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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26. 2018

태산이 높다 하되

차이나는 옹달 #10 - 태산편 갑甲

Tip1. 취푸-태산

취푸와 태산은 매우 가깝다. 고속열차로 약 20분이면 도착한다. 그러나 중국의 특성상 넉넉히 시간을 잡아야 한다. 역으로 이동하기까지의 시간, 역 검색대를 통과하는 시간, 역에서 다시 시내로 이동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1~2시간 정도 넉넉하게 잡도록 하자. 순서는 '태산-취푸' 보다는 '취푸-태산'이 적절하다. 산에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Tip2. 태산에 오르는 여러 방법

태산에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대표적인 홍문 코스의 경우,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올라가 다시 케이블카를 타는 방법. 홍문에서 중천문까지 오르고 케이블카를 타는 방법.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올라가 중간부터 오르는 방법. 여기에 다른 코스를 참고하면 방법은 더 많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홍문에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힘들면 중간에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산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명산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까지 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만 중국에서 두 산에 오르는 기회를 얻었다. 하나는 바로 백두산. 


처음 중국을 찾았을 때, 백두산에 올랐다. 널리 알려진 대로 천지 코앞까지 도로가 놓여있어 지프를 타고 산에 오를 수 있다. 기억하기로는 한 사람에 40위안. 우리는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므로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쉬이 볼 수 없는 산세가 기억에 남는다. 다행히 천지를 보았다. 푸른 하늘과 푸른 물, 아쉬운 것은 천지의 날씨 변화가 심한 바람에 고작 30분 정도만 누릴 수 있었다는 점. 여튼 백두산의 경험은 꽤 짜릿했다.


올 중국 여행은 시기가 특별했다. 4월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남북정상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9월 중국 여행에서 돌아오고 얼마 뒤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났다. 게다가 백두산에 오르기까지. 돌아보니, 내가 백두산에 처음 오른 것은 2000년 여름. 김대중 대통령이 북을 방문하고 약 한 달 뒤였다. 그때는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남쪽 저편이 아득하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언젠가 남쪽으로 백두산을 오를 날이 오겠지. 


역사적 사진. 내가 오른 곳은 아마 저 북쪽 봉우리였을 테다. 언젠가 나도 천지 물을 만져봐야지.


여행 기획을 하면서 태산을 넣은 것은 <사기> 때문이었다.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수차례 외기는 했으나 여느 사람처럼 태산에 별 관심이 없었다. 헌데 <사기>에서 진시황이 태산에 오른 이야기를 읽었다. 봉선이라는 전설적인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었다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제대로 제사를 지내지도 못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부덕한 황제를 하늘이 받아주지 않아서라나 뭐라나.


이후 다시 봉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자 한 사람은 바로 한무제였다. 그는 유학자들을 모아 제사의 방법을 묻고 전설로 전해지는 제사를 직접 치르려 하였다. 그가 어떻게 제사를 치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기>를 읽는 사람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 봉선 때문에 불굴의 역사가 사마천이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봉선에 참여하지 못하여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 사마천에게 사가의 책무를 전한다. 그렇게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었다.


사마천은 천하 사람들 대표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제왕들의 욕망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사기: 봉선서>는 역대 제왕들의 봉선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이 봉선이 단순히 상징적 제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신선이 되고 싶어 하는, 하늘의 천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태산은 그저 높고 웅장한 산이 아니었다. 고대인에게는 하늘에 맞닿은, 신들의 공간이었다.


[오대부송] 태산에 오르던 진시황이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칭다오가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는 공간이었다면, 취푸가 역사와 철학을 보여주는 곳이었다면, 태산은 신화와 전설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취푸 코앞이니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들릴 수 있다. 바다를 건너 이역 만리 이국땅에 갔는데 신화와 전설의 산 태산을 그냥 지나친다니 뭔가 너무 아까웠다. 그러니 태산을 가자! 


처음에는 여느 산처럼 그냥 땀 흘려 오르고 정상을 휙 돌아본 다음 내려올 요량이었다. 그러나 정보를 찾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태산에 올라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사실. 결국 일출을 보는 것으로 전체 일정을 수정했다. 정상에서 숙박하고 새벽에 일출을 보도록 하자. 응? 어째 점점 일이 커진다. 


4월 여행에서는 태산을 들린 뒤, 취푸를 들리기로 했다. 짐을 칭다오에 모두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태산에 올라 1박을 하고 이튿날 돌아오는 일정.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태산에 오르기 전, 대묘岱庙를 들렸는데 대묘도 만만치 않게 커서 태산에 오르기 전에 너무 체력을 소진했다. 태산에서 내려와 오후에 취푸를 관광하겠다는 것도 무리였고. 결국 9월 여행에서는 취푸에서 1박 한 뒤 태산에 오르기로 했다.


태산에 오른다면, 여유가 있다면 대묘를 들리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커다란 건물이 이어진 옛 유적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천황전天皇殿, 천황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니 한번쯤은 들려 볼만한 곳이다. 물론 이는 옛글을 읽는 낡은 사람의 집착일지 모른다. 4월 여행의 동료들은 매번 크고 웅장한 건물을 보았는데 그게 그거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으니.


[대묘岱庙] 천황을 모시는 곳인만큼 웅장하다. 


취푸에서 맞는 아침은 새로웠다. 이후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천천히 이 오래된 고을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다시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아침 먹을 곳을 찾을 겸, 나아가 택시 기사라도 있으면 잡아서 타이안(泰安), 즉 태산 아래까지 얼마에 가느냐고 물어볼 요량이었다. 생각보다 취푸의 아침은 한산했다.


일부러 골목을 골라 걸었다. 골목에 접어드니 우리네 공부방처럼 이용하는 곳이 꽤 많았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하나쯤 골라 들어가 자세한 사정을 물어봤을 텐데. 이후 돌아와 호텔 로비에서 이런저런 사정을 물어보았다. 듣자 하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봐줄 공간이 필요하다고. 게다가 아이들을 공부시키려는 열기도 만만치 않다고.


걷다 보니 학교 앞에 이르렀다. 아마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듯, 부모 손을 잡고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이 정겹다. 흥미로운 것은 학교에도 공자 상이 있다는 것. 어쩌면 공자의 고을에서 공부하는 이 아이들은 공자의 글을 여느 다른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읽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를 데려다주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내가 영 말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학교 대문에 '표준어를 씁니다'라는 말이 붙은 것을 보니 내 탓만은 아닌 듯싶다. 하긴 오가며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 산둥 방언이 인 듯.


왼쪽:시례학당诗礼学堂이라는 이름이 흥미롭다. / 오른쪽: 표준어를 쓰고 경전을 암송한다. 문혁의 후예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학교 안애 공자의 상이 있다. 21세기 공자는 중화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공자의 부활이라 해야할까, 공자의 역습이라 해야할까? 


돌아오는 길에 학교 앞에서 흥미로운 먹거리를 발견했다. 작은 빵을 쪄서는 그 사이에 돼지고기 다진 것을 넣어 팔고 있었다. 소박한 햄버거라고 해야 할까? 가격은 5위안. 집어먹어보니 나름 맛이 좋다. 아침 공기에 소박한 길거리 음식이라니. 이 여유를 더 즐기고 싶지만 어서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여정의 최대의 고비 태산 등반이 남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중턱까지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가능하면 끝까지 올라볼 요량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태산] 저 계단이 보이는지. 태산에 오르려면 수 없이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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