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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28. 2021

잡담을 위한 짧은 메모

https://zziraci.com/ournight




1월 31일

도로 중간 가이드레일에 500미터 간격으로 "과학적으로 방역하고, 당황하지 말고, 헛소문으로 방해하지 말자!" 같은 표어가 쓰인 플래카드가 한 장 걸려 있었다. 도시가 봉쇄된 뒤에도 문을 연 인쇄소가 있다니, 텅 빈 거리에 이 많은 선전 구호를 걸어 둔 인력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겨울날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가 한가롭게 햇볕을 쬐는 거다. 강가까지 걸어갔더니 햇빛이 몸으로 쏟아졌고 살짝 땀이 났다. 강물이 물가의 암석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데, 그게 이상할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95쪽)


https://matters.news/@GuoJing/


2월 1일

불확실한 상황에서 산다는 건 거대한 도전이다.
사람은 불확실하면 불안해한다. 불확실성을 통제할 수 없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문득 내 책상 위의 일력도 1월 22일에 멈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심지어 내일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그냥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수밖에.
(96쪽)


2월 2일

분노도 분노지만 경악, 슬픔, 무력감 등 우리는 너무나 복잡한 감정에 시달리고 있다. 감정을 조절할 통로라고는 없어 오랫동안 이런 감정에 휩싸여 있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이 영향을 받는다. 
(102쪽)
대화 주제가 금방 동날까 봐, 새털같이 많고 많은 밤 떠들거리가 바닥날까 걱정되어 채팅하는 시간을 줄여 보기로 했다. 다들 많이 아쉬워했다. 채팅창을 먼저 떠나면서 다른 친구들이 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친구도 있을 정도였다. (104쪽)
토마토와 파슬리는 500그램에 10위안(한화 약 1,700원)이었고, 상추는 500그램에 8위안(한화 약 1,350원), 옥수수는 하나에 7위안(한화 약 1,200원)이었다. (106쪽)


2월 3일

매일 밖에 나가는 게 내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사실 꼭 밖에 나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고집스레 외출을 강행하고 있다. 
난 무슨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걸까? 이 도시에 내려진 봉쇄 조치가 내일 갑자기 풀릴 리도 없고 바깥세상이 하루 사이에 천지개벽할 일도 없다. 이건 사실 일종의 소소한 반항이다. 정보가 봉쇄된 상황에서 진짜 정보를 찾고, 격리된 와중에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확실성을 찾아가려는 것이다. (109쪽)


2월 4일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위챗 모멘트에 올린 글이다.

도시와 촌을 봉쇄한 지 이제 겨우 며칠, 미치기 일보 직전 상태가 된 젊은 남자들이 수두룩하다. 일 년 사계절 이런 삶을 사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한번 생각들 해 보시길.

봉쇄는 여성들이 공적 생활에 참여하지 못하며 느끼는 바를 남자들이 어느 정도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115쪽)


2월 7일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투쟁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고 나서는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갔다. 나갈 때 보니 엘리베이터에 버튼 누를 때 쓰라고 곽 티슈가 한 상자 붙어 있었다.
(135쪽)
집에 돌아와 촛불 하나를 켜 놓고 리원량을 애도했다.
샤워를 하다가 휴대폰으로 <인터네셔널가>를 반복 재생시켜 놓고 목놓아 울었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슬픔이자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분노였다. 
(136쪽)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한 일은 SNS 계정을 삭제하는 일이었다. 그냥 공중에 지워버리기 싫어 자료를 백업했다. 10년 치 자료를 백업하고 다운로드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 결국 한 해를 넘기고 2021년 1월 1일 새벽에야 계정을 삭제할 수 있었다. 더 고립되고 싶어서, 작가의 말을 빌리면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싶어서.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든다. 저자는 고립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대화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 건강함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집이 얼마나 아늑한 곳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기억해내고 있다. 그래서 종종 나태해진 것인지 아니면 느긋해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도시 봉쇄라는 갑작스런 사태를 맞아 밤마다 친구들과 화상채팅을 한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하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기도 하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기도 할 테다. 문득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독서 모임이 생각났다. 함께 모여 공부하던 청소년들과 온라인에서 만나기로 했다. 책도 읽었지만 매주 안부를 묻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당혹스러움, 불안, 외로움 ... 봄을 넘어 여름을 맞을 때만 하더라도 다양한 표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다들 해맑은 얼굴이다. 집에만 있어도 좋단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늦게 일어나니 좋고, 친구를 직접 만나지 않아도 줌에서, 카톡에서 등등 저마다 만나고 노는 방법을 터득한 듯하다. 적응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주 책모임에서는 사람들이 중국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를 마쳤다. 내가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우한 폐렴'이라는 표현을 고집스레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봉쇄된 도시의 사람들이 겪은 희로애락에 별 관심이 없겠지. 2월 7일 일기에는 리원량의 사망 소식이 담겼다. 그의 죽음에 느끼는 좌절과 분노. 인터네셔널가를 틀어놓고 목놓아 울었다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 기사를 보니 이제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단다. 문득 1년 뒤 삶이 궁금해졌다. 2021년 1월 1년 전 2020년 우한의 봉쇄 일기를 읽고 있는데, 1년 뒤 오늘의 일기를 읽는다면 그때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우린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지금과 다른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냉소적인 나는, 세계가 한 덩어리인데 일부가 백신을 맞는다고 지금과 얼마나 달라질까 의문을 던져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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