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운이 나쁘다는 건 어떤 걸까?
2019년 11월에 우한으로 이사 왔는데, 12월이 되자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하더니 1월에는 광범위하게 퍼졌다. 요 이틀 쏟아진 폭우에 집에 비가 새기 시작했고, 12월에 중고장터에서 산 전기밥솥과 프라이팬 중 전기밥솥은 버튼에 문제가 생겨서 여러 번 눌러야 반응을 하고 프라이팬은 손잡이 나사가 풀려 사라졌다. 대걸레 짤순이 손잡이 위치에 있던 나사는 하다 하다 화변기 안에 떨어지고 말았다. (203쪽)
단지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꿈으로 나타났다. 꿈속의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낯선 곳에 갇혀 있었다. 출입구는 한 개 이상이었지만, 그중 하나는 바깥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하나씩 열어 보며 나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207쪽)
파란색 울타리에 '우창구 주택가 폐쇄 관리 실행에 관한 공고'가 붙어 있었는데, 총 여덟 가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 단지 폐쇄형 관리를 엄격히 실행한다.
2. 집단 활동을 엄격히 근절한다.
3. 우한으로 돌아온 사람을 엄격히 관리한다.
4. 공공장소를 엄격히 관리한다.
5. 능동 감시 대상을 엄격히 관리한다.
6. 정보를 엄격하게 발표한다.
7. 주거 구역 환경과 임대주택을 엄격히 관리한다.
8. 기율과 법을 엄격히 집행한다.
(208~209쪽)
도시 봉쇄에서 단지 봉쇄까지, 우리의 움직임은 점점 더 심하게 통제되고 있고, 세상을 우리가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은 조금씩 박탈되고 있다.
나의 다음 외출일은 2월 19일이다. (2011쪽)
단지 봉쇄를 전염병 확산세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이 조치가 사람을 통제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214쪽)
봉쇄 이후, 나에게선 '오늘은 무슨 요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오직 '오늘'과 '내일'이 있을 뿐이다. (215쪽)
우리는 결국 지정감시거주 대상이 되었다. 지정감시는 보통 범죄 혐의자에게 내려지는 처분인데, 이제 수많은 사람이 이런 대우를 '누리고' 있다. (218쪽)
사람들은 봉쇄 속에서 서로 돕기 위해 항간의 소문을 퍼뜨린다. 공동구매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오고간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없는 노인들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228쪽)
집에 돌아와서 창밖의 햇살을 바라보는데, 문득 내일은 책 한 권 들고 내려가서 햇볕 쬐면서 읽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이 생각이 떠오른 순간, 속으로 몰래 나를 칭찬해 주었다. (231쪽)
사람들은 한 번도 쉽게 포기한 적이 없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을 뿐이다.
2018년, 뤄첸첸은 실명으로 베이징항공대 천샤오우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며 #미투 운동의 서막을 열었다. 70여 개 대학에서 9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교에 성추행 방지 시스템을 만들라고 호소하며 연대 서명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관련 글 삭제나 계정 폐쇄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핵심 단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성추행'이라는 의미의 '싱싸오라오'를 번체자인 '싱싸오라오'로 바꾸었고, 'Metoo'를 중국어 발음이 유사한 '미투(米兔)'로,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워예스(我也是)'를 '안예이양(俺也一样)', '어예스(鹅也是)', '워떠우하이(我都系)' 등으로 바꾸었다. * (244쪽)
* '미투'를 표준 중국어로 '워예스', '워예이양' 이렇게 표현하는데, 검열을 피하기 위해 표준 중국어에서 1인칭 대명사 '나'를 뜻하는 '워'를 북방 방언인 '안'으로 바꾸거나, 아예'워떠우하이'처럼 '미투'라는 뜻의 광둥어 표현을 썼다는 의미이다. (옮긴이 주)
봉쇄 이후의 경험을 돌이키려고 하면, 어제조차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52쪽)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5인 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까운 거리에 사는 친척들이 모이기도 했단다. 어떤 아이는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알려질까 봐 친척들끼리 모여 조용히 하느라 혼났단다.
다시 확진자 수가 600명을 넘었다. 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고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아야 할 테지만 그렇게 말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든다. 1년이 넘는 긴 사회적 긴장은 쉽게 갈등을 낳기 쉽다. 무턱대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좀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이런 질문이 드는 것은 '철저한 방역' 속에서도 여러 모순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휴에 식재료를 산다고 조금 큰 마트를 찾았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명절에 산책 삼아 경복궁에 갔다가 많은 인파에 발을 돌려 버렸다.
개인적으로 5인 이상 집합금지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편하다고 느낄 정도다. 며칠 전 오프라인에서 서너 명이 모였는데, 약간 어지러움이 들기도 했다. 아싸 DNA가 폭발한 것인지, 아니면 코로나로 관계의 방식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생각보다 쉽게 감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마스크 쓰기에 불만이 많았다. 과연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로 코로나 전파를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궁금증은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마스크를 벗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식당에서는 그렇게 손쉽게 마스크를 벗는데? 옷에 바이러스가 묻으면? 등등. 그러나 마스크는 이미 하나의 의례가 되어 버렸다. 사회적 긴장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며, 이 고난의 시간을 함께 견뎌내고 있다는 사회적 연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마스크를 벗은 사람을 보며 불편함이 든다면 그것은 감염의 가능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연대가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겠다.
책을 읽어보면 봉쇄된 도시 우한에 내려진 조치는 생각보다 매우 강력했다. 이런 단호하고 '엄격'한 조치가 코로나 발생을 그나마 막은 것일까? 이 봉쇄된 도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마 한참을 기다려야 할 테다. 자유에 대한 감각, 통제에 대한 수용력 등등이 불과 1년 사이에, 아니 몇 달 사이에 크게 바뀌었다. 저자의 글에서는 우한 봉쇄 당시 느꼈던 통제의 불안함을, 그에 대한 저항감을 담았다.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그저 솔직한 생각이 궁금할 뿐이다.
봉쇄된 도시에서 요일을 잊어버린 저자처럼, 나 역시 시간에 대한 감각이 많이 떨어져 버렸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도 틀렸다. 뚝뚝 끊긴 삶을 사는 듯하다. 시간의 도약, 혹은 단절. 이는 코로나가 일상을 그만큼 파괴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질문해본다.
어떤 변화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변화의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변화가 먼저고 그에 대한 대응은 그다음에 뒤따라 오기 마련이다. 무엇이 옳다는 식의 관념조차도 코로나는 새롭게 직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