕적 교본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는 CEO면서도 마치 교회의 장로 같았다. 그런데 그 모든 고귀한 말들이 정작 그가 운영하는 기업, 즉 더본코리아의 운영 방식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음식은 평범하고 가격은 생각보다 높고, 밀키트는 기대에 못 미치며, 지역 축제에서 사용한 조리 기구는 위생 논란까지 낳았다. 이에 대중은 고개를 저았다. 이러한 모습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빌런과 다를 게 없다.
백종원은 이 모든 변화의 정중앙에 서 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진심을 자주 말했고, 대중은 그 진심을 믿었으며, 그 신뢰는 그의 더본코리아를 키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진심이 운영 방식과 숫자, 식자재 유통 방식, 조리 매뉴얼, 점주 정책 등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들 속에서 증명할 때가 왔다. 이제 소비자는 백종원의 말에 감동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들으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조용한 방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말보다는 맛, 이미지보다는 위생, 미디어보다는 메뉴판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내가 백종원이라면 어떻게 할까? 더본코리아는 현금을 부지런히 모았다. 서울을 시작으로 한 각 광역시에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프랜차이즈 직영점 식당을 오픈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음식이 이거였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백종원 씨는 유튜브 규모가 크니, 소비자와 함께 참여하는 메뉴 가격 설정 콘텐츠를 찍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백종원은 발표하는 사람이 아닌 경청하는 사람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보다, 소비자와 점주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의 친근한 이미지를 되살리는 데 좋을 것 같다.
아 그것보다 벌써 일요일 3시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