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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07. 2018

하늘에 오르다

차이나는 옹달 #11 - 태산편 을乙

Tip1. 태산 일출

태산에서 일출을 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출에 맞춰 새벽에 산을 오르는 것, 다른 하나는 정상에서 숙박한 뒤에 일출을 보는 것. 2018년 두 차례 모두 후자를 선택했다. 숙박비가 좀 비싸기는 하나 일출의 장엄함을 고려하면 결코 아깝지는 않다. Tip.com에서 '태산 정상'으로 검색하면 여러 숙소가 나온다.  


Tip2. 짐은 무조건 가볍게

어떻게 태산을 오르던 짐은 무조건 가벼운 것이 좋다. 산 정상은 아래보다 온도가 낮다. 두꺼운 옷을 가져가야 할 듯싶지만 정상에서 군용 파카를 빌리는 것이 더 좋다. 생각보다 따듯하고 나름 중국식 멋(?)을 즐길 수도 있는 기회라 생각하자. 숙소에서 빌려주기도 하고, 거리에서도 빌려주기도 한다. 잘 골라 빌리도록 하자. 




동아시아 문명에서 산은 신비를 간직한 공간이다. 신령한 신들이 모여 있으며 다양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전설 같은 이야기가 담긴 산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태산은 옛사람의 상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손오공이 머물렀다는 화과산에도 가 볼 수 있고, 여러 소설 속에 나오는 아미산에도 오를 수 있다. 물론 그런 산에 오른 들 손오공이나 무림고수를 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이야기가 얽힌 산에 오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저 높이 우뚝 솟은 산이 아니라 특별한 이야기가 깃든, 또 다른 이야기를 품어낼 가능성이 있는 그런 장소이기 때문이다. 만약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이 목표라면 태산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고작 1,500여 미터의 평범한 산이니. 운동삼아 태산에 오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단순히 땀 흘리러 해외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태산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 산이 선물하는 고요함, 청정한 자연을 태산에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수많은 사람이 산에 오르내리느라 북적거린다. 게다가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온통 돌계단이다. 산길을 걷는 즐거움 따위는 없다는 말씀.


[까마득한 돌계단] 직접 태산을 오른다면 이 돌계단에 대해 한참 떠들어 댈 것이 분명하다.


중국을 공부한다면 태산은 흥미로운 장소다. 전설의 제왕, 진시황과 한무제가 오른 산으로 유명하다. 그것뿐인가. 공자도 이 산에 올랐다 한다. 그 밖에도 찾아보면 태산에 오른 명사들이 적잖을 테다. 태산의 등산길 좌우에 새겨진 수많은 비문은 태산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바로 '등고필자登高必自라는 비문이다. 홍문 루트를 오르면 입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직역하면 이렇다. '높이 오르려면 여기서부터"


<중용>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군자의 길을 비유하면 먼 길을 갈 때엔 반드시 가까운 데서 시작해야 하며, 높은 데 오를 때엔 반드시 낮은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 조금 익숙한 사자성어를 꼽자면 '등고자비登高自卑'라는 말이 있다. '등고필자'나 '등고자비' 모두 <중용>에서 따온 말이다. 이렇게 태산은 입구부터 다르다. 이 비문은 태산에 오르는 것은 그저 높고 큰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말한다. 마치 '군자의 길(君子之道)'을 가는 것과 같다는 것. 그래서 곁에는 '공자등림처孔子登臨處'라는 이름의 문이 있다. 공자가 태산을 오르기 시작한 곳이라는 뜻이다.


[등고필자], [공자등림처] 태산 등반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자사는 <중용>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영상의 산은 또 다른 명산인 화산華山


지난 4월에는 사전에 너무 체력을 많이 소모한 바람에 중간에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랐다. 이번 여정의 개인 목표 가운데 하나가 태산에 정상까지 오르기. 개인의 목표는 그렇다 치고, 여행에 참여한 동료들은 어떨까 궁금했다. 산에 오르는데 땀방울 하나 흘리기 싫어할 수도 있고, 탈이나 산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고. 그래도 다 같이 태산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태산에 왔으니 또 글을 읽어야지. 벤치에 앉아 <사기 진시황본기>, <사기 효무본기>와 <사기 봉선서> 일부를 읽었다. 태산에 오른 진시황과 한무제의 이야기가 담긴 부분이었다. 그것뿐인가. <봉선서>에 따르면 전설의 제왕 순임금도 태산에 올랐다 한다. 곳곳에 쓰여있는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이라는 말이 그냥 붙은 게 아니다. 전설과 역사의 산이라 불러도 될 듯싶다.


앞서 이야기했듯 산에 오르면 무수한 비문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수많은 문을 지나야 한다. '일천문一天門'을 비롯해서 다양한 이름을 가진 문이 기다리고 있다. 다 읽고 곱씹어 보면 좋겠지만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땀이 흐르고 힘들어 일일이 읽고 헤아려볼 여유가 없다. 중간에 사당도 많다. 관우를 비롯해 재신財神, 약신藥神 등 수많은 신의 사당을 지나야 한다. 역시 일일이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 가끔 지치면 부근에서 쉬면서 돌아볼 정도나 될까.


일행 가운데 둘은 지쳐서 중간에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나와 다른 한 명은 정상까지 도보로 오르기로 했다. 중천문中天門, 아직 중간인데 벌써 꽤 지쳤다. 산을 즐기지 않기 때문인지, 먼 타국 땅이라 그런지, 온통 돌계단이라 그런지 너무 힘들다. 정신이 멍멍하고 마음속에는 일찌감치 후회가 자리 잡았다. 뭣 하러 힘들게 이 산에 오른 걸까? 누구는 올라가고 싶은 만큼 오르는 것이 등산이라 말하는데, 그렇게 여유로운 산행을 하기에는 글렀다. 정상에 숙소를 예약해두었기 때문.


좀 쉬고 다시 걸어야 한다. 정상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은 데는 케이블카를 영 싫어하는 까닭도 있다. 본디 케이블카 따위는 영 질색인데, 태산의 것은 더욱 그렇다. 어찌나 높은 데 설치되었는지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누구는 짜릿하고 재미있다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을 뿐이다. 솔직히 일행 모두 케이블카를 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다. 어쩌겠는가 가이드도 따라 타야지. 허나 정상까지 도보로 오르는 기쁨(!)을 누려야 한다며 한 명을 설득해냈다. 다행이다. 그 끔찍한 케이블카를 타지 않아서.


[태산의 짐꾼들] 물이 비싼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과 말이 실어 나르기 때문


중천문 이후는 더 정신이 없다. 전날 취푸에서 지팡이를 사두기를 잘했다. 지팡이가 없었다면 꽤 고생했을 것이다. 계단 오르는 데 힘을 쓰느라 말도 줄었다. 둘을 보내고 둘이 산에 오르지만 각기 따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수한 돌계단을 지나고, 다시 여러 문을 지나고, 비석에, 돌에, 절벽에 새긴 비문을 지나고, 오르고 올라... 드디어 남천문南天門에 올랐다. 


행여 일행이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지만 웬걸, 생각보다 일찍 왔다며 반긴다. 중천문에서 헤어질 때는 죽을상이었는데 산 꼭대기에서 만나는 표정은 웃음이 가득하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즐거움을 선사한 탓이다. 순자는 높은데 오르면 보는 것이 다르다 말했다. 역시 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다르다.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이 들뜬다.


남천문까지 오르면 또 별세상이 펼쳐진다. 산 꼭대기에 식당이며 호텔이며 상점이며 하는 것이 줄줄이 늘어선 까닭이다. 천가天街, 옮기면 하늘 거리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은 태산 꼭대기에 천신天神들이 산다고 생각했다. 옛사람들의 상상 속에 이곳은 하늘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꽤 땀을 흘렸지만 흘린 보람이 있다. 하늘에 오르려면 그 정도 고생은 해야지. 


하늘에 올랐으니 신선 노름을 해야겠지만 우선은 쉬어야 한다. 땀을 식히고 좀 시간이 지나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천가 입구의 계단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석양을 보고 있다. 이 시간에 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일 아침 일출을 보겠지. 내일은 일찍 새벽같이 일어나야 한다. 일출을 보려면 태양보다 먼저 눈을 떠야지!!


[천가] '하늘 거리'라는데 생각보다 세속적이고 생각보다 소박하다
[태산의 석양] 태산에 올라 지는 해를 보내고 뜨는 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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