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막: 쓸개를 핥으며

복수는 나의 힘 5

by 기픈옹달

오나라와 초나라의 전쟁, 평왕의 시신에 매질한 오자서. 오자서의 복수는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이야기는 더 남았다. 또 다른 복수극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이번에는 월越나라로 눈을 돌리자. 월나라는 오나라와 이웃한 나라로 오나라와 잦은 분쟁을 겪은 나라였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이 두 나라는 서로 앙숙이었다.


오왕 합려는 월왕 윤상允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와 전쟁을 벌인다. 월나라의 임금은 윤상의 아들 구천句踐, 그는 힘을 다해 오나라의 군대를 막는다.


[구천] 원년, 오나라 왕 합려는 윤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즉시 군대를 일으켜 월나라를 정벌했다. 월나라 왕 구천이 죽음을 무릅쓴 병사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니, 그들은 세 줄을 이루어 오나라의 진영에 이르러 크게 외치고 스스로 목을 쳤다. 오나라 군대가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월나라 군대가 이 틈을 타 오나라 군대를 몰래 공격하자 오나라 군대는 취리에서 무너지고, 오나라 왕 합려를 쏘아 부상을 입혔다. 합려가 죽으려 할 때 아들 부차에게 일러 말했다.

"월나라를 절대 잊지 마라."

<월왕구천세가>


<오태백세가>의 기술은 더 상세하다.


… 오나라 왕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혀 오나라 군대는 7리를 물러났다. 오나라 왕이 상처가 도져 죽음에 이르자, 합려는 사자를 보내어 태자 부차를 왕으로 세우고는 일러 말했다.

"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

부차가 대답했다.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태백세가>


춘추오패 가운데 오왕 합려를 넣기도 하고 넣지 않기도 하다. 그만큼 기세 등등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작은 상처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러고는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아버지의 원수' 어쩌면 뻔한 복수의 이야기가 새롭게 막을 올린다. 그러나 오왕 부차의 복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가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했다는 일, 밤마다 딱딱한 나무 땔감 위해서 잤다는 이야기가 더 유명하다.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3년이 지나 부차는 회계산에서 월왕 구천을 포위한다. 아버지의 복수를 이룰 수 있게 된 상황. 거꾸로 월왕 구천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월왕은 오나라 태재 백비를 구슬려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치욕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구천이 회계산에 포위되어 있으면서 매우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끝나야 하는가?"

문종이 말했다.

"탕임금은 하대夏臺에 억류되었고 [주나라] 무왕은 유리羑里에 갇혔으며, 진나라 중이는 적나라로 달아났고, 제나라 소백은 거나라로 도망쳤습니다만, 그들은 왕 노릇 하고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본다면 [현재 당신의 처지가] 어찌 복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까?"

<월왕구천세가>


사마천 역시 이릉의 화를 입고 <사기>를 계속 쓰기로 다짐하면서 주문왕의 고사를 기억해냈다. 문종도 쉽게 굴하지 말아야 한다 말한다. 그는 이어 춘추시대의 두 인물을 이야기한다. 제나라 소백, 바로 첫 번째 패자가 되는 제환공이다. 진나라 중이, 제환공에 이어 패자가 되는 진문공이다.


굴욕적인 순간, 문종은 단순히 살아남을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굴욕을 감내하고 새로운 길을 연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구천은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제환공처럼 진문공처럼 패자가 되는 것을 꿈꾼다.


승리에 취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쉽게 복수를 이루었기 때문일까.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이 스스로 신하의 자리에 있기를 청하자 이를 받아준다. 그러나 오자서는 강렬하게 반대한다. 구천이야 말로 치욕을 능히 견디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후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복수의 칼을 품었던 사람이 볼 수 있는 혜안이라고 하자. 그는 구천의 눈에서 또 다른 불길을 읽어냈을 것이다. 구천을 살려두는 것은 또 다른 화를 부르는 일. 구천에게서 꺼지지 않는 불씨를 본 이상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구천은 목숨을 건지고는 늘 쓸개를 바라보았다 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쓸개를 핥았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상담嘗膽! 그 주인공이 바로 구천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늘 되뇌었다.


"너는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었는가?"


매일 쓸개를 핥은 것은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씻겨나가지 않고자 그는 매일 쓸개를 핥았다. 잊히지 않는 고통이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 갑자기 나를 물어뜯는 고통이 있기도 하다. 생생하게 되살아나 나를 집어삼키는 고통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대부분의 경우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래지기 마련이다. 분노와 원한이 복수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사마천 시대보다 분노와 원한의 크기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차곡차곡 발전하는 것이라면 원한의 총량은 꽤 줄어들었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이 정도로 발전한 사회, 21세기 라면 원한이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백이와 숙제의 채미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하고, 천도에 대해 묻는 사마천의 질문에 쉬이 답하지 못하는 것은 삶의 부당함이 그다지 줄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인류가 품은 원한의 총량은 과연 사마천 시대보다 얼마나 줄었을까?


루쉰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남의 이빨과 눈을 망가뜨려 놓고서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하지 말라."

<죽음>


관용이란 어쩌면 보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아닐까? 남을 해친 자들이 강요하는 건 아닐까? 보복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또한 집요함이 필요하다. 잊지 말 것. 우물쭈물함을, 망각을 너그러움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어서 루쉰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 말고도 있었을 것이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열이 많이 났을 때 유럽 사람들이 치른다는 의식을 떠올린 기억 은 있다. 남에게 용서를 빌고 자기도 용서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적이 많은데, 내게 신식 사람이 묻는다면 뭐라고 답 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이렇다. 나를 미워하라고 해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죽음>


'나를 미워하라고 해라. 나 역시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겠다.' 루쉰은 죽음을 앞두고도 집요함을 놓치지 않고 있다. 자신을 생생하게 밀어 넣고 있다. 루쉰은 쓸개를 핥으며 망각을 거부한 이, 구천을 잘 알고 있었을 테다.


루쉰의 고향 샤오싱에 월왕 구천을 기리는 '월왕전'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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