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지교, 인상여의 벗이 된 염파 이야기

역사를 찢고 나온 사람들 3

by 기픈옹달

진왕 앞에서 당당한 인상여의 기백은 꽤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는 요행이 아니었을까? 제환공을 칼로 위협한 자객 조말과 같은 이도 있지 않았나.


사마천은 인상여에 얽힌 두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조나라와 진나라 사이의 외교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조나라는 화씨벽을 지켜낼 수는 있었지만 진나라의 막강한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나라의 군대를 맞아 크게 패한다. 이때 진나라로부터 강화 제의를 받는다.


진왕은 조왕을 만나 우호를 다지고 싶다고 말하며 직접 만나는 회담을 추진한다. 난감한 상황이다. 가지 않자니 전쟁이 지속될 것이고 가자니 혹시 인질로 잡히는 것은 아닐까. 인상여는 진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나약하고 비겁하다며 손가락질받을 것이라고.


결국 조왕은 진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혹시라도 돌아오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태자에게 나라를 맡겨놓고. 이렇게 조왕은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바로 인상여와 함께.


진왕은 조왕을 만나 술자리를 연다. 흥취가 오르자 조왕에게 거문고 연주를 부탁한다. 흥에 겨운 나머지 조왕이 거문고를 뜯자 진의 사관이 이렇게 적었다.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만나 술을 마시고 조나라 왕에게 거문고를 연주하도록 했다."


눈앞에서 조왕을 욕보이는 일이다. 여기에는 상대의 기세를 꺾어버리겠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진왕이 시키는 대로 조왕이 행동한다며. 그러나 조왕 곁에는 진왕을 상대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던 인상여가 있었다.


인상여는 작은북을 들고 진왕 앞에 나아가 요구한다. 왕께서 음악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진왕께서도 악기를 연주해 달라고. 그러나 의도가 뻔한 이 요구에 응답할 리가 있을까. 진왕이 화를 내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인상여는 다시 나아가 한 번 더 청한다.


"신 상여와 왕 사이는 다섯 걸음도 못 됩니다. 신은 목의 피를 왕께 뿌려서라도 요청할 것입니다."


진왕 좌우의 무사들이 칼을 빼어 들었지만 인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자 물러서고 말았다. 그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모두 압도되고 말았다. 결국 진왕은 마지못해 손으로 툭 북을 한번 쳤다. 인상여는 사관을 불러 이렇게 적도록 한다.


"진나라 왕이 조나라 왕을 위하여 북을 두드렸다."


인상여의 기개는 소름 돋게 만든다. 자신의 목을 걸고 진왕을 압박하고 있다. 그저 말뿐이었다면 진왕이 웃어넘겼으리라. 인상여는 지금 진정으로 자신의 목을 내놓고 진왕 앞에 나와 있다. 협박이 아닌 진심.


진왕을 상대로 벌인 인상여의 활약을 보면 벼랑 끝 전술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법하다. 그러나 사마천은 그의 모습에서 어떤 기술을 읽어내지 않는다. 도리어 인상여에게는 자신의 삶 전체를 실어 내딛는 한 발짝이 있었다. 자신의 삶 전체를, 목숨을 내어두었던 것이고 그 무게는 천하를 호령한 진왕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진나라는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조나라를 이길 수 없었다. 비록 전장에서는 이겼지만 회담 현장에서는 다시 인상여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러니 조나라에서 인상여의 지위가 높아질 수밖에.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운 백전노장 염파보다 높아졌다. 이에 염파가 크게 노했다. 칼을 휘두르며 온몸에 상처를 입어가며 공을 세운 자신보다 세치 혀를 놀린 인상여가 더 높다니. 염파는 언젠가 인상여를 만나 욕을 보이겠다며 단단히 벼른다.


이 소식을 듣고 인상여는 염파를 피해 다녔다. 이를 보고 인상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했다. 염파를 피해 다니는 모습이 부끄러워 함께 있을 수 없다며. 이에 인상여는 묻는다. 염파와 진왕 가운데 누가 더 무서울까. 천하를 호령하는 진왕이 더 무섭다는 대답에 인상여는 이렇게 말한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염파인상여열전>


이 말은 염파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염파는 인상여를 찾아가 사과하고 그와 죽음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여기서 바로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이 나왔다. 인상여는 염파를 부끄럽게 한 인물, 그를 벗으로 만든 인물이었다.


사마천은 인상여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생기게 된다.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知死必勇 非死者難也 處死者難)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중에 어떤 이든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인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염파인상여열전>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감해진다. 이때의 용기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 맹자는 의로운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면 어떤 기운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 유명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그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이 인상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윤리적 가치 위에 있는 당당함이 아닌 더 본래적인,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러나 그 무게는 결코 똑같지 않은. 바로 삶에서 출발하는 용기를 가리킨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자기 존재의 몰락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몰락의 벼랑에서 누구는 겁을 먹고 뒷걸음치며 누구는 그 순간 한 발짝을 내딛는다. 사마천이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필연적인 죽음 앞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것이 어렵다. 여기서 어떤 지혜가 발견된다. 바로 죽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것.


사마천은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헌데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어떻게 죽느냐 다르기 때문이지요. (人固有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趣異也)"


죽음이라는 보편적 문제에서 사마천은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삶의 무게를 다르게 만든다고 말한다. 죽음은 똑같지만 죽음의 무게는 똑같지 않다. 뒤로 물러서는 삶의 무게와 앞으로 달려드는 삶의 무게가 다르다. 어떤 전환이 여기에 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게 아닌 어떤 삶과 어떤 죽음일 것인가 하는 질문. 어떻게 죽을지 결정할 수 있는 삶이야 말로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


훗날 인상여를 사모한 나머지 그의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사마상여'라는 인물이다. 그 역시 인상여처럼 무거운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인상여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를 흠모하는 동시에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질문하곤 한다. 티끌처럼 흩날리는 삶이 아닌. 고민 끝에 근거 없는 믿음이랄까 기대랄까 하는 것을 품어본다. 이처럼 무거운 삶의 이야기를 읽고 가까이하면 가벼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keyword
이전 20화완벽귀조, 진왕을 압도한 인상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