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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07. 2018

그저 망망하니

조화석습 #3

루쉰은 이미 당대에 이름난 작가였다. 책도 잘 팔렸다. 몇몇은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문득 그의 글을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물론 그의 글에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널리 알려져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뒤흔들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의 글은 다수를 위한 글은 아니다. ‘소수자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글에 담긴 어떤 부드럽지 못함이 있다.

  

글을 쓰는 것처럼, 글을 읽는 것도 제 깜냥에 달려있는 듯하다. 나에게 루쉰이 매력적인 것은 그에게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시대의 불안함이다. 역사 속을 사는 사람은 그가 당면한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알 수 없을 테다. 100여 년 전 중국 역사를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그작그작 살았을 테다. 문제는 그런 시대 위에도 매끄러운 삶이 있는 가하면, 굴곡진 삶이 있기도 하다. 시대의 공기를 마시는 차이 때문은 아닐지.  


흥미롭게도 루쉰 개인의 불행과 시대의 불안이 서로 맞닿아 있다.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를 잃으면서 그는 세상 사람들의 진면목을 보았다. 인간의 진솔한 맨 얼굴은 생각보다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꿰뚫어 본 것이다. 그는 스스로 의심이 많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는 그의 오락가락한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배움의 길에 접어들었으나 그는 제 발길을 다른 곳으로 향한다. 


‘좋다. 그러면 떠나자!’
<사소한 기록> 


그는 연부인에 대한 기억에서 자신의 탈출기(?)를 재구성하고 있다. 연부인은 영 못 믿을 위인이었나 싶은데, 그 때문에 루쉰은 집의 물건을 훔쳐 내다 판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유언비어가 그를 고향에서 떠나게 만든 것이다. 결국 그는 제 고향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영영 먼 곳으로 발을 옮긴다. 해군학교에도 들어가고 광산학교에도 들어간다. 그러다 일본에까지 유학을 떠나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은 의학이었다. 뭐 이리도 떠돌아다녔는지.  


과거의 삶을 <아침 꽃 저녁에 줍다>의 현재와 포개어 보면 흥미롭다. 그는 베이징을 떠나 여러 곳을 전전했다. 어떻게 보면 그 역시 유언비어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의 글에서 내내 보이는 태도라고는 그런 ‘유언비어를 만드는 이들의 여우같이 교활한 진상을 까밝’히는 일 뿐이다. 자신을 변호하려는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교내 학생들이 신문을 만들어 도독을 비판하는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루쉰의 이름을 빌려 군정부와 당시 권력자들을 비판, 아니 욕했다. 그가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린 신문에서 이렇게 욕해대니 그에게도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도독이 사람을 보내어 권총으로 쏴 죽일 것이라는 흉흉한 소식이었다. 그런 말에도 루쉰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학생들이 도독이 보낸 돈을 받고 발생한다. 루쉰이 보기에는 그 돈은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 돈을 받아버렸고, 그 돈을 받은 뒤에도 계속 욕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루쉰의 말은 닿지 않았다. 그는 말을 멈추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물정을 벌써부터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우리들도 연루될 것이라고 더 말했다가는, 그가 당장에 한 푼어치도 안 되는 목숨이 아까워서 사회를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는 면박을 당하거나, 혹은 다음 날 신문에 내가 죽을 까 봐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더라는 기사가 실릴 것이었다. 
 <판아이농> 


진솔함 따위로 자신을 무장하거나 변호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 깊다. 어쩌면 진실이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헤아려보면 문제의 해결이니 사람간의 화해니 하는 것들은 실제로는 요원한 것이 아닐까? 사람 사이의 문제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사람 사이의 다툼이란 화해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리어 다른 방법으로 해소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사이가 영영 틀어지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남거나, 누군가 힘을 제압하거나, 누군가 입을 닫거나, 잊거나, 포기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원수’라는 날카로운 말을 입에 올리는 그가 흥미롭다. 원망은 원한을 낳지만 원수는 복수를 낳는다. 그렇다고 그의 복수가 손에 피를 묻히고 상대를 절멸시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복수는 좀 다르다. 허나 이를 말로 정리하려니 버겁기만 하다. 이는 아마도 복수의 방법을 망각한, 복수를 모른 채 원한을 품는 법만 배운 오늘날의 인간의 한계 때문일 테다.  


돌아와 따져보면 루쉰이 이야기하는 과거 일인들 그것이 모두 진실이라 생각할 이유는 없다. 고향으로부터 그를 끌어낸 것이, 아니 내쫓은 것이 연부인의 유언비어만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이다. 어떤 예민함이, 혹은 정지할 수 없는 어떤 정서가 그를 떠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畢業,自然大家都盼望的,但一到畢業,卻又有些爽然若失。 爬了幾次桅,不消說不配做半個水兵; 聽了幾年講,下了幾回礦洞,就能掘出金、銀、銅、鐵、錫來麽? 實在連自己也茫無把握,沒有做《工欲善其事必先利其器論》的那麽容易。 爬上天空二十丈和鉆下地面二十丈,結果還是一無所能, 學問是“上窮碧落下黃泉,兩處茫茫皆不見”了。 所余的還只有一條路:到外國去。 
졸업은 물론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졸업을 하자 나는 또 무엇을 잃어버린 듯 허전했다. 그 높은 장대를 몇 번 오르내린 것으로 해군병사가 될 수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몇 해 동안 강의를 듣고 굴 안을 몇 번 드나들었다고 해서 금, 은, 동, 철, 주석을 캐낼 수 있겠는가? 바른 대로 말하자면 나 자신도 막연했다. 어쨌든 그것은 ‘훌륭한 제품을 만들려면 사전에 연장을 잘 벼려야 한다’는 따위의 글을 짓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십 장 높이의 상공으로도 오르고 이십 장 깊이의 땅 밑으로도 내려가 봤지만 결국은 아무런 재간도 배우지 못했으며, 학문은 “위로는 벽락에 닿고 아래로는 황천이 이르렀건만 두 곳 다 무변 세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오로지 한 길, 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사소한 기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다행히 길 하나를 발견했다 한다. 외국으로 떠나는 길. 그때 그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사후에나 길로 확인된 무엇이었을 테다. 그 높은 장대 끝에도, 저 깊은 탄광 속에도 길이 없었듯, 이국 땅에서 길이 있었을 리가. 그곳에서도 비방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의심하는 눈초리가 있었다. 다만 문득문득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우정의 인연들이 있을 뿐이다.  


망망한 대지위에 부딪히는 몇몇 우정. 그의 글에 짙은 냉소가 그리우면서도 차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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