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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Oct 16. 2018

삼장이 아닌 현장, 그 멀고도 고된 여정

<현장 서유기>

다들 서유기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긴 돌에서 원숭이가 나왔다는 말부터, 그 원숭이가 용궁과 천계를 뒤집어 놓았다는 내용까지. 온통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뿐이다. 그래도 그 말썽꾸러기 재천대성, 손오공이 얼마나 멋지던지. 


그런데 삼장법사는 영 정반대였다. 툭하면 울며 눈물을 질질 짜는 것은 물론, 어찌나 어리석은지 수없이 요괴에게 잡혀버리니. 아마 손오공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황천길에 올랐을 테다. 헌데 나중에서야 이 삼장법사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게다가 ‘서유기’라는 제목처럼 실제로 서천 서역, 인도까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도.


정보를 찾아보니, 현장은 <서유기>에서 만난 삼장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싸움을 잘 하는 손오공은커녕, 홀홀단신으로 인도까지 여행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사막을 건너서 말이다. 그뿐인가. 인도에 도달하여 그 넓은 땅을 일주하다시피 돌아다녔다. 수많은 고승들과 논쟁하면서.


현장의 <대당서역기>는 번역이 되어있으나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워낙 많은 나라와 민족이 나오니 이를 감당할 수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결국 현장을 다룬 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만난 책이 바로 <현장 서유기>이다. 꽤 두꺼운 책이었으나 ‘백가강단’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읽었다는 사실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사실 읽을만한 다른 책도 없었다.


가끔 시간이 날 때면 ‘백가강단’을 보곤 한다. 집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삼국지 관련 영상뿐이어서 관심 있는 대목을 뽑아 보았다. ‘현장 서유기’라는 영상은 없었다. 


영상을 보지는 못했지만 강연 내용을 책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술술 읽히는 것은 물론 각 장의 내용이 완결성이 있어 다음을 기대하며 읽는 맛이 있다. <서유기>의 삼장과 역사 인물인 현장의 생애를 교차하며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 깊다. 아마 중국에서도 현장이라는 역사인물보다는 <서유기>가 더 유명한 탓이겠다.


몇몇 대목은 읽다가 배꼽을 잡았다. 예를 들어 이런 내용이다.


‘호胡’자가 붙은 물건은 대부분 왜래품을 뜻합니다. (…) 호취狐臭는 한의학에서 원래 액취腋臭라고 부르며, 겨드랑이에서 나는 암내를 말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호취胡臭’라고 불렀는데, 곧 호인들의 냄새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70)


예나 지금이나 냄새는 별 차이가 없구나. 그것도 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 먼 옛날 당나라 시대에도 국경이 있었고, 지금도 국경이 있지만 옛날의 동서 교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들의 길을 따라 서천 서역으로 떠날 생각을 했겠지.


상상컨데 그래도 현장의 모험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게 분명하다. 오로지 불법을 찾아 떠나는 그 여정의 고달픔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쉬이 상상하기 힘들다.


소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이 위급한 일에 부닥칠 때마다 “하늘을 부르면 천신이 응답하고, 땅을 부르면 지렁이 응답해주리라”고 관세음보살이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의 현장스님은 혈혈단신 외로운 몸으로 하늘을 불러도 천신이 응답하지 않고, 땅을 불러도 지렁이 응답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현장스님과 그 자신의 그림자뿐이었습니다. (121)


저자의 생생한 서술 때문이었을까? 현장의 모험이 자못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자신을 투신하여 기어코 길을 떠나는 사람의 여정은 얼마나 대단한가. 사막과 광야를 건너 그 길을 떠나게 만든 그 여정의 힘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를 단지 ‘종교적 열정’으로 퉁쳐서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인간이 담아낼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욕망, 이상, 염원 등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은 내년에 시안에 가려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대안탑을 직접 가기 전에 현장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읽고 보니 그 탑을, 그를 기린 절을 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다. 무얼 만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알고 있던 삼장이 아닌 이를 만나리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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