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힘 4
오자서가 오나라에 도착했을 때 오나라의 임금은 요僚였다. 오자서는 공자 광光에게 몸을 의탁하는데, 그는 요의 사촌으로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 오나라는 초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면서 자주 전쟁을 벌였다. 두 나라의 여인들이 뽕나무를 두고 다투는 바람에 양국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일도 있었다.
오자서는 오나라의 힘을 빌어 초나라를 치고자 하나 공자 광은 사적인 원한으로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던 것이다. 오자서는 오나라의 정세를 살피며 때를 기다린다. 공자 광이 임금 자리를 탐낸다는 것을 알고 오자서는 자객 전제專諸를 공자 광에게 소개해 준다. 바로 앞서 <자객열전>에서 만났던 자객 전제가 그 주인공이다.
상황을 다시 살펴보면 이렇다. 초나라와의 계속된 분쟁 상황에서 오왕 요는 동생이자 심복인 공자 개여蓋餘와 촉용燭庸을 보내 초나라를 공격한다. 그리고 삼촌인 계찰을 진晉으로 보내 제후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왕의 주변 인물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 이때야 말로 반란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때이다. 공자 광은 요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주연을 베푼다. 전제는 생선 요리 속에 칼을 숨겨 그를 암살한다.
이어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오왕 합려闔廬이다. 오왕 요가 죽기 바로 전 해, 오왕 12년 겨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오태백세가>에 실려 있다. “십이 년 겨울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十二年冬 楚平王卒)” 참고로 오왕 요가 초나라에 싸움을 걸었던 것은 바로 평왕의 죽음 때문이었다. 평왕이 세상을 떠나고 오나라의 군주가 바뀌었다. 공자 광이 임금이 되자 오자서도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오자서는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합려는 왕위에 오른 뒤 나라를 정비하여 이웃 나라들과 전쟁을 벌인다. 특히 초나라를 쳐서 크게 이기는데 이는 오자서처럼 초나라에서 도망친 백비伯嚭와 싸움의 귀재 손무孫武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려 9년, 오자서의 입장에서는 평왕이 세상을 떠난 뒤 10년째 되는 해에 비로소 초나라의 수도를 정벌하는 기회를 얻는다. 당시 초나라 임금은 소왕으로, 바로 평왕이 진나라 여인을 취해 얻은 아들이었다.
오나라 군대는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러 수도인 영郢까지 쳐들어간다. 그러나 소왕은 이미 도망친 뒤였다. 오자서가 초나라 수도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이미 죽어 뼈만 남은 평왕의 시체였다. 그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300번이나 매질을 한다. 이를 두고 그의 옛 친구 신포서는 복수가 지나치다며 나무라는 말을 전한다. 이때 오자서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일모도원日莫途遠 도행역시倒行逆施’ 날은 저무나 갈 길이 멀고, 도리를 거스를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사마천은 오자서의 이 잔혹한 복수에 앞서 일찍 도망친 소왕의 행적을 남겨놓는다. 소왕은 초나라를 달아나 운鄖이라는 소국에까지 이른다. 평왕은 주변 소국에도 악명을 떨쳤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운공鄖公의 아버지도 평왕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운공의 동생 회懷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평왕이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 자식을 죽여도 괜찮지 않은가?"
<오자서열전>이 하나의 장엄한 복수극인 동시에 통속적인 복수로 귀결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흥미롭게도 ‘아버지의 원수’를 처단하겠다는 동생 회의 성화에 운공은 소공을 데리고 나라를 도망친다. 이들은 수隨나라 땅으로 도망치는데 오나라 병사들은 수나라 사람들에게 초나라 사람의 악행을 들먹이며 소왕의 신변을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 악행이 지나쳤으니 그를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수나라 사람들은 소왕을 오나라에 넘기지 않는다. 점쳐보니 불길하다는 이유로.
사마천이 이 장면을 굳이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역시 상대의 죽음으로 복수를 매듭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원수는 원수를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 이 당연한 법칙 앞에 복수는 종종 눈을 감는다. 복수가 허망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원한은 격정을 낳고 그 격동하는 감정이 생을 추동하는 힘이되기도 하지만 대상을 죽여버리면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다. 복수가 거대한 몰락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신포서에게 남긴 오자서의 말은 여러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과연 오자서는 자신의 복수를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어떤 미진함이 남은 채로 여전히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까. 아마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역시 평왕이 눈 앞에 살아 있거나 소왕을 붙잡았다면 서슴지 않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평왕은 이미 죽었고 소왕은 달아났다. 말 못 하는 시체를 매질하며 그는 깊은 허망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일모도원日莫途遠’이란 십 수년 만에 복수를 거의 매듭지었으나(日莫) 그것으로 자신의 삶이 그치지 않겠다(途遠)는 의지의 표현은 아니었을지. 한편 그렇기에 그가 이토록 참혹한 짓, 도행역시倒行逆施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이제 복수에 그치지 않고, 과거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복수의 칼에 제가 다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오자서열전>은 오자서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 중간에 헤어졌던 태자 건의 아들 승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공자 승은 이후 오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초나라로 돌아간다. 초나라 변경에 살면서 정나라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치려 하였으나 영윤令尹 자서子西가 강화를 맺고 돌아오자 복수를 할 길이 사라지고 만다. 결국 승은 자서를 죽이고 나아가 왕을 시해하려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 충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승의 복수는 결국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고 말았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이야기 끝에 승의 복수를 끼워 넣음으로 단순한 복수의 충동이 낳는 허망한 결말을 이야기한다. 거꾸로 오자서야 말로 원한의 치열함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람이라고 할만하다. 사마천이 보기에 그는 불꽃같은 사람(烈丈夫)이었다. 사마천은 그의 이야기를 전하며 '애닯다(悲夫)'고 말한다. 오자서의 이야기를 결코 남의 이야기로 흘려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구우일모九牛一毛가 되지 않겠다고, 허망한 삶으로 끝내지 않겠다며 치욕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었던 그가 아닌가.
일찍이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어찌 땅강아지나 개미와 차이가 있었겠는가?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니 슬프구나(悲夫)! 바야흐로 오자서는 강수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마음속에 어찌 잠깐인들 [초나라의 수도] 영을 잊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것을 참고 견뎌 내어(隱忍) 공명을 이룰 수 있었으니 강인한 대장부(烈丈夫)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오자서열전>
참고 견디어 내는(隱忍) 삶이 여기에 있다. 이것은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표현이기도하다. 집요함의 결과. 이제 또 다른 집요함을 만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