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신편 #1
那倒不忙。我實在餓极了,還是赶快去做一盤辣子雞,烙五斤餅來,給我吃了好睡覺。
그건 그리 급하지 않아. 배가 너무 고프구나, 얼른 가 닭고기 고추볶음 한 접시와 구운 떡 다섯 근을 만들어 오거라. 먹고 푹 자야겠다.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나카지마 아츠시의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을 보면 봉몽의 이야기가 다르게 실려 있다. <명인전名人傳>에서도 활쏘기의 달인이 된 봉몽과 예의 싸움이 나온다. 절륜의 경지에 오른 서로의 실력을 발견하고는 크게 고양되어 감격했다는 이야기. 거기에는 이른바 도道의 경지에 오른 두 명인名人의 감격스러운 만남이 실려 있다.
그러나 루쉰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마찬가지로 봉몽이 활로 예를 쏘아 예를 죽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봉몽의 비겁함이다. 주석을 보면 이는 가오창훙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한다. 그는 루쉰에게 많은 지도와 도움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루쉰을 비판하는 자리에 선다.
그의 말을 빌리자. “그(루쉰)가 나에게 준 인상은 사실 그 짧은 시기(1924년 말)가 제일 확실했다. 그때는 정말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훌륭하지는 못하면서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의 모습만 있는 것으로 점차 전락해 갔다.”
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수 없는 상황에서 짧은 말에 기대어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는 루쉰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면모’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루쉰의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예술가’ 따위와는 좀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 스스로도 ‘통속을 기꺼워한다’라 했으며, 나아가 ‘장난기’를 이야기하지 않던가. 그에게는 고고함 보다는 거칠음, 어떤 정제되지 않은 야생성이 늘 번뜩인다.
이는 ‘전사’라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할테다. 예술가와 전사 사이에는 어떤 거리감이 있지 않나. 물론 예술적 전사라는 혹은, 예술적인 싸움이라는 면을 떠올릴 수도 있을테지만 그의 싸움의 양상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수 없이 많은 적을 상대했다. 그의 글에는 늘 적, 원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글이 싸움의 흔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그에게는 기사도 혹은 무사도 따위와 같은 것을 떠올리기 힘들다. 진흙탕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는 싸움의 비정함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물에 빠진 개라도 몽둥이질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어느 편에서 보면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는 정면으로 상대하기보다는 늘 어느 정도 비껴있다. 그렇다고 그를 겁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전사>에서는 적의 심장을 향해 거침없이 투창을 던진다.
누군가는 이런 그의 모습에서 이른바 ‘싸움의 기술’을 발견하지만 가오창훙은 그러지 않았다. ‘훌륭하지는 못하면서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의 모습.’ 아마도 그는 루쉰의 싸움을 못난이의 투정거림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긴 그런 비판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그는 이른바 논객이라는 인물로 분류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개혁가 혹은 혁명가라고 부르기에는 실제로 해놓은 일이 별로 없다. 누군가는 그에게 토론을 할 줄 모른다고 손가락질 할테고, 누군가는 그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며 비아냥거릴테다.
루쉰도 그런 비판을 잘 알았는지, 활쏘기의 명수 예를 변변치 않게 그려낸다. 한때는 멧돼지나 구렁이들을 잡는 대단한 사냥꾼이었으나, 멧돼지나 구렁이도 사라진 상황에서는 그의 활쏘기 실력도 그리 빛나지 못한다. 매일 까마귀나 잡아올 뿐이며 그 까마귀로 까마귀 짜장면을 먹을 뿐이다. 좀 운이 좋은 날이라 해도 기껏해야 참새를 잡을 뿐. 까마귀에 질려하는 아내 상아를 위해 먼 길을 나섰지만 그가 잡은 것은 비둘기로 착각한 한 노인의 씨암탉이었다. 배도 곪고, 씨암탉을 잡은 댓가로 식사로 싸온 떡다섯 개도 넘겨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봉몽의 화살이 날아오기까지.
이 보잘 것 없는 예의 모습은 루쉰 자신의 모습을 일정부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그의 삶도 그작그작 살아가는 상황이 아니었을지. 매일매일의 까마귀 짜장면, 가오창훙의 비판.
집에 돌아왔을 때 하인들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이들은 나으리께서 아직도 전사시라고 말합니다.’ ‘어떤 때 보면 정말 예술가 같으십니다.’ 그러나 예의 입장에서보면 그 화려한 활솜씨로 겨우 까마귀나 잡아낼 뿐이다. 게다가 싸움의 상대라고는 숲속에서 몰래 목숨을 노리는 비겁자일 뿐. 그의 한탄을 보라. ‘저렇게 싹수없는 놈인지 정말 몰랐어. 젊디젊은 놈이 저주하는 것을 배우다니.’
예의 고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아가 신선이 준 약을 먹고 저 하늘로 날아가 버린 것. 달이 된 상아를 사일궁으로 쏘았지만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하늘의 해도 쏘아 떨어뜨렸다는 예의 활쏘기는 전설 뿐이었나. 허나 처음부터 예와 달은 서로 좁힐 수 없는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 ‘그가 세 걸음 앞으로 나서면 달은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가 세 걸음 물러서면 달은 또 그만큼 앞으로 나왔다.’ 그의 아내, 상아는 이제 저기 멀리 떨어져 닿을 수 없는 달이 되었다.
배를 곪고 무시를 당하며 잡아온 닭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상황. 이 허망한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맺을까 궁금했는데, 원한도 원망도 없이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야겠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예는 그제야 굶주린 제 배로 눈을 돌리고 피곤한 몸을 쉴 생각을 한다.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장자 : 내편> 마지막에는 열자의 이야기가 길게 담겨 있다. 열자는 계함이라는 점쟁이를 보고 마음을 빼앗겨 버리나 도리어 스승 호자가 얼마나 대단한 내공(!)을 지녔는지를 뒤늦게 깨닫는다. 이 이야기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점쟁이 계함이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던 변화무쌍한 호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을 겪은 열자의 그 이후 이야기였다. 열자는 이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를 먹이며 살았다 한다. 엄청난 깨달음의 결과가 고작 밥하고 밥 먹이는 일이라니!
그러나 거꾸로 밥 먹는 일이야 말로 살아 있는 존재가 꼬박꼬박 챙길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하다. 어쩔 때는 밥먹는 것이 말 그대로 일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밥에는 끈질긴 일상의 억척스러움이 담겨 있다. 한편 거기에는 깨달음이니, 예술이니, 전투니 하는 고상한 말과는 다른 소박함이 묻어 있기도 하다.
저 먼 신화의 인물들을 끌어쓴 <새로 쓴 옛 이야기>에서는 신화의 인물들이 모두 보잘 것 없는 소박한 존재로 미끄러져 내린다. 어쩌면 그는 변변치 않는 이야기 속에 여와와 명인 예 등을 담아내어 신화를 뒤집어 버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장난이라면 장난일테다. 허나 나는 그런 전복이나 비틀기보다는 문득 비치는 소박함에 눈이 간다. 칼도 창도 없는, 진지도 전선도 불투명한 싸움터에서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의 글이 어떤 시공간에 잡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지. 그에게는 당대와 무관한 글이 보이지 않는다. 예술의 전당이라는 게 있다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일 테다. 그의 글은 저 높은 단상에 놓이기는 커녕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1926년의 삶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허나 그것이 루쉰의 위대함이라 하겠다. 그는 스스로 그작그작 살아왔다 말하지만, 전장의 삶에서 빗겨나지 않았다. 꾸준함과 집요함, 지치지 않는 발걸음은 단순히 열정과 비전 따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먹고 자는 일이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