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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서 눈을 감을 때 천하는 어지러워진다

선농인문학서당 송암의 글쓰기

by 기픈옹달

맹자는 양혜왕, 제선왕 등 제후를 만나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군주들은 어떻게 부국강병을 이뤄 생존하고 천하를 제패할지를 질의한다. 맹자는 ‘이익이 아니라 도리를 논하라’/‘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눠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맹자의 핵심은 인정仁政,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는 정치이다. 맹자는 군주의 욕망을 우선하고 백성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가 횡행하기 때문에 천하가 어지러워졌다고 보았다. 그랬기에 부국강병을 묻는 군주에게 이익 대신 백성을 중심에 둔 정치를 이야기했다.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라는 맹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 다만, 천하가 어지러운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맹자는 사람을 위한 정치가 부재하는 현실을 이유로 꼽았으나 내 생각으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온고지신’은 ‘옛 것을 익혀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 역사를 만들었고 역사에는 유의미한 경험들이 담겨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에서 다양한 모습의 지혜와 가치, 용기, 희망을 발굴하고 오늘의 삶을 위한 유용한 조언으로 참고할 수 있다.


인간은 온고지신의 자세를 갖지 못해 실수를 반복한다. 역사를 세심하게 살펴 현재의 유용한 조언으로 응용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진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되 과거의 사건을 암기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온고지신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고, 역사를 배우는 근본 이유를 망각한 것이다.


천하가 어지러운 상황은 어떤 모습일까? 『사기』는 상고시대부터 한漢의 역사를 서술하고, 『삼국지』는 후한 말에서 삼국/위진 시대를 다루는 역사서이다. 『수호지』는 북송 말의 역사적 상황이 담긴 문학작품이다. 위 작품에서 ‘천하가 어지럽다’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춘추전국/초한쟁패/삼국~위진 시대/북송 말엽이다. 각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천하가 어지럽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의 통치 세력이 몰락하고 질서가 무너진다. 개인이나 각자 세력의 이득을 중시하는 세태가 나타나 지방의 군벌/제후가 난립해 전쟁을 거듭한다. 다수의 피지배층은 다양한 고통과 어려움으로 인간 이하 수준의 삶을 산다.


따라서 ‘천하가 어지럽다’는 것은 한 공동체, 사회, 세계에서 보편적 정당성을 지닌 질서가 무너지고 그 이면에 숨어있던 인간의 욕망이 속속 드러나 서로 충돌하는 시대를 말한다, 소수 지배층의 이익 다툼으로 절대다수의 피지배층이 희생당하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산다.


온고지신의 자세가 없어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예는 오늘날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을 접했다. 어느 극우 지식인이 미디어에서 ‘백범 김구는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이고 그를 암살한 안두희는 진정한 애국자’라고 발언했다. 게다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소리를 공공연히 떠들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이 말을 꺼낸 인물이 어떻게 역사를 공부하고 인식했는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니, 역사책을 보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는 김구 선생을 ‘빈 라덴’에 비교하며 테러리스트로 지목한다.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과 아무 이유 없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테러 행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역사를 어떻게 자기 입맛대로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을까? 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김구의 행적과 영향을 제대로 고찰하지도 않았고, 김구를 테러리스트와 억지로 동일시했다. 김구와 오사마 빈 라덴이 지향하는 목표가 전혀 다른데도 말이다. 이 극우 논객의 발언은 온고溫故는 물론이고 지신知新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한 망언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온고지신의 자세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논지를 전개하는 지식인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망각’을 넘어서 지난 세월에 대한 ‘오해’을 낳으면서 앞으로의 역사를 더욱 어지럽게 뒤흔든다. 단순히 과거 사건을 외우는 것보다 역사를 어떻게 공부하고 해석하느냐가 진정으로 중요하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없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무조건 현대의 인물이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온고지신의 자세가 없다면 사회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은 물론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군주가 이전의 역사를 제쳐놓고 마구잡이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평안해질까? 최전방에 배치된 지휘관이 이전의 사례를 제쳐놓고 마구잡이로 전쟁을 한다면 효과적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 현실에서 부딪히며 겪는 경험도 귀중하다. 그러나 역사에서 얻는 지혜는 현실에서 고난과 역경을 겪지 않고도 삶의 문제들을 수월하게 해결하는 원동력이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천하를 어지럽히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역사를 보고도 눈감아버리는, ‘온고지신의 부재不在’가 도사리고 있다.


선농인문학서당 '송암'의 글쓰기




* 서울사대부고 선농인문학당에서 쓴 글입니다.

* <오늘을 읽는 맹자>를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을읽는맹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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