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구도, 재주꾼으로 목숨을 건진 맹상군 이야기

역사를 찢고 나온 사람들 5

by 기픈옹달

제나라 맹상군과 그의 빈객 이야기는 지금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그 이야기를 살펴보자.


맹상군은 정곽군 전영의 아들이다. 정곽군 전영은 제선왕의 배다른 동생으로 제나라의 실력자 가운데 하나였다. 전영에게는 아들 40명이 넘는 있었는데 그 가운데 천한 첩이 낳은 아들이 전문, 훗날 맹상군이 되는 인물이었다.


수십 명이 넘는 자식을 어찌 일일이 기억할 수 없었을까. 그러나 맹상군 전문이 전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5월 5일에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날 태어난 아이는 부모에게 해를 끼친다나. 첩은 그 아이를 몰래 키운다. 훗날 장성한 전문이 아버지 전영을 만나는데, 당연히 전영은 크게 노한다. 그러나 전문은 당돌하게 질문을 던진다.


"아버님께서 5월에 태어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들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롭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이 [또]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전영이 말했다.

"너는 그만하여라."

<맹상군열전>


어린 전문은 묻는다. 대체 사람의 명命은 어디에 달린 것일까? 하늘(天)에 달린 것일까? 아니면 문(戶)에 달린 것일까? 하늘에 달려 있다면 걱정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늘이란 본디 사람의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에 달려있다면 어떨까? 문을 커다랗게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어린 전문은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이 상황에 사유의 전복을 시도한다. 그 속설이 맞다면 오히려 좋은 일일 테다. 내 뜻대로 명命을 바꿀 수 있을 테니!


이는 거꾸로 그가 커다란 그릇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아버지 전영과 얽힌 또 다른 일화가 있는데 그는 재물을 단지 쌓아두기만 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꼬집는다. 예로부터 재물을 축적하는 이유로 자식과 후손을 위해서라는 명목이 따라붙곤 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 후손이란 알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손자는 알겠지만, 손자의 손자 현손을 알기는 힘들다. 현손의 현손이라면?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모르는 사람, 먼 후손을 위해 곳간에 재물을 쌓아두는 일은 어째서인가. 전문은 도리어 이 재물을 풀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들을 끌어들이자고 한다.


훗날 맹상군이 명성 때문에 진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진나라 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으려 하나, 그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는 맹상군을 죽이려 한다. 꼼짝없이 진나라에서 죽게 된 상황. 이때 맹상군의 빈객이 활약을 펼친다.


우선 진나라 왕의 애첩에게 사람을 보내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 애첩은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로 만든 가죽옷,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한다. 맹상군이 소유하고 있던 이 진귀한 물건은 이미 진나라 임금에게 바친 상황. 결국 맹상군은 빈객들과 이 문제를 상의한다. 이때 흥미로운 재주를 지닌 자가 나서 호백구를 다시 훔쳐온다.


맨 아랫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개 흉내를 내어 좀도둑질을 하던 자가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우 가죽옷을 구해올 수 있습니다."

밤이 이슥해지자 그는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궐의 창고 속으로 들어가 전날 소왕에게 바쳤던 여우 가죽옷을 훔쳐 돌아왔다.


한 나라 도성의 삼엄한 경비가 한낮 보잘것없는 재주꾼에게 뚫려버린 것이다. 덕분에 풀려난 맹상군은 서둘러 도망가지만 함곡관에 이르러 또 다른 위기를 겪는다. 관문을 벗어나야 하는데 밤이라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미 그를 뒤쫓는 병사들이 턱밑까지 이른 상황이었다. 이때 등장하는 또 다른 재주꾼.


빈객 가운데 맨 끝자리에 앉은 자가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근처의] 닭들이 다 울었다. 그래서 통행증을 보이고 함곡관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정말로 맹상군을 뒤쫓던 진나라 사람들이 국경에 이르렀으나 맹상군이 이미 빠져 나간 뒤이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요즘으로 치면 도둑질과 성대모사의 달인이 맹상군의 빈객으로 있었다. 대체 이런 재주를 어디에 쓸까 하지만 쓸 곳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요긴하게. 수많은 빈객을 모아놓고 결국 이런 재주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치세治世,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이들의 재주를 두고 가볍게 웃어 넘겼을 수 있다. 그러나 난세亂世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세상이 어지럽다는 것은 통상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지러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자잘한 재주들이다. 시대의 통상적인 가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전국시대는 바로 이런 시대였다. 그러니 사람과 맺는 관계가 이전과 달라져야 할 수밖에. 보다 유연한 사고, 유연한 삶이 중요하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바로 이런 국면에 다다른 것은 아닐지. 전환의 시대에 직면한 지금, 이 고사는 단순히 재미난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사마천은 맹상군의 빈객이 약 3,000명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도 이웃나라의 비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웃나라가 맹상군을 비방하고, 맹상군의 명성이 제나라 임금을 뛰어넘자 제나라 임금은 맹상군을 벼슬에서 내쫓았다.


그러자 맹상군의 곁을 지키던 빈객들이 우수수 떠나갔다. 훗날 맹상군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자 이번에는 떠나갔던 빈객들이 다시 맹상군을 찾아왔다. 이때 맹상군은 화가 나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나아가 얼굴에 침을 뱉어 욕보일 생각이었다.


이때 그의 곁을 지키고 있던 풍환의 말을 들어보자.


"살이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고 나서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사마천이 이야기하는 신의는 진지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제 잇속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가는 사람을 붙잡을 수도 없으며, 오는 사람을 막을 것도 없다는 말.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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