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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01. 2020

다시 <주자학과 양명학>을 읽는다.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 #1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에서 나눌 내용입니다.

https://zziraci.com/qutubook


나에게는 좋은(?) 버릇이 하나 있다. 책 내지에 언제 책을 읽었는지를 표기하는 것이다.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주자학과 양명학>을 보니 2008년 4월에 읽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목차에는 당시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이름과,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다. 


오래도록 서가에 꽂아두고 있으면서 이 책을 다시 펼쳐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서술에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인상은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 매우 깔끔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적으로라고 하면 적당하려나. 교과서를 다시 재차 펼쳐보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 말이다.


최근 이 책이 다시 재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개인적으로 주자학과 양명학이라는 도식을 그리 반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는 목적도 있다.



저자 시마다 겐지는 장횡거의 말로 책을 시작한다.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생민을 위하여 명을 (세우고), 옛 성인을 위하여 끊긴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해서 태평을 연다."(6쪽)


참고로 개정판에서는 '세우고'가 빠져있지만 구판을 보거나 각주에 달린 인용문을 보더라도 '세우고(立)'가 들어가는 것이 맞다. 그는 여기서 주자학의 '웅대한 정신(7)'에 주목해보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송학과 주자학을 병기하고 있는데, 크게 보아 틀린 접근은 아니지만, 꼼꼼하게 보면 조금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지마 쓰요시의 <사대부의 시대>를 참고하자. 요약하면 송대 사대부 전체가 주자학자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송학, 즉 송나라 시대의 학문 가운데 주자학이 가장 주목할 만하므로 지나치게 세세하게 접근하지 않도록 하자.


송학이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혹자는 불교와 도교에 의해 오염된 유학이라 평가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그와 같은 접근이 옳지 않다고 본다. 불교와 도교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와 같은 영향이 유학의 근본적인 특징을 바꾸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불교의 영향. 저자는 체용론體用論에 주목한다. 체용이란 인과因果와 구분하기 위해 차용한 개념이다. 


<대승기신론>의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바람과 파도의 관계라면 체와 용의 관계는 물과 파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정의로서는 지극히 막연하지만 "체란 근본적인 것, 제1차적인 것이고 용이란 파생적인 것, 제2차적인 것"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실체와 작용, 본체와 현상이라 생각해도 이들의 개념 규정에 너무 신경만 쓰지 않는다면 큰 지장은 없다. 이와 같이 인과의 개념에서는 이른바 인과별체因果別體, 다시 말하면 원인과 결과가 서로 별개의 것이고, 체용의 개념에서는 언제나 '체용일치體用一致' 또는 "체는 곧 용, 용은 곧 체"라고 하는 점이 그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다. (10쪽)


체용론은 불교, 즉 먼 인도에서 수입한 것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체용이라는 구체적인 표현, 개념은 분명 불교에서 빌려온 것이 분명하지만 이미 중국 전통에 이와 같은 사상이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이 곽상의 <장자주>에 나오는 사물의 기원에 대한 논의이다. 중국 전통에는 '창조신 혹은 창조자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궁극적 사변(13쪽)'이 있다. 사물을 낳는 따로 독립된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물에 앞서는 것은 무엇일까. 사물은 더구나 계속 있어서 그치지 않는다. 분명히 (사물이 있음은) 사물이 스스로 그런(물지자연物之自然) 것으로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14쪽)


<주역 계사전>에 붙인 한강백의 주석에서도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태허太虛'에서 자기원인적으로 생겨나며 홀연히 스스로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것을 만들어내는 주체란 존재하지 않으며(이를 만드는 것은 내가 아니다), 달리 말하면 리理가 스스로 초월적으로 호응한 것이다. 낳는 주체라는 것도 없고(이를 화하게 하는 주체는 없다), 규칙이 스스로 암묵 속에 운명지워졌던 것이다."(15쪽)


원문과 비교하면 상당히 의역이 가해졌다. 괄호 안에 표기한 것이 보다 원문에 가까운 풀이라 하겠다.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주제, 글의 내용을 참고하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이와 같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따로 구분 짓지 않는 체용론이 중국 철학자들에게 쉬이 수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주목해볼 것은 주희에게서는 체용의 결합보다는 체용을 구분하여 논의하는 점이 강조되었다(18쪽)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저자의 서술을 기다리기로 하자. 


도교의 경우에는 주로 송학이 도가 철학의 개념을 수용했다는 점에 주목하곤 했다. 즉, 본디 유학자들이 쓰지 않던 개념들을 도가 텍스트를 통해 수용하고 이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용례가 얼마나 많든 그것이 본질적으로 유학의 성격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비유가 재미있다. 


사자의 위장에서 아무리 많은 양의 토끼고기가 나왔다 해도, 사자가 요컨대 토끼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어버릴 수는 없다. (22쪽)


저자는 이보다는 도교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천, 수행에 주목한다. 즉 송학은 도교의 주요 문제의식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우주의 정수를 포착하고 우주와 합일하려는 정신'(23쪽) 이것이 도교의 주요한 영향이다. 이를 범신론적 감정(25쪽)이라 하자.


… 우주적인 것에 대한 파토스, 천지•세계를 가장 깊은 곳에서 총괄하고 있는 것에 대한 충동, 이 같은 것들이야 말로 바로 중요한 점이었다는 것이다. 우주적인 원리와 공감하려고 하는 감정은 아마 도사나 은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이 이제 사대부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26쪽)


송대 학자들은 스스로를 도학자道學者라 일컬었는데 여기에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입장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주를 결코 멀리 여기지 않았다. 


불교와 도교로부터 이러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수용한 주체가 바로 사대부였다. 저자가 지적하듯 송학은 사대부와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대부란 어떤 사람들인가? 저자는 우선 독서인이라는 정체성에 주목한다. 물론 이들이 과거 제도를 통해 관료로 진입한 계층이었다는 점, 소수만이 이 경쟁에 참여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를 하나의 '사회적 계급'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그것은 출생을 원리로하는 폐쇄적인 신분이 아니라 능력을 원리로 하는 개방적인 계급이며, 그 능력이란 유교 경전적인 교양 능력이었다. (28쪽)


일찍이 역사에서는 당송, 즉 당나라에서 송나라에 이르는 과정에 큰 사회적인 계층 이동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과정 가운데 탄생한 새로운 계층이 사대부였으며 이들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당唐의 한유가 쓴 <원도元道>에 매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제목을 풀이하면 '도의 본질에 대해 논하다' 정도가 될까? 그러나 이는 '도' 자체에 대한 사변적 서술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글은 도道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동시에, 일종의 사상사 서술로 새로운 시대의 사상사적 과업을 제시하고 있다.


<원도>는 과거의 성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기서 성인에 대한 표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거의 성인이 주공을 중심으로 한 예악제도의 창시자였다면 이제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인의도덕의 체현자로의 모습이 더 중시된다. 


고대의 성인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이 '도'가 전승되었다. 그러나 맹자 이후로 이 '도'가 끊어져버렸다. 도통道統의 단절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유는 노불老佛, 즉 노자와 붓다를 공격하고 새롭게 철학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송학은 한유가 제시한 이와 같은 과업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저자는 한유의 글에서 송학의 특징을 요약한다. 첫째 정통주의의 확립(47쪽). 남북조(육조시대)의 혼란기는 정치적 혼란과 철학적 상대주의를 낳았다. 이러한 폐해를 극복하고 공맹孔孟을 근원으로 하는 새로운 정통을 세울 것을 주문한다. 


두 번째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대표되는 '도덕과 정치의 일치 혹은 철학과 정치의 일치(50쪽)'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에서 사대부는 자신의 사회 정치적 이상, 개인적 이상을 연속적인 세계 속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로 사변주의(53쪽)이다. 방대한 지식보다는 깊은 사색을 중시했다. 박학博學을 경계하고 깊이 있는 사식을 통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를 추구했다. 


불교와 도교의 영향, 사대부라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 한유의 <원도>로 대표되는 새로운 조류. 이 계승자로 북송의 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을 먼저 서술하고 이어서 장횡거와 소강절을 덧붙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식의 접근도 가능하다는 점을 짚어두자.


이른바 북송오자北宋五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다음 시간에는 더 사변적이고 개념적인 시간이 될 것 같은데, 복잡한 이야기 역시 다음으로 미루고…


https://youtu.be/r0juuCZXb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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