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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l 06. 2018

제국의 역습인가 문명의 부활인가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자에 대한 이야기로 잠깐 시끄러웠다. 누군가 한자의 유용성에 대해 장문의 글을 썼다. 요는 한자라는 문자가 있음으로 서로 다른 민족과 지역이 통합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내 입장에서는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진시황의 통일 정책 가운데 하나가 문자의 통일 아니었나. 공자는 <논어>에서 <시경>을 읽지 않으면 외교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말했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시경>이라는 공통 문화를 토대로 각국의 외교 현안이 다루어졌다는 이야기. 


한걸음 더 나아가 양자오는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이 지역과 언어, 인종과 문화는 물론 역사를 꿰뚫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일상 언어로 직접 수천 년 전 고전을 읽고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행운입니다. 현대 중국인은 2천여 년 전의 중국 문자를 번역 없이 읽을 수 있고, 정보의 대부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보다 깊은 의미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중국 문자와 오늘날 중국인이 일상에서 쓰는 문자 사이에는 분명하고도 강력한 연속성이 존재하지요. (...) 이처럼 고대부터 간단히 이어진 중국 문자의 전통은 문명의 기본 형태를 결정짓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논어를 읽다>, 양자오, 유유. 10-11쪽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어디서 낡은 문자인 한자를 운운하느냐는 이야기. 조갑제식의 국한문혼용 논의가 만든 허상이며, 인류 역사에서 빨리 청산해야 할 복잡하고 비경제적인 문자라는 이야기까지. 그러면서 뒤따르는 것이 우리 한글의 유용성, 편리성 등등인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역사란 문명이란 그렇게 합리적인 게 아니지 않나. 


여기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중요한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통, 제국, 문명으로부터의 이탈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국가를 창조해야 했다. ‘조선’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나 보라. 청산해야 할 낡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조선’이 유구한 전통을 가진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웃나라에서 적잖이 사용되는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꽤 꺼려한다.  


이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제국의 그늘 아래 있던 불우한 역사를 떠올리는 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대 국가는 제국으로부터의 독립, 가깝게는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광복 멀게는 청으로 대표되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에서 출발한다. 또한 이는 ‘천하’라는 문명세계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국가의 수립이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역사쓰기였다면, 국학이란 학술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자기 변신의 노력이었다. 


이 맥락에서 한자는 여전히 전통과 제국의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 중국의 부상을 보며 낡은 체제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가 그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나 질문해야 할 것은 문명으로서의 언어까지 배제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어떤 가능성까지도 함께 제거해버리는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한자가 민족, 문화, 종교는 물론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게 만드는 도구라면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재검토는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이념’이라는 장벽마저 있기 때문이다. 오성홍기가 휘날리는 공산주의 사회, 중국. 과연 우리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20세기 중국지식의 탄생> 후반부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5.4 신문화 운동 이후 공산주의가 어떻게 수용되고 변형되었는지를 6명의 인물과 함께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두슈와 리다자오는 신문화 운동의 배경에서 어떻게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수용 방식을 보여준다. 전자가 국제주의적이며 서구적인 입장을 중시했다면, 후자는 민족주의적 동기와 혁명적 자율성을 중시했다. 이어지는 마오쩌둥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중국적 특징은 후자에 있다 하겠다. 그러나 그렇기에 저자는 전자를 새롭게 재평가해야 한다 말한다. 이는 후자의 입장에서 세워진 기묘한 모습의 중국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리다자오의 민족적이며 자율적인 혁명정신은 마오에게 전승된다. 마오야 말로 오늘날까지 근대 중국을 배회하는 유령이자, 국가종교적 우상이라고 할만하다. 그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허나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특히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있다. 여전히 논쟁중이다.  


신좌파는 문화대혁명 시기야말로 민주가 실현된 시대라 보고 현대 중국의 ‘제도 창신’을 위해 마오쩌둥 시대의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사회의 공공재부를 무상으로 점유했고 다른 의견을 억압했던 문화대혁명 시대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250쪽. 


개인적으로는 마오보다 저자가 마오의 대척점에 량수밍을 놓고 소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가 붙인 '실천적 유학자'라는 말이 인상 깊다. 이 칭호에서 마오에 물든 중국을 벗어날 가능성을 유학에서 엿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질문한다면 지나친 일일지. 량수밍이 이야기했다는 중국 문명의 특징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는 가능성이기도 하며, 벗어날 수 없는 또 다른 한계이기도 할 테다. 여튼 이와 더불어 저자가 후반부에 ‘윤리’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에 대한 부분은 각 개인의 인물보다 현대 중국이 어떻게 성립되었는가를 조망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마오와 저우언라이 그리고 덩샤오핑이 만든 중국이란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서 접근하는 것이 적합하겠다. 이 이론은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중국은 사회주의이다. 둘째, 그러나 아직 초급 단계에 있다. 이 특수한 모순의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가 수용된다.  


그러나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해야 하지만 이는 4대 기본 원칙 즉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 인민민주 독재의 견지, 중국공산당 영도의 견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의 견지라는 4대 원칙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한 개혁 개방의 추진’과 ‘중국공산당 영도의 견지’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보면 양자는 서로 상당히 모순적이다. 서로 배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양자의 결합이 지금도 관철되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신자유주의)와 신권위주의의 결합이다. <같은책> 348. 


이 기묘한 결합을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게 간략하게 줄일 수 있겠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이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이다. 다르게 말하면 정치는 소련식, 경제는 미국식!(373) 이것이 오늘 중국의 현실이다. 더구나 미국의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적 가치를 배반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변신은 더욱 흥미롭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한 세기를 지배한 것과는 다른 제국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대체 중국은 어떤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쉬이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얼굴이든 우리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얼굴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권위주의적 정치를 경험했으며 충분히 상처를 입은 가까운 역사는 물론,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망가질 때로 망가진 삶을 돌아보면 어느 얼굴이든 결코 반가울 수는 없을 테다. 이웃의 거인이 쓰러진 무릎을 세우는 것은 현실이며 미래이기는 하나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 저자가 끊임없이 역사의 순간에 들이밀었던 전통과 문명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우선은 이런 기묘한 조합 속에 전통은 새로운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 일단 5•4시기와 달리 서양 인식과 중국 인식에서 상호 긴장성은 상실된 것이다. 서양 인식에서 민주가 누락되었고 사회주의적 가치 지향이 사라졌다. 이 자리에 남은 것은 서양 자본주의와 중국 공산주의의 권위주의 뿐이다. 그리고 양자가 손을 잡으면 괴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에 지식인의 유학, 특히 ‘권력-지식 담론으로서의 유학’이 가세하면 정치, 경제, 문화의 탄탄한 보수 구도가 정립된다. (365) 


과거 19세기 말 20세기 초 지식인은 봉건체제의 사상적 기둥이라며 유학을 거세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니, 가까운 미래에는 다시 이러한 권위주의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담론으로 유학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유학 전체가 될 수는 없다. 유학이 무엇으로 그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저자가 인용한 첸리췬의 말이다. 그는 ‘언어’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서 권력과 언어의 합일은 언어의 패권을 형성한다. ‘당국이 벌한 자는 모두 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어는 단지 정치적 기능만을 한다. 이때 언어의 유일한 기능은 정복이지 토론이거나 교류가 아니다. 관官의 말이 유일하게 합법적인 언어 존재가 된다. 권력자 치하의 신민은 생존권을 얻기 위해 반드시 관의 말을 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강권 통치의 공포는 사람들이 말할 권리를 박탈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침묵할 권리를 박탈하는 데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이런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강제적인 발언은 필연적으로 연극적인 특징이 있으며 필연적으로 거짓된 말을 한다.” (361)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중국의 경전 전통, 나아가 그 경전의 토대를 닦은 공자의 ‘말’이 갖는 특수성이다. 어쩌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탄탄한 보수’란 경전적 태도와 더불어 등장하지 않을지. 이런 측면에서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루쉰의 글쓰기’, 그 독특한 지점이다. 그는 언어를 사용하되 이를 권력, 혹은 패권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다. 이를 파괴했으며 그렇다고 언어가 갖는 ‘힘’ 그 자체를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언어는 투창이었다.  

푸코가 담론이라는 현장에서 권력의 움직임을 주목하며 해석했다면 루쉰에게는 ‘전장’에서 이 언어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지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루쉰의 말을 빌리면 이 전장은 살과 살이 마주하는 생의 현장이며,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연극적인 것도 거짓도 없이 오롯이 진실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루쉰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의 현장이 있다면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허나 저자의 말을 따라 단지 순간적으로 열리는 전장에만 눈을 돌릴 수는 없다. 중국이란 유구한 전통의 문명세계이며 이는 ‘역사’를 통해 증언되고 변주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 나아가 민이民彛에 대한 희망으로 책을 매듭짓는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지금의 ‘사회주의 체제’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르는 다만, 몇 백 년 동안 없어질 것 같지 않았던 변발과 전족이 단 10~20년 사이에 사라진 것처럼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정치도 역사 앞에서는 무력하다. 서양은 종교가 있지만 동양은 역사가 있다.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의 표폄의식, 민이民彛가 죽지 않았다면 이 또한 살아 있다. (374) 


정말 남아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중국적인 것’이라 불러야 할 테다. 량수밍이 이야기한 문명의 특징 같은 것일 테다. 저자가 저우언라이 등에서 발견한 또 다른 정서와 태도라고 하겠다. 서구의 혁명을 낳은 ‘민중’의 무엇과는 다른 정신. 전통과 문명이 부활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국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살펴볼 수 있어야 하겠다. 루쉰에게 묻는 다면 아마 그것은 <작은 사건>에서 보았던 거대한 삶, 거기서 이야기한 용기와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우리실험자들 <루쉰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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