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공론, 책으로 전쟁을 배운 조괄 이야기

역사를 찢고 나온 사람들 4

by 기픈옹달

<염파인상여열전>에는 염파와 인상여 이외에도 조사, 이목 등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조나라의 훌륭한 장수로 진나라의 공세를 맞아 조나라를 지켜낸 인물이었다.


그러나 조나라에만 이런 빼어난 인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웃 진나라에는 응후 범수와 무안군 백기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 가운데 무안군 백기는 가는 곳마다 전장에서 승리를 거둔 맹장이었다. 특히 조나라 장평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 인물로 유명하다. 앞서 소개한 조나라의 영웅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당시 인상여는 병이 위독했고, 조사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염파 홀로 진나라 군대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염파는 단단히 보루를 쌓고 진나라의 공세를 막아냈다. 진나라 군대가 싸움을 걸어오더라도 상대하지 않고 견고하게 지킬 뿐이었다.


문제는 조나라 임금의 조급함이었다. 진나라는 조나라의 맹장 염파를 상대할 방법을 고심하다 소문을 퍼뜨리기로 한다. 소문의 내용은 이렇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 장군이 되는 일뿐이다."


조나라 왕이 염파를 대신하여 조사를 장수로 삼으려 하자 인상여가 이를 반대한다. 인상여의 말은 이렇다. "아버지가 남긴 병법 책을 읽었을 뿐 사태 변화에 대처할 줄 모릅니다."


조괄의 아버지 조사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한편 아들 조사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슬하에서 병법을 배웠다. 일찍부터 그는 병법에 큰 재능을 보였다. 병법을 논하면 아버지 조사가 조괄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가 한 번도 전장에 나가보지 못한 신출내기였다는 점.


그러나 보루를 쌓고 지키기만 하는 염파를 못마땅하게 여긴 조나라 왕은 조괄을 장수로 삼는다. 이때 조괄의 어머니가 나서 조나라 왕에게 하는 말이 흥미롭다. 그는 조사의 말을 전하면서 조괄을 장수로 삼으면 안 된다고 반대한다. 너무 전쟁을 쉽게 말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미 정한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는 일. 이에 그는 이렇게 청한다


"왕께서 굳이 그 아이를 보내시려거든 그 아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소첩을 그 아이의 죄에 연루시켜 벌을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염파가 물러나고 조괄이 장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진나라는 몰래 장수를 바꾼다. 바로 무안군 백기로 장수를 교체한 것이다. 백기는 기병을 보내 거짓으로 달아나는 척하며 조나라 군대를 끌어들였다. 조나라 군대는 백기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포위되고 만다. 40일 넘게 포위를 풀지 못했다. 병사들이 서로 잡아먹는 부지기수. 조괄은 병사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어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전장에서 전사하고 만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여러 장수들의 면모를 소개한다. 사마천의 기록을 보면 전장에 나가 군공을 세운 이들이 의외로 섬세한 면모를 갖추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막무가내로 전장을 누비지 않는다. 도리어 어떻게 승기를 잡아야 할지는 아는 인물들이다.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자가 전장에서 승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탁상공론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상 위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책상 위에서 결판날 뿐이다. 책상 위의 구상이 실제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몸으로 체득한 지식, 경험으로 축적한 지혜가 중요하다. <사기열전>과 같은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야기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특정한 사건을 맞아 대응할 수 있는 수많은 길이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한편 풍부한 상상력도. 뻔한 말이지만 이를 응용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백기는 장평의 전쟁 큰 승리로 이끈다. 수십만이 포로로 잡히는데, 백기는 대부분을 죽여 매장하기로 결정한다. 사마천은 이때 죽은 병사의 수가 45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목숨을 건진 어린아이 240명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과연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까? 장정 40만을 죽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오늘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웬만한 나라 하나가 휘청거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나라와 진나라의 악연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한다. 1년 넘게 포위된 바람에 한단의 백성들은 뼈를 장작 삼아 불을 때며, 자식을 바꾸어 잡아먹었다.(炊骨易子而食)


조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황. 이때 활약했던 인물이 전국사공자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공자公子라는 호칭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각국의 귀족 세력으로 크게 명성을 떨친 인물이었다. 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위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이 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널리 인재를 불러 모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세력가에게 몰려든 인재를 식객食客 혹은 빈객賓客이라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다양한 인물들이 천하를 누비며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고자 했다. 이들을 유세객遊說客이라고 했는데 언뜻 보아 비슷한 이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공자들 아래 몰려든 인물들은 글보다는 칼을 가까이 한 인물들이었다. 협객俠客 무리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이들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고사를 하나 소개한다. 바로 평원군에 얽힌 이야기이다. 평원군의 집에는 높은 누가가 있어 민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단다. 민가에 한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는데 절뚝거리며 물을 길으러 다녔다. 어느 날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날 절름발이가 평원군을 찾아와 애첩의 목을 요구했다.


"저는 당신이 선비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선비들이 1000리를 멀다 않고 찾아오는 것은 당신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고 애첩을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행히 다리를 절뚝거리고 등이 굽는 병이 있는데 당신 애첩이 저를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원컨대 저를 비웃은 자의 목을 베어 주십시오."

<평원군열전>


평원군은 웃으며 그의 요구에 응답했으나 사실은 들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있는 뒤 평원군의 빈객이 점점 줄었다. 무슨 문제였을까? 한 빈객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자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비들은 당신이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하찮게 여기는 인물로 생각하여 떠나는 것입니다."


결국 평원군은 그 애첩의 목을 베고 직접 절름발이 집을 찾아가 목을 내어주며 사과해야 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 그러나 거꾸로 사마천은 이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선비들, 이른바 협사俠士/협객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신의로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물론 이들의 행동 전부를 긍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을 함께 하는 부분, 계산이나 기만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면모는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이들의 이야기에서 누구는 섬뜩함을 누구는 상쾌함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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