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찢고 나온 사람들 1
진문공晉文公은 제환공을 이어 두 번째 패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오랜 시간 나라 밖을 떠돌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엔 군주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는 데까지 이른다. <진세가晉世家>에 그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는 세력을 키운 뒤 제후들을 모아 천자, 주왕周王을 알현하고자 했다. 제후국 사이에서 세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까닭이다.
진나라 문공은 온읍에서 제후들과 만나 그들을 거느리고 주 천자를 알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이 부족하여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사람을 보내 주나라 양왕으로 하여금 하양에서 순시하라고 말씀드리게 했다. 임신일, 마침내 제후들을 거느리고 천토에 와서 주나라 양왕을 뵈었다. 공자가 역사서를 읽다가 문공 부분에 이르러 말한 "제후는 왕을 부를 수 없다."라든지 "왕이 하양을 순시한다."라고 한 것은 <춘추>가 이를 피한 것이다.
<진세가> (* 이하 번역은 김원중 역 참고)
실제로는 진문공이 주양왕을 부른 것이지만 사서史書는 이를 다르게 기록한다. ‘왕이 하양을 순시한다.(王狩河陽)’, 왕이 스스로 하양으로 갔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비록 상징적일 것일 뿐이라 하더라도 아직 주왕실의 권위가 살아있었다. 제후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서는 그래도 제후와 천자의 권위를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주왕실을 중심으로 한 봉건체제는 천하를 커다란 하나의 집안으로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왕실은 천하의 종주宗主로 가장 높은 권위를 지녔다. 제후들은 함께 천자를 섬기는 형제 같은 관계였다. 비록 투닥거리며 다투는 일이 있었지만 한 지붕 아래 가족이라는 정체성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뿌리가 같으면 뭐하나. 시대가 흐르다 보면 동류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제후국끼리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상대를 멸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전쟁의 양상은 더 참혹해졌는데, 아예 상대국을 멸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오와 월의 전쟁이었다.
앞서 보았듯 월이 오를 점령하자 오의 명백이 끊어져버렸다. 오나라는 오태백吳太伯, 즉 주나라의 시조격인 주문왕周文王의 큰아버지가 되는 이로부터 시작한 나라였다. 그런데 이 뿌리 깊은 나라의 명맥이 끊어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제나라에서도 큰 변고가 일어난다. 당시 제나라는 이미 대부의 세력이 제후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최저의 집에서 죽은 장공의 이야기를 기억하자. 임금이 대부의 손에 죽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제나라의 권력을 손에 쥔 것은 전씨田氏 일가였다. 이들은 최씨 집안을 멸하고 제나라의 가장 큰 세력이 된다.
제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이 집안은 제강공齊康公 시기에 이르러 군주의 자리를 찬탈하기에 이른다. 이제 제나라는 강姜씨의 나라가 아니라 전씨의 나라가 되었다. 참고로 제나라는 강태공姜太公이라고도 불리는 주나라의 개국 공신에게 떼어준 나라였다. 주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부당함을 이야기하던 백이와 숙제를 살려준 그 태공망의 후손 말이다.
진晉은 좀 다른 운명을 맞는다. 진나라도 제나라처럼 대부들의 권력이 제후의 권력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른다. 차이가 있다면 몇몇 대부 집안이 서로 나라 하나를 두고 다투었다는 점이다. 당시 네 유력 가문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지백知伯의 세력이 가장 컸다. 그러나 조趙, 한韓, 위魏 세 집안이 공동으로 힘을 합쳐 지백을 죽이고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갖는다. 이렇게 진을 뿌리로 한 세 나라를 삼진三晉이라고도 한다. 진나라는 이렇게 조趙, 한韓, 위魏 세 나라로 나뉘고 만다.
본래 주나라의 봉건체제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웃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주나라의 체제를 무너뜨린 대부 집안을 공격하여 기존의 봉건체제를 안정시킬 의무가 있었다. 춘추시대의 패자는 이 역할을 자임하고는 했다. 맹자가 말한, 힘으로 인을 가장하는(以力假仁) 것이란 바로 이를 두고 말한 것이리라. 그러나 진이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들어섰지만 다른 나라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주위열왕周威烈王은 이들을 제후로 임명하기에 이른다. 이제 주의 봉건체제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 버렸다.
이 셋 - 오의 멸망, 전씨가 제나라 권력을 탈취한 일, 조˙위˙한 세 나라의 등장 - 은 전국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제 천하는 일곱 나라가 서로 자웅을 겨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秦, 초楚, 제齊,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이 일곱 나라를 일러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부른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이 일곱 나라가 모두 주나라가 세운 기존 체제와 연관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진과 초, 연은 각각 서쪽과 남쪽, 북쪽에서 발흥한 나라로 오랑캐 지역으로 분류되었던 나라였다. 나머지 넷, 제와 삼진(조, 위, 한)은 대부 집안이 권력을 잡은 경우였다. 이제 천자의 집안, 주周와 상관없는 이들이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그러니 싸움도 이전과 양상이 전혀 달라졌다. 게다가 이들은 각기 저마다 주변의 소국을 병합하여 힘을 키운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싸움의 비정함을 이미 몸에 익힌 나라였다.
춘추시대는 패자가 주 왕실을 대신하던 시대였다. 주왕실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두고 주도권을 다투는 형국이었다. 반면 전국시대는 아무런 규칙 없이 싸움을 벌이는 시대였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이 일곱 나라 가운데 진나라와 치열한 다툼을 벌인 조나라에 주목하자. 조나라는 북방에 위치한 탓에 흉노와 접촉이 많았다. 조무령왕은 이들의 기마술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신이 듣건대 중원이란 대개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물건과 재물이 모여드는 곳이며, 어질고 성스러운 사람이 가르침을 주는 곳이고, 인의가 베풀어지는 곳이며, <시경>, <서경>과 예악이 쓰이는 곳이고, 색다르고 기민한 기능이 시험되는 곳이며, 먼 곳 사람들이 보러 오는 곳이고, 남쪽 오랑캐가 모범으로 삼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 왕께서는 이를 버리시고 먼 나라의 복장을 따라 입으려 하시니 이것은 옛날의 가르침을 변화시키고, 옛날의 도를 바꾸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것이며, 학자들의 권고를 거스르는 것이고, 중원의 전통과는 벗어나는 것이니, 신은 왕께서 이 일을 고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세가>
반대하는 이들은 중원의 순수성을 해칠 수 있다고 염려한다. 사방 오랑캐가 모범으로 삼는 곳이 중원이며, 이곳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어찌 북방 오랑캐의 의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인가? 중원의 복식이 있는데 이를 버리고 호복을 입는다는 것은 찬란한 중원의 문명, 예악의 결정체를 버리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한 조무령왕의 대답이 인상 깊다.
"의복이란 입는 데 편하기 위한 것이고 예란 일을 처리하는 데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인이 민간의 풍속을 관찰하여 순리에 따라야 하며, 일의 실제적인 상황에 따라 예절을 제정해야 하는 것은 그 백성을 이롭게 하고 그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 ‘책 속의 지식으로 말을 모는 자는 말의 본성을 다 할 수 없고, 옛것으로서 지금을 만들려 하는 자는 일의 변화에 통달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옛 법도를 따르는 공은 세속보다 높은 데 있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옛것만을 법도로 삼는 학문은 지금을 다스리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오."
<조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