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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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책의 서문을 나눕니다.
시골 교회에는 종이 있었다. 뎅뎅뎅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교회를 다녔다. 교회는 학교, 집보다 더 푸근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세계문학 전집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매주 교회에 가서 한 권씩 책을 빌려보는 것이 낙이었다. 그것이 유년시절 거의 유일한 독서였다.
수험생이 되어서는 성경을 끼고 살았다. 손바닥 크기의 포켓 성경이 늘 교복 안주머니에 있었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이면 습관처럼 꺼내 읽었다. 낡은 노래 가사처럼 ‘나의 사랑하는 책’이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표어를 자랑스레 내세우는 한동대학에 진학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축하, 아니 축복해주었다.
이 글의 태반은 모교, 한동대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담고 있기도 하다. 교회 세습, 동성애 반대 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요즘 교회에 나가지도 않고, 성서를 즐겨 읽지도 않는다. 배교背敎나 불신不信이라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아주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보통 믿음의 내용을 묻는다. 무엇을 믿느냐 묻는 것이다. 예수를, 성경을, 천국을. 나에게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믿음이란 다만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소박하고도 진솔한, 때로는 처절한 분투. 감람산의 예수, 골고다의 예수가 그런 것처럼. 하여 나에게는 읽고 쓰며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장자>에는 천형天刑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내린 형벌. 벗을 수 없는 굴레와도 같아서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는 몸 안의 가시와도 같은 것이다. 나에게는 모교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그렇고, 교회가 벌이는 행태가 그렇다. 이에 대한 나의 말을 묶어 ‘경黥치는 소리라’ 하였다. 경黥은 고대 형벌의 하나로, 신체에 죄목을 새겨 지울 수 없게 만든 것을 말한다.
한편 ‘경치다’는 말은 이런 형벌을 받을 만큼 어리석을 행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비판의 목소리를 세워보았자 아무 변화가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경치는 소리’라 하기도 했다. 그러니 ‘경치는 소리’란 내가 짊어진 천형을 드러내는 동시에, 스스로 천형을 짊어진 어리석음을 함께 의미하는 말인 셈이다.
글을 쓰다 보니 오늘날 통념에 대해서도 몇 마디 덧붙이게 되었다. 경전처럼 숭상하는 생각들을 공격한다는 의미에서 ‘경經치는 소리’라 할 수도 있다. 교회나 기독교에 대한 비판도 경經치는 소리라 할 수 있으나, 따로 떼어 묶을 만한 글이 있어 그 글들에 ‘경經치는 소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자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연주 소리에 공자의 마음이 묻어 나오곤 했다. <논어>에 보면 한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한다. “경쇠치는 소리에 마음이 담겨 있구나! 뎅뎅거리는 못난 소리 하고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만일 뿐이지.”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 글을 모아 ‘경磬치는 소리’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 해 넘게 쓴 글을 이렇게 모아 책으로 엮었다. 동료들과 함께 쓴 글도 있고 혼자 끄적인 글도 있다. 대체로 날짜순으로 엮었으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주제를 솎아 묶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뒤죽박죽 섞이기도 하였다. 내용도 서로 다르고, 어조도 서로 다른 글들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뎅뎅뎅. 경치는 소리는 미려한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제 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그치지 말아야지.
2019. 12. 20
해방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