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힘 2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초나라 평왕을 섬겼다. 평왕은 앞서 영왕을 죽이고 임금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초나라 조정에서 낯선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초장왕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아들 공왕共王과 손자 강왕康王이 차례로 왕위에 오른다. 강왕에 이르러 장왕의 손자들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
강왕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걸렸는데, 그의 동생 위圍가 이 소식을 듣고는 갓끈으로 형을 죽이고 강왕의 아들, 자신의 조카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그가 영왕靈王이다. 그는 요역을 일삼아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의 동생 비比가 반란을 일으켜 태자, 영왕의 아들을 죽이고 잠깐 왕위에 오르나 곧 실각하고 만다. 결국 막내였던 공자 기질棄疾이 형, 영왕과 비를 모두 죽이고 왕위에 오르니 그가 평왕平王이다.
이런 어지러운 배경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태자의 아내로 삼으려 했던 진秦나라 여인이 문제였다. 간신 비무기는 진나라 여인의 미모가 상당하니 그를 태자 건의 아내로 삼지 말로 평왕 자신이 취하라고 부추긴다. 평왕은 비무기의 말에 따라 진나라 여인을 아내로 취하고 이 일로 태자와의 사이가 틀어진다. 이후 평왕은 태자를 폐하고 진나라 여인의 아들을 태자로 삼는다.
형제들 간에 왕위를 두고 다투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부자간의 다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경우 선왕의 견제를 받는 첫째 아들이 화를 입는 경우가 태반이다. 평왕 역시 태자 건을 견제하였고, 태자를 해치려는 생각도 품는다. 이때 태자 한 사람뿐만 아니라 태자의 세력 전체가 척결 대상이 되기 마련.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는 태자의 스승으로 그 역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태사는 달아나나 오사는 붙잡힌다. 후환을 두려워한 간신 비무기는 이참에 그의 두 아들도 함께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사에게 두 아들을 부르라고 하자 오사는 이렇게 말한다.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내가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이지만 오운(오자서)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 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가 오게 되면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사로잡힐 줄 알기에 틀림없이 오지 않을 형국입니다."
<오자서열전>
상황을 보면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형 오상은 아버지의 명을 따라 평왕에게 가고, 그의 동생 오운 -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며 도망친다. 여기서 흥미롭게 읽어야 할 것은 형 오상의 사람됨에 대한 평가이다. 오사는 오상의 사람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仁하니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대체 인仁이라는 덕목과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
<초세가>에도 이 장면이 똑같이 보이는데 오사의 말이 더 자세하다.
“오상의 사람됨은 청렴하고 절개를 위해 죽을 수 있고, 자애롭고 효성스럽고 어질어,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준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올 것이며 자신의 죽음은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오서의 사람됨은 지혜롭지만 계략을 좋아하고, 용기는 있지만 뽐내기를 좋아하여, 오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 것이므로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초나라에 근심거리가 되는 것은 반드시 이 아이일 것입니다."
<초세가>
<초세가>의 표현을 빌리면 ‘인’이란 청렴하며, 절개를 위해 죽을 수도 있고, 자애롭고 효성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죽음을 불사하는 정신! 첫째 오상은 사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초세가>에는 형 오상이 오자서에게 남기는 말이 남아 있는데 그 말은 이렇다.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데도 가지 않는 것은 ‘효’가 아니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꾀(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을 헤아려 일을 맡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度能任事 知也) 나는 효를 따라 죽겠으니 너는 도망가 후일을 도모하라.
<초세가>에 나오는 오상은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좇는다. 아버지를 따라 죽으며 효를 추구하는 동시에, 동생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맡긴다. 그러나 <열전>에 기록된 형의 모습은 다르다. 그는 자신이 가더라도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죽음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는 오자서의 항변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여기에 덧붙이는 말, "아버지가 살기 위해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고 나중에 이 치욕을 씻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한스럽다."
<사기열전>은 의도적으로 오상의 선택을 소극적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그러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오자서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었을 테다. 실제로 오자서에 얽힌 이야기는 <사기> 이전의 기록물에서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사마천은 <오자서열전>을 통해 오자서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야기에는 더 이야기가 붙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기> 이후의 기록을 보면 이후에 오자서의 도망을 도와준 어부가 스스로 배를 뒤집어 목숨을 던지는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상상한 내용이 더해졌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탈출하면서 국경에서 경비하는 관리에게 붙잡혔을 때가 바로 그것이다. 오자서가 말하기를, “국왕이 나의 포박을 명한 것은 내가 아름다운 진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제 국왕 앞에 끌려가면 네가 진주를 빼앗았다고 말해야 할텐데, 그래도 괜찮겠나?”라고 하였다. 경비하던 관리는 놀라서 오자서를 놓아주었다.
이것은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 이것을 보면 오자서 설화는 고대 중국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 계속 실제 이상으로 과정되며 부플려진 것이다. <사기>의 <오자서열전>은 그 설화가 한 차례 정리될 무렵의 작품으로 그중 어느 부분이 실제 기록인지 오늘날 그것을 분석해 내기가 곤란하다. <사기>에 기록된 내용 중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적지 않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 미야자키 이치사다, 다른세상. 166-167쪽.
그렇다면 대체 왜 오자서의 이야기는 그처럼 살을 붙여가며 전해 내려온 것일까? 그것은 복수를 완성하는 그의 이야기가 가진 매력, 나아가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당대의 사람들은 물론 후대의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은 아닐까? 한편 그런 격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까닭에 형 오상의 선택은 덜 주목받았을 것이다.
형 오상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초나라 사자에게 맡긴다. 사자는 오자서마저 붙잡으려 하나 오자서는 활을 당겨 사자를 노리고 그 틈에 도망간다. 이렇게 오자서의 방랑이 시작된다. 더불어 오자서에게는 지울 수 없는 꼬리표가 붙었다. 아버지와 형을 저버린 것은 물론 태어난 나라, 초나라를 버렸다는.
이렇게 오자서는 인물을 보면 유가의 통념과는 영 거리가 먼 인물이다. 형과 달리 그는 효를 버린 인물이다. 그뿐인가? 그는 자신의 조국을 버리고 이웃 나라로 투항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웃나라의 군대를 끌고 자신의 조국을 친 인물이다. 충효忠孝의 윤리에서 보자면 오자서는 극단에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자서의 삶을 대체로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자서의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르게 보자면 오자서야 말로 아버지의 복수를 이룸으로 효를 실천하였으며, 자신의 나라(吳)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인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