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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r 20. 2021

장자익 : 소요유 6

번역해보자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어. "위왕께서 나에게 커다란 박 씨를 주셨다네. 그것을 심었더니 과연 커다란 박이 열리더군. 다섯 섬을 넣을 정도였어. 헌데 거기에 물을 담았는데 단단하지 않아 제대로 세워둘 수가 없어. 잘라서 바가지로 쓰려고 했지만 망가져서 쓸 수가 없어. 정말 크기는 하더만 아무 쓸모가 없어 부숴버렸다네." 


장자가 말했어. "선생께서는 큰 것을 쓸 줄을 모르십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연고를 잘 만드는 송나라 사람이 있었지요. 대대로 솜을 빨아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 그 비법을 사고자 했답니다. 무려 백 금을 주겠다 했지요. 그러니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의논할 수밖에요. 우리가 대대로 솜을 빨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큰돈을 만져본 일이 없다. 오늘 하루아침에 비법을 팔아 백 금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팔아버리자. 그렇게 비법을 얻어 오나라로 가 오나라 임금을 만났지요. 마침 월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오나라 임금이 그를 장수로 삼았습니다. 한 겨울 월나라 사람들과 수전을 벌이는데, 그 연고 덕분에 월나라에게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공으로 봉지를 받았답니다. 손을 트지 않는 건 같지만 봉지를 받은 사람이 있고, 여전히 솜을 빠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르게 쓸 줄 알았던 까닭입니다.


지금 다섯 섬 들이 박을 가지고 있다 하셨지요. 그것을 통째로 물에 띄워 놓고 탈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 불평만 하고 계시는군요. 선생께서 꽉 막힌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지요." 


또 다른 날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데. "나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소. 사람들이 그걸 못쓸 나무라 부르더군. 밑동에는 옹이가 있어 재단해 쓸 수가 없고, 가지는 이리저리 휘어져 물건을 만들 수가 없지. 떡 하니 길 한복판에 심어져 있음에도, 목수가 쳐다보지도 않아. 자네 꼭 그런 꼴이네. 크기만 하고 쓸모가 없어. 그러니 사람들이 자네를 무시하는 게야."


장자가 말했어. "살쾡이를 아시지요? 몸을 낮추고 기어가 작은 동물을 덮칩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제 세상인 듯하다가도 덫에 걸려 목숨을 잃어버립니다. 저 커다란 소는 어떻습니까? 하늘의 구름처럼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어요. 크기는 합니다만 굼떠서 쥐새끼 한 마리도 못 잡습니다. 


큰 나무를 가지고 계신다 하셨습니다. 그게 쓸모가 없어 걱정이라구요. 그것을 어느 것도 없는 가 없이 막막한 들판에 심어둔다면 어떻겠습니까? 어슬렁거리며 그 곁을 돌아다녀도 좋고, 느긋하니 그 아래서 잠을 자도 좋습니다. 잘려 나갈 일도 없고, 해칠 사람도 없을 겁니다. 쓸모가 없다며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剖之以為瓢。則瓠落無所容。非不呺然大也。吾為其無用而掊之。莊子曰。夫子固拙于用大矣。宋人有善為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絖為事。客聞之。請買其方百金。聚族而謀曰。我世世為洴澼絖。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客得之以說吳王。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絖。則所用之異也。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為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今子之言。大而無用。衆所同去也。莊子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避髙下。中於機辟死於網罟。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為大矣。而不能執鼠。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遥乎寢卧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 瓠(호) : 박

* 以盛水漿... : "그런데 그 조롱박들은 물이나 국을 담았더니 똑바로 서 있을 만큼 견고하지 못했소. 또 바가지를 만들려고 갈랐더니 휘어져서 내용물이 넘쳐버렸다오."(앵거스 그레이엄 역, 110쪽)
 * 洴澼(병벽) : 빨다


혜자: 성은 혜惠, 이름은 시施, 양나라의 재상이었다.
實五石: 오석을 담을 수 있는 열매라는 뜻이다.(사마표)
瓠落 : 휘어진다는 뜻이다. 
呺然 : 텅 비어 큰 모습. 
솜과 실을 광絖이라 한다.
樽 : 술통 같은 것인데, 몸을 묶어 물에 뜨도록 하여 스스로 건널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慮 : 생각하다는 뜻이다.
候敖 : 돌아다니며 날아다니는 생물을 노려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無何廣莫 : 적막하고 아득하여 아무 쓸모가 없는 땅이다. 

惠子姓惠。名施。為梁相。實五石。司馬云。實中容五石。瓠落猶廓落也。呺然虚大貌。絮細者謂之絖。樽如酒器。縛之身。浮於江湖。可以自渡。慮思也。候敖謂伺遨翔之物而食之。無何廣莫謂寂絶無用之地也。

* 廓落(확락) : 크고 넓음 / 활기를 띄지 못하고 풀이 죽음
* 絮細(루세) : 솜과 실
* 伺(사) : 노리다.


【郭注】
그 연고는 손이 갈라 터지지 않도록 한다. 그러므로 늘 물에서 솜 빨래할 수 있었다. 
蓬 :직접 도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고 큰 사물이 그 법칙을 잃으면 이롭거나 해롭게 되는 이치가 같다. 쓰임에 맞게 사용하면 사물은 모두 자유로이 노닌다는 말이다. 

其藥能令手不拘坼。故常漂絮於水中。蓬非直達者也。蓋言小大之物。若失其極。則利害之理均。用得其所。則物皆逍遥也。

* 拘坼 : 皮肤因受冻或干燥收缩而裂开。
* 漂絮 : 솜 빨래 




혜시와 장자의 대화이다. 다른 책에서는 혜시와 장자의 대화를 두 대목으로 나누기도 하나, <장자익>에서는 하나로 묶었다. 다음에 장자 번역을 손보면 나름대로 장절 구별도 해보아야겠다.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곽상은 여기에 별 주석을 달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는 장자가 이야기하는 無用之用 보다는 小大之辨에 대해 더 관심이 커 보인다. 그러니 아주 형식적으로만 주석을 달아 놓았지. 

<소요유> 내부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을 대비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붕과 곤이 큰 것을 대표한다면, 매미와 메추리, 뱁새, 두더지, 살쾡이 등이 작은 것을 대표한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재주를 가지고 있고 나름 활개를 치는 존재들이지만 장자는 이들이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공명功名을 추종하는 자들에 대한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주석에서 잘 풀이가 안 되는 부분도 있다. 다른 주석을 읽으면서 새롭게 눈의 트이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자.

장자를 정리하며 느슨한 번역 혹은 리라이팅과 함께 해설을 섞은 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슨한 번역이나 리라이팅이 필요한 이유는, 장자 자체가 꼼꼼한 번역이 필요한 책인지 모르겠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경서經書는 글자 하나를 두고 수 없이 주석이 붙지만 장자는 그렇지 않다. 만약 장자 본문의 글자, 개별 단어를 이해하는데 집중하다보면 그 대략적인 의미를 상상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예를 들어 五石을 다섯 섬으로 번역했는데, 그냥 크다고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용량이 머가 그리 중요할까. 차라리 커다람을 강조한다면 다른 식의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집채 만한 박이 열렸다는 식으로. 한편 '준樽'은 남방에서 쓰는 도구로 강을 건널 때 몸에 묶어 몸을 띄우는 통이란다. 이를 그냥 튜브라고 옮기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이번에 정리하면서 든 생각. 첫번째 대화에서 장자는 다른 쓰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두번째 대화에서 장자는 주변 환경의 차이를 말한다. 따지고 보면 나무를 옮겨 심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주어진 조건의 차이가 나무의 쓸모, 혹은 나무를 대하는 입장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도 있다. 똑같은 나무라 하더라도 도회지 중심에 사는 사람과 가없이 막막한 들판에 사는 사람이 대하는 생각은 다를 것이다. 거꾸로 이것은 장자가 어디에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건 아닐까? 그는 분명 탈주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방황과 소요에 대해서는 정리해놓은 글이 있는데... 찾아보니 브런치에 없다. 

나중에 올려두어야지. 오탈자 및 오역, 이상한 부분 지적은 늘 환영합니다. 잘 보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좀 주시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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