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 쪽지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꾸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글쓰기란 본디 꾸미기이기도 합니다. 말로 하던 것을 글로 쓰려면 과정이 필요하지요. 단어도 골라야 하고, 표현도 다듬어야 합니다. 말은 두서가 없이 나오기도 하지만, 글은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합니다. 문법도 신경 써야 하고, 맞춤법도 문제입니다. 말에 비하면 글은 수고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말도 영 꾸밈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 말하는 일은 잘 없지요. 생각과 말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우리네 삶을 보면 생각을 그대로 말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꾸밈이 덜한 대화가 있지요. 친구와 대화할 때와 교사와 대화할 때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친구도 어떤 친구냐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잘 보이고 싶은 친구 앞에서라면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보통 동무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별생각 없이 말합니다. 이야기의 주제를 정해놓지도 않고, 방향도 없습니다. 교사 앞에서라면 어떤가요? 어떤 교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속내를 내놓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아픈 기억입니다만, 고등학교 시절 마음에 있는 대로 말했다가 크게 뺨을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런지 아니면 그때의 당황스러움 때문인지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거리낌 없이 말했고, 교사가 무언가에 발끈하여 따귀를 때린 것을 기억할 뿐입니다. 덕분에 속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배웠습니다.
굳이 그런 경험이 없어도 우리는 마음을 그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사니 어른이니 하는 윗사람 앞에서 체면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말이란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문제는 늘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이를 먹고, 얼굴에 주름이 지면, 좀 높은 자리에 올랐다 싶으면 이 고귀한 윤리를 여지없이 까먹고 맙니다. 그래서 좀 우스운 현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싸가지없는 어른과, 예의 바른 청소년이라는.
다시 글쓰기로 이야기를 돌리면, 우리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속내를 말하기보다 좋게 보이도록 말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진솔한 말을 좋아하지 않지요. 옳은 말, 그럴싸한 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창 시절 교사와의 만남이 영 불편했습니다. 대화가 아닌, 각자 자기 역할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글쓰기 수업을 대화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능한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글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꾸미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좋은 글이 나오기 어렵지요.
좋은 글이 과연 무어냐 하는 데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일단 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힘이란 글의 뼈대,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것을 말하지요. 제 주장이니 생각이니 하는 것이 있으려면 스스로 글쓰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말을, 제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지난 시간, 각자의 상황을 들어보고 그 상황을 그대로 글로 담아보라고 했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답답함 등등을 그냥 글로 써보기로 했지요. 글을 읽으며 솔직함이 얼마나 강한 무기인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글에 힘도 붙고, 생기도 있습니다. 물론 유쾌한 사건을 글로 담은 것이 아니기에 마구마구 아름다운 글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미덕을 갖추고 있는 글입니다.
지금, 현재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니 글쓰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말하고 싶었던 주제이기도 하고, 늘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 까닭이겠지요. 이 글쓰기의 경험, 그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말을 꾸밀 궁리를 하다 보면, 생각을 꾸밀 요령을 피우다 보면 글쓰기가 영 부자연스럽습니다.
마침표가 되는 글이 있고, 쉼표가 되는 글이 있습니다. 생각을 온전히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글이 있고, 생각을 이끌어내는 도구로서의 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글쓰기는 후자의 글쓰기에 가까울 것입니다. 과정으로서의 글쓰기라고 할까요?
글을 쓰면서 고민도 들고, 질문도 생겼는데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해 안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렇게 안타까워할 일도 아닙니다. 정작 중요한 대답은, 찾지 않아도 발견되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대답이 스스로 찾아오기도 해요. 다만 쉼표를 찍고 기다리지 않는다면, 글쓰기를 하면서 궁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기약 없이 멀어질지 모릅니다.
그리니 고민이 다 풀리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기를.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지 말기를. 쉼표를 찍어야 문장을 완성할 수 있듯 그런 글은 그런 글 대로 좋은 미덕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