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힘 6
오자서는 구천을 경계했지만 부차는 백비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비무기의 모함에 의해 아버지 오사가 죽었듯, 오자서에게도 비슷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오왕 부차는 백비의 꼬임에 넘어가 오자서를 죽이고 만다. 촉루라는 검을 주며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한다.
오나라 왕은 사신을 보내 오자서에게 촉루라는 칼을 내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이 칼로 자결하라."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아! 참소를 일삼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 (중략) … 그런데 지금 그는 간사한 신하의 말만 듣고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그러고는 가신들에게 말했다.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라."
그런 뒤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오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나서 오자서의 시체를 가져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 속에 내던져 버렸다. 오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강 언덕에 사당을 세우고 서산胥山이라고 불렀다.
<오자서열전>
오자서는 간신 백비의 꾀임에 놀아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왕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죽음 뒤에도 똑똑히 지켜보겠다고 말한다. 내 눈을 파내어 동쪽 성문에 걸어놓으라. 내가 월나라 놈들이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꼴을 두 눈으로 보고야 말겠다.
이 말은 읽는 이의 전율을 돋게 한다. 게다자 자신의 무덤 위에 자라는 나무를 베어 왕의 관으로 쓰라니! 끝까지 그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의 말을 들은 부차가 그의 시체를 가죽에 싸서 강에 내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기려 그가 죽은 근처의 산에 오자서의 이름을 따 서산胥山이라 불렀다 한다.
사마천은 <열전>에서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을 ‘장자長者’라 칭하였다. 그것은 단순히 사회적 업적으로 평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을 세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한 신념과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훗날 고조 유방, 초패왕 항우와 천하를 셋으로 갈라 가질 수도 있었던 회음후 한신은 장자長者가 아니라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산 오자서에 대해 <장자>에서는 충신忠臣이라 평가한다. 더불어 그의 명성은 꽤나 널리 알려져 은나라의 주왕에게 간언했던 비간比干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이름을 올린다. 비록 <잡편>인 <도척盜跖>편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지만 그가 유가에서 크게 존중받았던 비간과 더불어 언급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유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오자서의 삶을 결코 충신의 삶이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아버지와 조국을 버린 인물이 아닌가.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충신을 훗날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존재로 여기는 것은 편협한 이해가 아닐까? 후대에 그리는 충신이란 군주의 그늘에 갇혀서 모든 욕망을 그를 통해서만 실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나아가 군주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그러나 오자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선택했고, 오나라를 위해 진심을 다했다. 복수를 위해 초나라와의 전쟁을 벌였다는 것도 사실이며, 오나라를 위해 최전선에 섰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대의만 주장하는 것도 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일 것이며, 한 개인의 욕망에만 천착하는 것도 올바른 이해는 아닐 것이다. 이 둘은 서로 교차하며 그 모습을 계속 바꾸곤 한다. 그러나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렇게 뒤섞이는 와중에 그 개인의 욕망이 가진 날카로움이 무뎌지는가 하는 것일 테다. 사마천의 말을 빌리면 그가 잠시도 잊지 않았기에 이런 거대한 사건들 속에서도 오자서라는 인물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예언처럼 월나라의 군대는 오나라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수도를 함락시킨다. 이때 오나라 왕은 이전에 구천이 했던 것처럼 강화를 맺고자 한다.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수는 없는 법. 구천의 곁에 있던 범려는 오왕 부차에게 작은 땅을 내어 줄 테니 그곳에 가 살라고 한다. 오왕은 나이가 들어 월왕을 섬길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죽었다.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며.
"나는 그대를 용동에서 왕 노릇 하게 하려고 하니, 100호의 임금 노릇을 하시오."
오나라 왕이 사양하며 말했다.
"나는 늙었으니, 군왕을 섬길 수는 없소."
[오나라 왕은]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죽을 때] 자신의 얼굴을 가리면서 말했다.
"나는 면목이 없어 오자서를 대하지 못하겠다."
월나라 왕은 오나라 왕을 장사 지내고, 태재 백비를 주살했다.
<월왕구천세가>
오자서의 부릅뜬 눈과 눈을 가린 책 죽은 부차의 모습. 죽어서까지 지켜보겠다는 집념과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부끄러움이 이렇게 엇갈리고 있다. 사마천이 어느 편에 선 인물이었는가 묻는다는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겠다. 오왕 부차의 와신과 월왕 구천의 상담. 비록 후대에는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로 이 둘의 복수가 함께 엮이지만 사마천은 이 둘이 결코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한 사람은 복수에 취했고, 한 사람은 복수 너머를 보았다. 사마천이 누구에게 주목했는가 역시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닐 테다.
글쓰기란 망각에 저항하는 몸부림이다. 집요함이 없었다면 <사기> 같은 글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쓸개를 핥듯 글을 쓰지 않았을까. 나는 종종 사마천이 매우 건조하게 기술할 수 있었던 부분에 꽤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곤 한다. '오왕이 칼을 내리자 오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한 줄로 끝날 수 있는 글에 사마천은 오자서의 두 눈을 매달아 놓았다. 이는 오자서의 것이기도 하지만 사마천 자신의 것이기도 할 테다.
사마천은 구천의 이 사건에 깊이 감명했는지 월의 세가世家에 <월왕구천세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월의 기록이 매우 부족하여 구천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구천과 그를 옆에서 보좌했던 범려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분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천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구천의 이름을 제목에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사기에 나오는 또 다른 자유로운 인간형의 대명사인 범려에 대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으니 시간이 되면 <월왕구천세가>를 읽어보도록 하자.
월왕구천은 춘추시대 오패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속하곤 한다. 이제 패자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전국戰國,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시대. 각 나라가 천하를 두고 다투는 시대가 열린다. 구천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은 초나라에 의해 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