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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27. 2018

공자, 역사와 신화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 세 번째 쉬는 시간

공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사람입니다. 사실 이쯤 되면 워낙 시간이 멀어 어느 정도 옛날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지요. 막연하게 그저 옛날 사람이겠다 생각하기 쉽습니다. 허나 공자가 청동기시대를 살았다고 하면 이야기가 조금은 다르게 들립니다. 그렇게 옛날이었나 싶지요.


오늘날 정보가 쉬이 유통되는 시대에서 '팩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말도 없는 듯합니다. 정보가 유통되는 속도만큼 거짓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참 거짓을 가르는 일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열람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든 '팩트'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혜택을 많이 받는 분야가 역사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대 사람의 문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말이지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조선 시대 무슨 왕 시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전부 열람, 검색 가능하기 때문이예요. 원문과 번역문을 모두 제공합니다. 그뿐인가요? 중국의 여러 사사史书도 조금만 노력하면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팩트 체크'가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금방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사에 근거한 것인지 야사에 근거한 것인지도 쉬이 알아볼 수 있어요. 


헌데 공자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우선은 앞서 소개한 것처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예요. 워낙 옛날이라 그에 대한 기록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쉬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공자의 생애는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공자세가>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 자체가 개관적 역사기록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주장이 많아요. 사마천이라는 개인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까닭입니다. 


<공자세가>의 경우에도 후대 학자들에게 적잖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를 가장 깊이 연구한 사람으로는 청대의 최술이라는 사람을 들 수 있어요. 그의 <수사고신록>은 <공자세가>의 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밝혀냈어요. <공자세가>를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마천이 의도적으로 공자를 깎아내리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수사고신록>, 최술


사실 더 어려운 점은 역사 기록의 신빙성 문제보다는 이른바 ‘신화’가 덧씌워있기 때문입니다. 공자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이 부풀려지고 화려하게 치장되었어요. 이런 까닭에 후대에는 어느 것이 역사이고, 어느 것이 신화인지 조차 분간하기 힘든 지경에 이릅니다. 


공자와 자주 견주어지는 예수를 예로 들어봅니다. 예수의 생애는 <신약성서> 네 권의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 네 권의 책은 각각 조금씩 다른 입장에서 예수의 생애를 서술합니다. 조금 신경 써서 읽으면 네 권의 책에서 묘사하는 예수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후대의 기독교는 이 차이를 해결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기는 했으나 말끔하게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후대의 학자들 가운데는 이 네 권이 담은 예수의 모습 이외에 다른 예수의 모습은 없을지 탐구하기도 했습니다. 신학,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는 입장이 아닌 다른 입장에서 예수를 연구해보자는 시도이지요. 신화의 모습을 걷어낸 인간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관점에서 그려진 예수를 ‘역사적 예수’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역사적 예수는 교회 안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어느 것이 인간 예수의 얼굴에 가까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사기: 공자세가>가 공자의 생애를 설명하는 일차적인 자료이지만 그 역시 신화적 흔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마천은 공자가 송나라의 후예라고 하는데, 역사적 공자가 정말 그 후예인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공자를 높이기 위해 송宋이라는 뿌리 깊은 나라의 후손으로 공자를 놓은 건 아닐지요. 그러고 보면 예수도 비슷한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공자세가>라는 제목부터 공자의 달라진 지위를 보여줍니다. <세가>란 본디 왕공제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책입니다. 공자가 여기에 이름을 올린 것은 사마천 시대에 공자가 크게 존숭 받았던 까닭이지요. 후대 사상사에서 공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죄다 <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공자가 <세가>에 이름을 올릴 이유가 없습니다. <열전>에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풍성한 논의가 벌어지면 좋겠지만 ‘역사적 공자’를 구성할 만큼 연구 성과가 많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여전히 공자를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신화의 옷을 입은 성인으로 대우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좀 조심스러워하지요. 암.


보수적 학풍에서 보자면 좀 불편할지 모르지만, 공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책을 소개합니다. 시라키와 시즈카의 <공자전>이라는 책입니다. 그는 무축巫祝이라는 관점에서 공자의 생애를 추적합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해석에서만 공자를 읽어왔던 입장에서 저에게 이 책은 꽤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공자를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는 책이었습니다.


<공자전>, 시라카와 시즈카


저는 개인적으로 공자 연구자라기보다는 <논어> 연구자, 더 넓게는 고전 연구자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조금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 공자의 생애는 크게 신경쓸 주제가 아닙니다. 텍스트에서 공자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가 중요하지요. <논어>의 경우 텍스트에서 공자 본인의 생애에 대해 매우 파편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까닭에 <논어>만으로는 공자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여전히 공자는 다른 의미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우리 삶은 물론 동아시아 문명에서 공자는 무시할 수 없는 유의미한 존재입니다. 또한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는, 새로운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기존의 기대와는 어긋나지만 공자의 새로운 면모를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첨언하면, <공자와 제자들의 유쾌한 교실>에서는 가능하면 <논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입니다. <논어>의 관점, 문제의식에서 벗어나는 주제는 가능한 간략하게 다룰 생각입니다. 그럼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어째서 <논어>는 공자의 생애에 대해, 공자의 출신에 대해 별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일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답은 다른 글에서 간단히 밝혔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까닭이겠지요. 저 역시 <논어>를 이야기하면서는 인간 공자, 역사적 공자에 대해 가능한 크게 무게를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공자의 얼굴에서 누구의 얼굴이 비치지 않나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쉬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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