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다시 입에 댔다. 중국에 다녀온 뒤로 몸에 살이 붙은 것이 느껴졌다. 보름간 매끼를 풍성하게 먹은 까닭이리라. 이 몸에 술배로 다시 살을 찌우지 말아야지. 마침 몸도 아파 술을 멀리했다. 허나 酒님은 가깝고, 제 다짐은 멀다. 술을 마시며 이래저래 드는 상념이 많다.
수요일은 마오 세미나가 있다. 요즘은 마오의 글을 직접 읽는다. 오늘은 <지구전론>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꽤 흥미진진하게 읽은 글이었다. 전쟁으로 단련된 기민한 정신. 끊임없이 사태를 분석하되 모호한 말로 남기지 않는 과감함. 대중을 사로잡는 명쾌함. 현실의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전환시키는 탁월한 전복의 능력. 읽으며 여러 차례 탄복했다.
마오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는 단순히 역사적 인물 마오쩌둥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가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현대 중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중국에서 마오의 그림자가 지워질 수 있을까? 그 역시 역사의 뒤로 사라지며, 언젠가는 그의 육체도 땅에 떨어져 썩어버릴 것이다. 허나 그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
마오를 읽는 것은 중국을 읽기 위함이다. 중국이라는 세계, 나라, 문명의 공간, 역사의 실체. 그렇기 때문인지 세미나에는 늘 현재의 중국이 소환된다. 중국을 어떻게 평가하든, 마오를 어떻게 생각하든 탐구의 정신만은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 중국이 어떤 얼굴로 다가오든 이를 소화하고 읽어낼 주관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오의 말을 빌리자. 주동성主动性!
연구실에서 루쉰 강좌를 하게 되었다. 사실 기꺼이 하고 싶은 강좌는 아니었다. 우선 루쉰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 스스로 공부가 미진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이른바 '각잡고' 루쉰을 읽어온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전공자의 태도로 루쉰을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꾸로 거기에 어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웹자보를 만들었다. 늘상 그렇듯 귀찮음과 구차함이 조금은 묻어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손재주도 감각도 좋은 사람이 아니니 귀찮을 수밖에. 공을 들인다고 빛나지 않고, 크게 나아지는 것도 별로 없으니. 구차함이란 좀 복잡하다. 강의하는 사람이 직접 이런 것까지 만들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문득 솟아오르곤 한다. 제 스스로를 꾸미고 포장하고, 나아가 널리 사람들에게 파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지식을 다루는 태도라고 할까? 아니면 낡은 권위 의식의 발현일 수도 있고.
가끔 솟아오르는 마음이지만 '남성 지식인'이라는 말이 선망이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결코 좋은 의미로 말하지 않는다. 허나 나는 때로 저 말이 부럽다. 그래서 습관처럼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남성'이라는 말에 끌리는 것인지, 아니면 '지식인'이라는 말에 끌리는 것인지. 여튼 끌린다는 말은 저 말로 호명되지 못한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쯤 '남성 지식인'이 될 것인가?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객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불쑥 이런 말을 꺼내놓는 것은 '남성 지식인'은 웹자보 따위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남성 지식인'이라면 떠오르는 인간들은 도무지 저런 걸 만들 수 없겠지. 이런 생각 끝에는 '남성 지식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무능'이 아닐까 질문해 보곤 한다. 여튼 또 하나의 웹자보를 만들었다.
기왕 웹자보를 올렸으니 홍보도 함께 하도록 하자. http://experimentor.net/lecture?vid=14 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를 통해. 세상에 많고 많은 루쉰 강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탄탄하게 공부하고 글쓰기까지 하는 과정이니 재야의 인물들을 환영 하노라. 젠장, 이러니 시장에서 팔리지 않지...
아이는 반장이 되고 싶다 했다. 며칠 뒤 말을 바꿨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부끄럽다며.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라 했다. 은근히 미끼를 던졌다. 반장 선거에 나서면 고기를 사주겠다고. 어쨌든, 제 욕망을 감추고 쭈삣쭈삣 하는 것보다는 좌절하더라도 단상 위에서 실패를 맛보는 것이 낫지 않나.
아이는 부반장 선거에 나갔단다. 두 표를 받아 떨어졌다고. (세 표를 받은 친구가 부반장이 되었다.) 늦게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들으니, 9명의 친구들이 부반장 선거에 나섰단다. 참, 이 반은 전체 인원이 12명이다. 그래도 자리에 앉아 공약(!)을 듣는 세명의 시선이 부담되었단다.
그래도 두 명이나 응원해주었지 않느냐는 말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단다. 그중에 하나는 나야. 어쨌든 약속을 지켜야지. 내일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음...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인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