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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9. 2018

취푸의 밤거리

차이나는 옹달 #9 - 취푸편 丙


Tip1. 계획은 철저히 그러나 넉넉히

혼자 혹은 소수가 여행할 때는 변수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임기응변의 묘를 잘 살리면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을뿐더러 꽤 익사이팅한 여정을 즐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계획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간다면, 더구나 가이드라면 그럴 수 없다. 가능한 계획은 꼼꼼하고 철저하게 세우도록 하자. 그러나 늘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맞을 수 있는 법. 시간을 넉넉히 잡고 우선순위를 잡으면 알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Tip2. 저녁과 밤을 알차게

저녁 식사 이후 시간은 꽤 길다. 중국의 밤은 생각보다 캄캄하다. 우리네처럼 밤 시간을 길게 보낼만한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찍 숙소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기 마련. 길고 긴 저녁과 밤 시간을 알차게 보내도록 하자. 하루의 여정을 정리하고, 그날의 일정에 대해 함께 나누면 어떨까? 이번 여행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지난 4월 여행에서는 매일 간단한 일기를 썼다. 쓰는 만큼 남는 법. 가능한 꼼꼼하게 정리하도록 하자.


[칭다오]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표시는 아직 기꺼이 반길만한 말이 아니다. 아직도 중국산 물건이라면 못 미더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일일이 골라낼 수도 없는 일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상황에서 중국산 물건을 영 쓰지 않고 생활할 수도 없는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산 제품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산이라서 싸고 질 낮은 제품이라는 생각은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2000년 초 중국은 과거의 땅이었다. 어디에 가건 아직 개발이 안 된 우리 옛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여행의 서사는 주로 우리네 70~80년대 모습을 발견하고 왔다는 경험담이었다. 중국은 추억을 소환하는 나라,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라였다. 왜 그렇게 모든 것이 낡았을까?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보는 것이 모두 낡았다. 건물도, 거리도, 사람들도 낡아 보였다. 아마 그것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헌데 지금은 그 낡은 티를 발견할 수 없다.


첫째 날 우리는 칭다오의 옛 성당 앞에 모여든 수많은 커플을 만났다. 어찌나 웨딩 사진을 많이 찍던지. 아주 지극히도 작은 단편적인 사건이겠지만 뭔가 역동성이 느껴졌다. 우리는 출산은 물론 결혼도 하지 않는데. 실제로 어떤 기사에 따르면 자국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높은 나라가 중국이란다. 현재 중국은 눈부신 발전 중이다. 잠룡물용潛龍勿用의 시간은 지나갔다. 비룡재천飛龍在天, 한창 하늘을 날아오르는 시기일지 아니면 항룡유회亢龍有悔, 이미 올라갈 대로 올라가 이제 고꾸라지는 일만 남았는지는 논란이다. 나는 아직도 중국이 비상할 날이 한창일 것이라 생각하는 입장이다.


[飛龍在天] 중국의 부상은 엄연한 현실이다.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는 해를 등지고 숙소에 돌아왔다. 어제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걷고, 오늘도 끊임없이 걸은 탓에 적잖이 피곤하다. 일행 중 한 명은 저녁을 거르고 숙소에서 쉬겠단다. 셋이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간단한 컵라면이라도 하나 사 오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 물으니 모퉁이를 돌아 조금 걸어가면 超市, 마트가 있다고 한다. 칭다오 같은 대도시야 어디 가든 편의점을 볼 수 있지만, 취푸 같은 현급시에는 편의점을 쉬이 보기 힘들다. 


저녁은 또 무얼 먹어야 하나. 일단 큰길로 나서 보기로 한다. 가능하면 이번에는 가정식요리(家常菜)를 먹어봐야지. 다행히 얼마 걷지 않아 작은 식당을 발견했다. 이미 어둠이 내려서 그런지 식당에는 아무도 없다. 뭐 어떤가. 테이블에 앉아 익숙한 요리 몇 개를 주문했다. 감자볶음과 배추 볶음 등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하루의 피로를 몰아내자고 맥주도 함께 시켰다.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 아닌가. 아무래도 여행의 행복 가운데는 식도락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을 배워도, 멋진 것을 보아도 식후경이다. 이렇게 멀리 왔으면 맛난 것을 먹어야지. 중국 여행의 경험을 들어보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헌데 우리 일행은 매일의 식사가 맛있었다. 한 끼도 버릴 것 없이 맛있는 것들 뿐이었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궁리해 본 결과는 이렇다. 첫째, 단체 여행인 경우. 대부분 단체여행 상품으로 중국을 경험하는데, 그럴 경우 식당 음식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단체 여행 코스로 잡힌 식당의 악명은 잘 알려져 있지 않나. 둘째, 본디 여행지의 음식은 맛없다. 여행객의 수와 식당 음식의 수준은 반비례한다. 서울에서도 여행지로 유명한 곳의 식당은 엉망이기 쉽다. 현지인의 입맛을 믿자. 셋째, 가이드의 역량 문제. 음식도 맥락이다. 어떤 순서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같은 음식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여행단을 이끌며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식당과 음식을 경험하고자 했다. 아무리 맛있어도 매번 먹으면 질리기 마련.


[@취푸] 무엇을 먹느냐는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그러니 일단 잘 먹고 볼 일이다. 


15년 간 달라진 중국의 모습 가운데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중국 안에서도 미각이 보편화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가나 훠궈집을 볼 수 있고, 어디 가나 니우로우미엔을 볼 수 있다. 훠궈가 쓰촨이나 충칭 음식이라는 것을, 니우로우미엔이 란저우 음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안동찜닭'이 안동의 찜닭이 아니라 찜닭의 보편 명사가 되어버리는 현상과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일행은 음식에서 크게 낯설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 입맛이 더 국제화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더 궁리해보기로 한다.


저녁을 먹고 컵라면 하나를 사기 위해 일러준 대로 길을 걸었다. 컴컴한 길이 낯설다. 캄캄해서 길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희미한 가로등 불이 비추는 길이 어색하다. 대로를 건너고 두 블록 정도 걸었을까? 작은 오토바이가 잔뜩 늘어선 주차장을 보니 이곳이 마트인가 보다. 어두운 주차장을 지나 건물로 들어섰다. 두꺼운 비닐이 발처럼 늘어선 입구를 지나니 생각보다 안이 무척 넓다. 식당이며 상점들이 안에 늘어서 있다. 조금 들어가니 마트가 있는데 깜짝 놀랐다. 마치 동굴 속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듯. 마트 특유의 밝은 조명이 우리를 반긴다.


세상에... 밖은 저렇게 컴컴한데 안은 이렇게 환하다니. 현급시의 수수함은 전혀 없다. 서울시의 마트를 옮겨놓은 듯 커다랗고 세련된 마트에 넋을 잃었다. 사람도 많다. 물건은 없는 게 없다. 식료품도 다 갖춰있다. 유제품 코너에 보니 다양한 우유에 치즈, 버터 등이 가득하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인지, 저들의 소비패턴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대도시뿐만 아니라, 그 아래까지도 소비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분명하다. 십 수년 전에는 성급시인데도 번듯한 백화점이나 마트 하나 없었는데.


일행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남의 살림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마트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아차! 숙소에서 컵라면을 기다리는 일행이 있었지!! 만약 함께 나왔다면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다. 역시 우리네나 중국이나 마트는 무릉도원이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눈을 빼앗으니. 밝고 화려한 마트를 나와 다시 컴컴한 길을 걸었다. 몇 년 뒤면 이 컴컴한 밤거리도 사라지지 않을지. 불야성을 이루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태산] 다음 목적지는 태산! 공자가 천하를 작다고 했다는 곳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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