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힘 3
인仁하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효孝를 실천하겠다는 형 오상은 유가儒家를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논어>에서는 제자 재아의 말을 통해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재아가 물었다. "인仁한 사람에게 '우물에 사람(仁)이 있다'고 하면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는 가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를 빠뜨릴 수는 없다. 속일 수는 있지만 그를 해칠 수는 없다."
<논어> 옹야 24
재아의 질문은 이렇다. 인仁하다는 사람은 우물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속에 들어갈 사람입니다. 속임수에 쉽게 속아 넘어갈 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도 쉽게 던지지 않겠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어떻게 그렇겠느냐며 우물 가까이 가도록 할 수는 있으나 그를 우물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간단히 속일 수는 있으나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마천은 재아와 공자가 주고받은 이 내용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간단히 인仁하다는 평가와 더불어 죽을 곳을 자처하여 가는 사람으로 오자서의 형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마천의 시대, 한무제漢武帝의 통치기간에 유가가 얼마만큼 영향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존에는 한무제 시기에 이르러 도가道家, 특히 황로학黃老學과의 싸움을 끝내고 유가가 본격적인 체제의 통치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 주였다.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 한무제가 제창했다는 이 말은 거꾸로 자유로운 학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다른 제자백가가 일소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점차 유가로 흡수되었고, 마찬가지로 유가가 체제의 이념으로 자리 잡는 데는 이후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입장에 귀 기울이는 편이며, 이러한 배경 위에서 사마천의 선택과 입장을 상상해 본다. 자율적인 사상의 흐름이 힘을 잃어가는 시대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그러한 시대의 흐름과는 다른 인물들을 직조함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저항한 것은 아닐지.
사족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사마천은 어째서 이처럼 거대한 복수극 뒤에 <중니제자열전>을 놓았을까? 물론 공자는 앞 뒤로 언급되는 오자서와 상앙 사이에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제자들이 오자서와 상앙 사이에 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의 <노자한비열전>에서 볼 수 있듯 사마천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열전의 인물을 기술하되 꼭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르게 배열할 수도 있었다는 말씀. 오자서를 통해 보여주는 폭풍 같은 삶, 더불어 상앙을 통해 보이는 진나라의 활발한 개혁. 그 사이에서 <중니제자열전>을 읽노라면 마치 쉼표처럼 느껴지는데, 여기에는 저자 사마천이 숨겨놓은 어떤 의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쓸데없는 질문은 아닐까? 그러나 사마천의 글, 특히 <열전>은 ‘욕망의 글쓰기’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그 실체를 보려면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은, 혹은 언뜻 모습을 비치는 사마천의 욕망을 새겨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읽는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일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역사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것일 테지만, 거꾸로 사마천은 그러한 글쓰기를 통해 시대의 실상, 사건의 사실을 묶은 게 아닌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음으로서의 시대의 본모습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사기>가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나 시대의 모습을 엿보는 창구로서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 테다. 그것도 여전히 ‘역사’라는 이름으로. 따라서 <사기>를 읽는다는 것은 거꾸로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오자서는 초나라에서 도망친 후 태자 건이 머물고 있던 송나라로 간다. 송나라에서 난이 일어나자 이어서 정鄭나라로 떠난다. 태자 건은 정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했으나 계획이 밝혀져 죽임을 당한다.
오자서는 결국 오나라로 달아난다. 그러나 도망은 쉽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거의 붙잡힐 지경이었다. 겨우 강에 이르러 한 어부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강을 건너게 된다.
오자서는 강을 건너고 나자 갖고 있던 칼을 풀어 어부에게 주며 말했다.
"이 칼은 100금의 가치는 될 테니 이것을 당신에게 드리지요."
그러자 어부는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법에 오자서 당신을 잡는 자에게는 좁쌀 5만 석과 집규(작위 이름으로 봉국의 군주 격임) 벼슬을 준다고 했습니다. [내게 욕심이 있었다면] 어찌 한갓 100금의 칼이 문제이겠습니까?"
[어부는] 받지 않았다.
<오자서열전>
강은 땅과 땅의 경계를 나누는 물리적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강은 숱한 이별을 낳는 공간이기도 하고(예: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로 상징되는 깨달음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했다.(此岸/彼岸) 그렇기에 어부는 비범한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훗날 초나라의 몰락을 보며 강가를 거닌 굴원이 있다. 그도 어부를 만난다. <오자서열전>의 어부가 오자서를 대번에 알아보았듯 <굴원가생열전>의 어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굴원의 고민을 듣는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중략)…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쫓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가생열전>
어부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러나 굴원에게는 그가 이른 곳이 그 세계의 끝이었다. 결국 그는 멱라강에 돌을 끌어안고 죽는다.
어부를 만난 사람이 또 있다. <장자: 어부>편을 보면 공자가 어부를 만나 가르침을 얻는다. 어부는 공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공자가 제자가 되기를 바라나 어부는 초연히 사라질 뿐이다. 공자는 어부의 지혜와 동떨어져 있다.
<논어>에 실려 있는 장저, 걸닉과의 대화는 공자의 난감함을 잘 보여준다. 이 대화에서 공자는 나루를 묻는다. 그러나 장저와 걸닉은 별 뾰족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이미 공자가 알고 있으리라는 것이 이들의 대답이다.
굴원은 강에 이르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공자는 강을 건너가지 못했다. 이들은 이 세계의 한계에 이른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오자서는 어부를 따라 강을 건넌다.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오자서. 오자서의 도강渡江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떤 단절,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다.
아버지와 형이 죽었다. 이들을 의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앞선 사마천의 질문을 던지면 이들의 죽음은 부당하다.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가 그른가? 하늘의 도를 기대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남는 것은 한 개인의 외로운 복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