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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Oct 25. 2018

<삼국지 이야기>를 끝내며

옹달쪽지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국어 선생님은 꽤 유쾌한 분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퀴즈를 맞추면 사탕을 주기도 하고, 방과 후 학생들과 장기를 두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실력이 좋은지 포차를 모두 떼고도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 선생님이 아는 서점이 있으니 좋은 소설을 싸게 구입하게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혹하여 세 질의 소설을 구입했습니다. 차 트렁크에서 건네받은 소설은 생각보다 양이 많았습니다. <소설 이휘소> 상하권, <토지> 16권, 그리고 <이문열의 삼국지> 10권. 이렇게 도합 총 28권의 책 뭉치를 양손에 들고 집에 돌아갔어요. 학교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그 무거운 책을 들고 끙끙거리며 집에 돌아간 기억이 납니다.


<소설 이휘소>는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16권이나 되는 <토지>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어요.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뿐이었다면 그 선생님을 원망했을 거예요. 어린 학생에게 책을 강매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10권짜리 <이문열의 삼국지>는 저를 단숨에 사로잡아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예문당에서 나온 3권짜리를 읽은 게 전부였는데 10권짜리 삼국지는 정말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더불어 삼국지 게임도 그 열정에 불을 붙이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삼국지 3>라는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정말 밤을 새워 할 정도였습니다. 부모님 몰래 새벽에 일어나 게임을 하곤 했으니까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홀홀단신으로 게임 세계에 들어가 수많은 적을 상대했습니다. 그 재미는 잠을 잊게 만들 정도였답니다. 그 이후 ‘삼국지’라는 이름이 붙은 게임이라면 닥치는 대로 모두 해본 것 같습니다.


<삼국지3> 이 재미에 잠도 자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삼국지>를 주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누가 더 강하냐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전쟁에서 어떻게 했다면, 어떤 군주 밑에 어떤 장수가 있었다면 등등.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이름을 외는 것도 적잖이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였어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삼국지>와 멀어졌습니다만 여전히 <삼국지>의 인물과 이야기는 매우 친숙합니다. 최근에는 <대군사 사마의>라는 드라마를 통해 <삼국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삼국지 이야기’를 주제로 강의하는 건 적잖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옛 추억에 빠져보기도 했고,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삼국지>라는 작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한 연구자는 삼국지를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라 말합니다.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을 가르치고, 승자독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게다가 국가에 대한 ‘충의’를 강요하는 것까지. 잘 살펴보면 <삼국지>는 좋은 고전이라 보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십분 그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이 매력 넘치는 텍스트를 그냥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계륵鷄肋!! 진지하게 파고들 것 까지는 없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

'삼국지 박사'님의 책입니다. <삼국지>를 논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에요.


결국 ‘중국역사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삼국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삼국지>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삼국지>라는 일종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 중국을 바라보자는 기획이었지요. 다행히 6주간의 과정이 매우 즐겁게 끝났습니다. <삼국지>의 모든 줄거리를 다 다루지도 못했고, 중요한 사건, 인물을 모두 다루지는 못했지만 아쉬움은 아쉬운 대로 남겨둡시다. 그간의 시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강의 내내 이야기했지만, 저는 <삼국지>가 중국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가 그리스 사람의 것이 아닌 것과 같아요. 몇 년 전에 <300>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담은 영화입니다. 왜 미국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 역사를 영화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그 역사가 그리스의 것도, 페르시아의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져다 쓰는 사람이 그 재미난 이야기의 주인입니다. <삼국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 속의 인물, 사건, 고사성어가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 있어요.


<삼국지> 이야기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중국의 지리와 역사를 이해해보고자 했어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반복되어 나온 도시들, 장안과 낙양, 허도와 성도는 아마 대충 눈에 익었을 것입니다. 황하와 양자강도 기억에 남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중국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도 좀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여러 영상과 지도를 보며 중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기회였으리라 생각합니다.


함께 지도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마지막 시간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삼국지>가 사람들의 꿈을, 특히 난세의 꿈을 담은 이야기라는 이중톈의 해석에 동의합니다. 훌륭한 군주, 청렴한 관리, 불의에 맞서는 호걸. 이들에 대한 꿈이 <삼국지>를 지금까지도 풍성하게 만든 중요한 원동력이었겠지요. 지금도 <삼국지>가 의미가 있는 것은 오늘 우리 역시 그 어지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과 다툼이 여전하지요. 칼과 창이 없을 뿐. 때로는 조조와 같은 속임수가 필요할 수도 있고 유비 같은 끈질김을 가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동탁과 같은 탐욕스런 인물을 만날 수도 있고, 여포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대는 인물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제갈량 같은 성실한 인물이 있기도 하고, 사마의처럼 의외의 기회를 잡는 인물도 있겠지요. 역사가 그렇듯 삶도 복잡합니다.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못 읽었다면 이 기회에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내년에 함께 <중국역사문화기행>을 떠납시다. 시안과 청두를 돌아보며 <사기>, <삼국지>, <서유기>와 얽힌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특히 청두의 무후사를 거닐며 못다 한 <삼국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자세한 일정은 카페에 올려두었으니 참고하세요. 


https://cafe.naver.com/ozgz/1622


마지막으로 다음 <중국역사문화교실>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예고했듯 다음에는 <서유기 이야기>에요. <서유기>는 <삼국지>만큼 재미난 이야기랍니다. 대신 <삼국지>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꾸민 이야기라는 점에서 역사에 배경을 둔 <삼국지>와는 달라요. 그런가 하면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삼국지>에 비해 훨씬 적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도 간단해요. 그러나 이 때문에 훗날 많은 이야기꾼들을 사로잡았어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11월 3일 열린강좌에서 살짝 나누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를 더 해도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서유기 이야기>를 하기로 했어요. 우선은 이야깃거리가 떨어진 이유가 제일 큽니다. ^^;; 한편으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서유기>도 매우 재미있는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삼국지>를 통해서는 중원中原,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주요 무대를 보았다면 <서유기>를 통해서는 중국의 변방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 종교가 어우러진 모습을 살펴볼 거예요. 우리가 아는 중국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답니다. 


아마 <삼국지> 때보다 더 멋진 모험이 아닐까 싶어요. 커다란 산맥과 광활한 사막도 건너야 하고, 기묘한 요괴들이 사는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용궁과 저승, 신선과 천신들이 있는 천계까지 가봐야 하니까요. 분명 흥미진진한 모험일 겁니다. 매주 즐거웠던 <삼국지 이야기>처럼 다음 여정도 잘 준비해보겠습니다. 건강히 지내고 11월에 만나요.

https://cafe.naver.com/ozgz/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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