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장자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Apr 03. 2021

장자익 : 제물론 2 (곽상주 포함)

큰 앎은 넉넉하지만 작은 앎은 쩨쩨하지. 큰 말은 담담하나 작은 말은 재잘거려. 잠을 자도 꿈이 어지럽고 깨어나면 감각이 열려, 온갖 것에 얽매여 날마다 마음이 다투지. 그런데도 태연한 척, 괜찮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 작은 두려움에 쩔쩔매다가도 큰 두려움이 닥치면 넋을 잃어. 시비를 따지는 모습이 마치 화살을 쏘아대듯 날카롭고,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묵묵히 맹세를 지키듯 끈질기지. 그러다가도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날마다 조금씩 쇠락하기 마련이야. 그렇게 흘러가 버린 것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늙어 고집을 피우면 마치 꽉 눌러 구멍을 닫아놓은 듯해.  마음이 죽음에 가까워지면 다시 일으킬 수가 없어.


희로애락, 근심걱정, 요사하고 변덕스런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 텅 빈 곳에서 음악이 나오듯, 습지에서 버섯이 피어나듯 그렇게 매일 우리 앞에 여러 잡념이 오가는데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그 원인을 찾아보는 일은 그만두자 그만두어. 아침저녁으로 여러 마음이 오가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그런 마음이 없으면 내가 없겠지. 내가 없으면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도 않을 테고. 이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아마도 '참된 주인(眞宰)'이 있을 테지만 그 자취는 찾을 수 없어. '참된 주인'이 움직이는 것은 확실한데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아. 실재하지만 형체는 없는 거야. 몸에는 백여 개의 뼈마디,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가 있어. 나는 그중에 무엇을 특별히 아껴야 할까? 너는 모든 것을 다 똑같이 좋아하고 있어? 아마 특별히 마음 가는 게 있겠지. 몸의 모든 부분은 신하나 노비처럼 부수적인 걸까? 이 부수적인 것끼리 서로 다스릴 수는 없을까? 번갈아 임금 노릇하고 신하 노릇 한다면? 아니, 참된 임금(眞君)이 있겠지. 그 실체를 찾던 찾지 못하던 그 참된 것에 더하는 것도 덜어내는 것도 없어. 


한번 이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수명을 다하도록 하자. 다른 이들과 서로 부대끼고 치이며 살아가면 날랜 말이 달리듯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 그렇게 수명을 다하면 애닯지 않겠어? 죽을 때까지 힘써 일하더라도 뭔가 이루어 냈다며 내세울 것이 없지. 고달프고 힘들지만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슬프지 않겠어? 죽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더라도 무슨 이로운 게 있겠어. 몸이 늙어가면 마음도 똑같이 늙어가는 걸. 이게 가장 슬픈 일이지. 


大知閑閑。小知閒閒。大言炎炎。小言詹詹。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為構。日以心鬭。縵者。窖者。密者。小恐惴惴。大恐縵縵。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如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為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如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

喜怒哀樂。慮歎變慹。姚佚啓態。樂出虚。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非彼無我。非我無所取。是亦近矣。而莫知其所為使。

若有真宰。而特不得其朕。可行已信。而不見其形。有情而無形。百骸。九竅。六藏賅而存焉。吾誰與為親。汝皆說之乎。其有私焉。如是皆有為臣妾乎。其臣妾不足以相治乎。其遞相為君臣乎。其有真君存焉。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

一受其成形。不忘以待盡。與物相刃相靡。其行盡如馳。而莫之能止。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可不哀邪。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可不謂大哀乎。

* 構(구) : 얽다
* 窖(교) : 감추다
* 縵者。窖者。密者。: 우유부단한 자도 있고 음흉한 자도 있으며 깐깐한 자도 있다.(안동림)


閑閑 : 넓은 모양
閒閒 : 구분한다는 뜻
炎炎 : 아름답고 풍성한 모양
詹詹 : 마음이 좁은 모양
縵 : 느긋한 마음
窖 : 깊은 마음
惴惴 : 소심하다.
縵縵 : 죽음과 삶을 같게 여기는 모양.
慹 : 움직이지 않는 모양
朕 : 조짐
賅 : 갖춤

閑閑廣博貌。閒閒有别也。炎炎美盛貌。詹詹小褊貌。縵寛心也。窖深心也。惴惴小心也。縵縵齊死生貌。慹不動貌。朕兆也。賅備也。


【郭注】


閑閑閒閒: 앎이 같이 않음. 炎炎詹詹: 언어의 차이. 魂交形開 : 잠과 깨어남의 차이. 縵窖密 : 사물을 만날 때의 차이. 惴惴縵縵 : 두려움의 차이. 司是非守勝 : 움직임과 멈춤의 차이. 日消衰殺也, 不可使復 : 빠져 흘러감. 壓緘: 욕망에 빠져버림. 老洫: 늙었으나 더욱 혈기를 부림. 近死 : 근심거리를 이롭게 여기고 재앙을 가볍게 여김. 莫使復陽 : 은근히 매여 뜻을 따름. 


喜怒~ : 성정의 차이. 樂出虚, 蒸成菌 : 변화가 일어나는 차이. 여기까지는 대략적으로 하늘의 피리 소리가 한계가 없음을 예로 들었다. 다음으로는 한계 없는 자연스러움을 설명하였다. 사물이 각기 자연스러우니,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나 그렇게 된다. 그러므로 겉보기는 더욱 다르더라도 자연스러움은 더욱 같다. 日夜相代 : 새로움으로 번갈아 바뀐다. 천지만물은 변화하며 매일 새롭다. 때에 따라 모두 운행하니 어떤 사물이 그것을 발생시키겠는가. 자연히 그렇게 될 뿐이다. 태어난 대로 살아가니 스스로 살아간다(自生)라고 말하였다. 상대가 그러함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나를 낳았으니, 나는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그러므로 '자연스러움'이란 곧 나의 자연스러움이다. 어찌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이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사물이 무성하나 모두 스스로 그럴 뿐이다.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맡겨두면 이치가 저절로 지극하다. 모든 사물들은 타고난 것이 서로 다르다. 참된 주인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며 참된 주인의 흔적을 찾는다 해도 끝내 찾지 못한다. 사물은 모두 자연스러울 뿐임이 분명하다. 사물을 그렇게끔 하는 것은 없다. 운행하는 것은 신실하게 운행한다. 사물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으니 겉모습이 별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백 개의 뼈마디, 아홉 개의 구멍 등은 모두 자연스럽게 주어져 모두가 온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면, 사사로움이 있는 것이니, 사사로움이 있으면 온전히 갖출 수 없다.


분수를 넘어 마음을 먹으면, 위아래가 서로 시기하여 신하 노릇이나 종노릇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군주와 신하의 구분은 마치 하늘이 높고 땅이 낮은 것과 같아서 자연스레 마땅히 정해진 것이다. 참된 군주는 그 자연스러움에 맡겨두고,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가 참된 본성을 따르고 자연스러운 행위를 따르면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모두 자연스레 같아진다. 지혜로운 자는 죽을 때까지 지혜를 지키고, 어리석은 자는 죽을 때까지 어리석다. 거스름과 순응이 마구 뒤섞이고, 각자 편견을 믿고 멋대로 행동한다면 자연스레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에 견주어보면 이 역시 슬퍼할 것이지만 이것을 슬퍼하는 자는 없었다. 본성의 그러함은 참으로 그러한 것이다. 사물은 각기 본성의 그러함을 따른다면 또 무엇을 슬퍼할 것이 있을까. 그러니 죽을 때까지 힘써 일하고 고되고 피곤하다 하면, 비록 살아 있다 하더라도 사실은 죽은 것과 같다. 이것이 크게 슬퍼할 일이지만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이란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다. 


閑閑閒閒。知之不同也。炎炎詹詹。言語之異也。魂交形開。寤寐之異也。縵窖密。交接之異也。惴惴縵縵。恐悸之異也。司是非守勝。動止之異也。日消衰殺也。不可使復。溺而遂往也。壓緘厭没于欲。老洫老而愈洫也。近死利患輕禍也。莫使復陽。陰結遂志也。
喜怒以下。性情之異也。樂出虚。蒸成菌。事變之異也。自此以上。略舉天籟之無方。以下明無方之自然也。物各自然。不知所以然而然。則形雖彌異。自然彌同也。日夜相代。代故以新也。天地萬物。變化日新。與時俱往。何物萌之哉。自然而然耳。所出以生。言其自生也。彼有然也。自然生我。我自然生。故自然者即我之自然。豈遠之哉。
不知所為使者。凡物云云皆自爾耳。非相為使也。故任之而理自至矣。萬物萬情。趣舍不同。若有真宰使之然也。起索真宰之朕迹。而亦終不得。則明物皆自然。無使物然也。行者信已可行。情當其物。形不别見。則百骸九竅。付之自然。而莫不賅存。說之則有所私。有私則不能賅而存。
志過其分。上下相冒。而莫為臣妾矣。夫君臣之分。若天髙地卑。措於自當。真君則任其自爾。而非偽也。凡得真性。用其自為者。知與不知。皆自若也。然知者守知以待終。愚者抱愚以至死。逆順相交。各信其偏見。而恣其所行。莫能自反。此比衆人所悲者。亦可悲矣。而未嘗以此為悲。性然故也。物各性然。又何物足悲哉。然則終身役役。苶然疲困。雖生而實與死同。此又哀之大。而人未嘗以為哀。則凡所哀者不足哀也。

* 恐悸(공계) : 무서워 가슴이 두근거림
* 洫(혁) : 넘치다. 
* 陰結(음결) : "暗中結集"(Zdic)
* 冒(모) : 시기하다. 
* 措(조) : 두다




현재 브런치에는 초역본을 올리고 있다. 수정본을 올리는 것은 처음인데, 곽상주석을 옮겼기 때문이다. 

곽상의 이야기가 조금씩 이해되고 있다. 곽상의 논리를 좇아가면 영 재미없는 해석에 이르지만, 여튼 중요한 주석가니 그의 논의를 좇아보자. 특히 '자연스러움'에 대한 논의가 흥미롭다. 자생自生과 자연스러움을 엮은 것은 탁월한 면이 있다. 

소요유편 내용까지 <장자익> 번역을 다시 새롭게 정리했다. 다음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https://zziraci.com/zhuangziyi

<제물론>을 강독하면서 장자, 곽상과 계속 씨름중이다. 곤혹스런 작업이지만 나름 뿌릇한 시간이다. 그나저나 빨리 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장자익 : 제물론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