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2-3
* 동대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를 가지고자 한다. 가지고자 하는 것은 끝이 없어 다툼을 낳는다. 다투면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면 궁핍해진다.
人生而有欲,欲而不得,則不能無求。求而無度量分界,則不能不爭;爭則亂,亂則窮。
‘공맹순孔孟筍’이라는 말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가의 대표 인물 셋: 공자, 맹자, 순자를 함께 엮어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공맹'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 맹자가 공자의 적통을 이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후대 유학자, 특히 송대의 유학자들은 맹자를 매우 중시하여 그를 성인, 공자에 버금가는 인물이라 여겼다. 그래서 맹자에게 붙은 호칭은 아성亞聖.
누차 이야기하지만 전통적인 관점이 이해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해를 방해하기도 한다. <맹자>는 <논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까? 만약 우리가 사서四書라는 유가의 전통적인 관점에 따라 공자의 말을 이해하고 <논어>를 읽는 것이라면 적잖이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논어> 자체에 주목한다면 조금은 떨어져서, 아니 가능한 완벽히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맹자의 눈, 혹은 선대 유학자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논어>를 읽을 수 있고, 공자를 만날 수 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통적인 관점에 따르면 성선설을 주장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논어> 본문을 보면 쉬이 답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공이라는 제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옛 제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본성이니 하늘의 도리니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夫子之文章,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不可得而聞也。)” <논어>에서 본성(性)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 문장 이외에 다른 한 문장밖에 없다.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으로 서로 멀어진다. (性相近也,習相遠也。)” 맹자의 해석처럼 인간이 선한 본성을 타고 태어났지만 외부의 조건 때문에 악하게 되어 버린다는 말일까? 이것은 맹자의 입장이고 순자라면 다르게 이야기할 것이다.
<맹자>가 첫 시작부터 인의仁義라는 규범을 이야기하는 반면, <순자>는 학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학문은 그칠 수 없다. 푸른빛은 쪽풀에서 나왔지만 쪽풀보다 푸르다.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 차다.(學不可以已。青、取之於藍,而青於藍;冰、水為之,而寒於水。) 맞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고사가 바로 순자(荀子 BCE298?~BCE238?)의 말에서 나왔다. <순자>는 <권학勸學>, 즉 학문을 권장하는 글로 전체 논의를 시작한다. 순자에게 학문이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순자는 성악性惡,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인간 본성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논의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저마다 한계를 가지고 태어난다. 학문의 부단한 노력이야말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옛 성인은 세계를 새롭게 조망하였다. 마찬가지로 성인의 글을 읽고 배워야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다.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종일토록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잠깐 배우는 것만 못하더라. 까치발을 하고 멀리 보려 했지만 높은 데 올라가 보는 것만 못하더라. 높은데 올라 사람을 부르면 팔이 길어진 것이 아닌데도 멀리서도 보인다. 바람 방향을 따라 소리를 내면 목소리를 크게 한 것도 아닌데 또렷이 들린다. 수레나 말을 이용하면 발이 빠르지 않아도 천리까지 갈 수 있다. 배를 타면 수영을 하지 못하더라도 강과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일찍이 공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종일토록 밥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다 쓸모없더라. 배우는 것만 못하더라.(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以思,無益,不如學也。)” 순자는 나름 공자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전란의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가운데 순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는 그가 앞선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문제를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았고, 인간이 욕망을 타고 태어난다는 점을 인정했다. 타고난 욕망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맹자를 추종하는 후대 유학자들은 ‘거인욕去人欲’,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순자의 주장은 다르다. 욕망을 조절하는 것, 개별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고 다투지 않도록 경계를 정하는 것. 이것이 순자가 제안하는 해법이다.
순자는 ‘예禮’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행위에 제한을 두어 나누는 것.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나 천하의 사물은 제한되어있다. 욕망과 행위의 한계, 이것이 바로 ‘예禮’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순자에 이르러 ‘예’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리 주어져 있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규범이 아니다. 무엇이 ‘예’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예’는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인간군상들 사이에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규범, 혹은 약속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순자가 그린 조화로운 세계의 모습은 공자 혹은 맹자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순자는 가족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순자가 말하는 ‘예’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사이의 규범이 아니다. 한정된 물질적 자원을 두고 다툴 수 있는 잠재적 경쟁 상대와의 사이에 필요한 규범이다. 낯선 대상,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과의 사이야 말로 ‘예’가 필요하다. 이렇게 관점이 다른 것은 이제 주나라를 중심으로 한 체제가 완벽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주나라는 천하가 하나의 가족이라고 주장했다. 가족의 규범은 단순하다. 아비가 먼저, 남편이 먼저, 연장자가 먼저 식으로 정리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전란으로 천하 사람들이 마구 뒤섞인 세계에서 그런 식의 윤리가 무슨 의미인가.
맹자는 말한다. 대부가 제후를, 제후가 천자를 시해했다고. 그렇게 위 아래 사람이 이익을 두고 다투었기에 천하가 혼란스러워졌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이란 간단하다. 위 아래가 서로 다투지 않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들지 않는 것이다. 아랫사람으로 제 분수를 지키고, 자기 욕망을 단속할 것. 그래서 예는 늘 윗사람의 무기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린 노무시키가 예의도 없이…’라는 식의 말은 가능하나 ‘나이를 먹고 나이 값도 못하고 예의도 없이…’라는 식의 말은 가당치 않다. 오늘날 사회적 약자가 그렇게도 쉽게 ‘법’을 운운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가족주의, 나이주의, 그리고 가부장제의 전통.
맹자와 비교할 때 순자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고 너무 확대 해석하지는 말자.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이를 조절하는데 관심을 두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보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 역시 고대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왕의 역할이 따로 있고 신하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관계 맺음의 방식은 맹자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순자의 제자 한비자(韓非子 BCE280년~BCE233)의 주장을 보자. 한비자는 어려서부터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말재주를 뽐내기보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그의 글 가운데 <세난說難>편은 매우 독특한 주장을 담았다. 제목을 풀이하면 ‘유세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당대에는 제후국마다 유세객이 들끓었다.
한비자가 말한다. 유세는 어려운 일이다. 어째서 유세가 어려운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요, 말주변이 없어서도 아니며, 말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다. 유세의 대상 군주의 마음에 꼭 들어맞는 말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달리 말하면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더라도, 말재주가 좋더라도, 가슴에 품은 뜻을 다 드러낸다 하더라도 유세에 실패하는 수가 있다. 군주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주의 욕망을 파악하는 것, 이것이 유세의 핵심이다. 명성을 추구하는 자에게 이익을 이야기해보았자 소용없으며, 반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에게 명성을 이야기해보았자 소용없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한비자는 지식, 기교, 내용보다 군주의 욕망에 주목한다. 순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군주도 욕망을 가진 존재다. 문제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따라서 유세객은 숨은 뜻, 품은 마음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면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이끌어나갈 수도 있다. 그는 군주를 용으로 비유하며 흥미로운 내용을 덧붙인다.
“용이라는 동물은 길들이면 그 등에 올라 타 맘껏 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목덜미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이것을 건드리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군주도 마찬가지.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거의 성공할 것이다.” 맞다. 여기서 나온 말이 역린逆鱗이다. 군주의 욕망을 간파한다면 못할 일이 없으나, 주의할 것은 역린 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임금과 신하라는 상하의 위계는 뒤집을 수 없다. 군주는 마치 용처럼 사납고 강하다. 그렇다고 늘 일방통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욕망을 간파한다면 이 힘의 관계는 도리어 역전될 수도 있다. 마치 용을 부리는 사람처럼. 이처럼 순자의 접근은 설사 신분 관계가 명확하더라도 전혀 다른 식으로 권력관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권력, 힘은 늘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우연히 한비자의 글을 읽은 진왕 영정은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그를 직접 만나고자 이웃 한韓나라와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결국 한비자는 진나라로 갔으나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는 못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당시 진나라에는 순자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하던 친구가 있었다. 바로 이사(李斯 BCE284~BCE208)라는 인물이었다.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 아래에서 동문수학하며 그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비자가 진왕을 만난다면? 자신은 한비자 밑에 있을 터였다. 이사는 한비자의 재능을 질투하여 그를 독살하기에 이른다.
결국 진왕 영정은 한비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만약 이 만남이 성사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천하의 향방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진왕 영정이 바로 훗날 천하를 통일하고 최초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시황제이기 때문이다. 유세의 비법을 이야기했던, 군주의 욕망을 간파하라고 했던, 사나운 용을 부리는 방법을 이야기했던 그도, 한 사람의 욕망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는 못하였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용에 물려 죽지 않더라도, 모기에게 잘못 물려도 죽는 것이 인생인 것을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