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탈이출, 송곳 같이 날카로운 모수 이야기

역사를 찢고 나온 사람들 6

by 기픈옹달

다시 오늘 이야기의 주무대 조나라로 돌아가자. 조나라에는 평원군 조승이 빈객들을 불러 모아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진나라의 군대가 수도 한단을 포위했던 상황에서 평원군은 결사대를 꾸려 초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려 떠난다. 문제는 스무 명을 계획했으나 마지막 한 명을 채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무나 스무 명을 채우려 한 것이 아니라 용맹과 문무를 겸비한 사람을 뽑으려 했기에 쉽지 않았다.(勇力文武備具者二十人) 결국 시간에 쫓겨 떠날 때가 되었다.


이때 한 사람이 나서 자신을 그 숫자에 끼워달라고 요구한다. 바로 모수자천毛遂自薦 주인공 모수毛遂이다. 평원군이 보기에 영 낯선 인물이 나서서 스스로 함께 가기를 청한다니. 국가의 운명을 다투는 일에 아무나 데려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평원군이 말했다.

"선생은 내 문하에 있은 지 몇 해나 되었소?"

모수가 말했다.

"이미 3년 됐습니다."

평원군이 말했다.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문하에 3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평원군우경열전>


훌륭한 선비는 마치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송곳과도 같다.(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여기서 그 유명한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낭중지추는 오늘날에도 평원군의 말처럼 훌륭한 재능을 지닌 사람은 언젠가 주목받는다는 식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모수의 답은 좀 다르다.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으면 그 예리한 끝이 튀어나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무리 날카로운 송곳이라 하더라도 그저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날카로움을 내보일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모수는 자신을 주머니 속에 넣어볼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단순히 그 끝을 내보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호기 있게 말한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끝을 보이는 송곳이 있는가 하면 주머니를 찢어 버리는 송곳이 있다. 송곳 자루가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란다. 여기서 '영탈이출穎脫而出'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 빼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수자천毛遂自薦,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이어 영탈이출穎脫而出 까지. 평원군과 모수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역량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 이를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사마천의 관점을 참고하면 그는 역시 호기 있게 한 발짝 나서는 인물들에 관심이 있다. 만약 모수가 나서지 않았다면? 모수의 이름은커녕 날카로운 송곳의 이야기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이처럼 날카로운 송곳들을 한데 모아놓은 자루더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시대의 무게를 뚫고 나온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골라내어 보여주는 사마천의 안목까지. 날카로운 송곳들을 만난다는 것이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가진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가 아닐지.


송곳의 비유답게 모수는 초나라 왕과의 담판 자리에서도 번뜩이는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초나라 임금과 평원군의 대화가 지지부진하자 모수가 둘의 회담 자리에 난입한다. 아침부터 한낮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길게 이야기할 것이 무어냐는 거다. 모수를 꾸짖는 초나라 임금에게 모수는 날카로운 말을 던진다.


모수는 칼자루를 잡고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 병사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열 걸음 안에서는 왕께서 초나라 병사가 많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왕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중략)… 합종은 초나라를 위한 일이지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제 주인이 앞에 있는데 저를 꾸짖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나라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참으로 선생의 말씀이 맞소. 삼가 사직을 받들어 합종하겠소."


말 그대로 담판을 지은 것. 모수는 평원군과 초왕의 맹약에 참여한다. 닭, 개, 말의 피를 마시며 합종을 맹약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초왕이, 다음에는 평원군이 마지막으로 모수가 이 피를 마시며 합종을 약속한다. 모수의 이야기는 결단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많은 말보다 날카롭고 매서운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평원군은 이후 이렇게 말한다.


"모 선생의 세치 혀는 군사 100만 명 보다도 강했다.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를 고르지 않겠다."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勝不敢復相士


서구의 명언 가운데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반면 사마천은 모수의 이야기를 통해 세치 혀가 만군의 병사보다 강하다고 역설한다. 오래도록 중국 철학자들은 말을 멀리하곤 했다.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 교묘한 말재주와 번듯한 얼굴빛을 싫어했다. 장자는 '명자실지빈야名者實之賓也'라 하여 말이란 본질과 동떨어져 있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마천이 말하는 것은 이와는 좀 다른 것일 테다. 사마천이 전하는 것은 말의 현장성, 운동성이다. 말 한마디에 공기가 바뀐다.


무엇보다 이들의 말에는 주저함이 없다. 이들은 제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내보이는 이들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어떤 거짓이 깃들지 않는다. 남을 속이겠다는 계산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겠다는 속셈도 없다. 이들은 자신을 온전히 실어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더불어 말과 함께 성큼 다가간다. 인상여의 말 속에, 모수의 말 속에 전진하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말은 육박하여 성큼 다가온다.


무엇보다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권력자를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인상여는 진왕을, 모수는 초왕을 임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이들 역시 하나의 인간으로 이들을 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말에는 칼처럼, 송곳처럼 찢어버리는 효과가 있다. 권력이 지닌 허위의 껍데기를 벗겨버린다. 기세 등등한 이들의 가면을 깨뜨려버린다. 이들은 그렇게 스스로 임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인상여와 같은 지혜와 용기를 가지기를, 모수와 같은 송곳 같은 날카로움을 가슴에 품기를. 물론 일상 속에서 늘 이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아는가. 한 번쯤은 어느 순간 이들을 닮아야 할 때가 있을지. 한 걸음 재겨 디딜 곳 조차 보이지 않을 때, 이들의 이야기가 힘을 주리라 믿는다. 당차게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 이들과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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