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찢고 나온 사람들 2
변화는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낯선 것을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낯선 것을 생리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변화는 늘 어렵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새로운 길로 용감하게 발을 내디뎌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변화에 앞장선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결말이 달랐다는 점이다.
조무령왕은 일찌감치 변화에 앞장서 조나라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도 결말은 좋지 않았다. 그는 왕위 계승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궁에 갇혀 굶어 죽는다. <사기>에 따르면 '참새 새끼들까지 찾아내어 먹다가' 굶어 죽었다.
주부는 처음에는 맏아들 장을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오왜를 얻자 그녀를 총애하게 되어 (그녀의 궁을) 나오지 않은 것이 몇 년이 되었고, 아들 하를 낳자 태자 정을 폐위시키고 하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오왜가 죽자, 애정이 식어 이전의 태자를 불쌍히 여겨, 두 사람을 모두 왕으로 삼으려다가 오히려 꾸물대고 결정하지 못하였으므로 난이 일어나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죽게 만들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아니한가!
<조세가>
조무령왕은 일찌감치 자신이 늦게 얻은 아들 하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주부主父’라고 부르며 왕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애첩을 가까이하고 왕권을 견고히 하지 못해 결국 이렇게 보잘것없는 최후에 이르렀다. 흥미롭게도 <사기>에서는 이처럼 젊은 시절 강력한 권력을 지녔다가도 결국 참혹하게 몰락하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아놓았다.
본디 권력이란 그런 것일까? 그러나 사마천이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결과를 낳은 '우물쭈물함'일 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는 결단력, 과감하게 나아가는 삶들에 주목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몰락에 내던져지는 삶을 사마천은 결코 칭송하지 않는다.
이와는 전혀 다른 삶에 주목하자. 바로 인상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조혜문왕, 즉 무령왕이 오왜에게서 뒤늦게 얻은 아들을 섬긴 인물이었다. 그는 화씨벽和氏璧과 얽힌 이야기로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겼다.
화씨벽은 변화卞和라는 이가 찾아낸 옥을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옥은 신령스러운 물건이었다. 화씨벽은 크고 아름다워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였단다. 조나라 왕이 화씨벽을 손에 넣었는데 이 소식이 이웃 진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진나라 왕은 이 소문을 듣고 화씨벽과 성 열다섯 개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조나라 조정은 진나라 왕의 제안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두고 설전이 펼쳐졌다. 화씨벽을 건네주자니 성을 받지 못하고 옥만 빼앗길까 걱정되고, 그렇다고 주지 않자니 진나라가 이를 빌미로 전쟁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당시 진나라의 군사력은 조나라를 압도하고 있었다.
인상여는 화씨벽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하므로. 인상여는 현실적인 힘의 차이를 인정한다. 그렇다고 인상여가 진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겁쟁이는 아니었다. 설사 진나라에 화씨벽을 준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사신으로 보낼지 문제였다. 진나라의 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하릴없이 화씨벽을 빼앗겨버릴 수는 없지 않나.
인상여는 스스로 사신으로 가기를 자처하며 이렇게 말한다. '완벽귀조完璧歸趙', 성을 받지 못하면 온전히 화씨벽을 가지고 조나라로 돌아오겠다고. 이 고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흠 없이 온전한 것을 이르는 '완벽'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말 인상여는 완벽귀조에 성공했을까? 여태껏 이 말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성공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진나라 궁궐에 도착하여 진왕에게 화씨벽을 건네자 진왕은 화씨벽을 크게 반기며 주위 애첩과 신하들에게 자랑하였다. 그러나 정작 조나라에 성을 주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인상여는 옥에 흠이 있는데 이를 알려주겠다고 말하며 화씨벽을 건네받고는 이 상황을 뒤집어 버린다. 크게 성을 내며 진왕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화씨벽을 받아 들고 즐거워하던 진왕에게 찬물을 끼어 얹은 것이었다.
사마천은 인상여의 성난 머리카락이 관을 뚫고 나왔다고 전한다. 약국의 신하로서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약소국의 신하로 진왕의 비위를 맞추어도 모자랄 판에! 진왕이 화씨벽을 받고는 적당히 자신을 돌려보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자 그는 서슬 퍼런 목소리를 진왕을 꾸짖는다. 대체 이처럼 나를 욕되게 만들 수 있는가!
흥미롭게도 이 순간 인상여는 약소국 조나라의 신하로 진왕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자리에서 진왕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말은 이렇다. 조나라 조정의 여러 신하들이 화씨벽을 주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나는 대국의 왕이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니 그 말을 믿어야 한다며 신하들을 설득해 화씨벽을 가지고 왔다. 그것도 목욕재계하고 성의를 다하여. 그런데 지금 진왕은 이 귀한 옥을 두고도 아무런 예를 갖추지 않으며 도리어 자신을 욕보이고 있다. 그러니 이 치욕에 나도 옥과 함께 부서지겠다.
어떻게 보면 인상여의 이 모습은 지독히도 어리석어 보인다. 진의 조정에서 진왕을 상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는 게 아닐까. 진왕이 주변 사람을 불러 그를 제압하면 되었을 테니. 그러나 인상여는 협상에 앞서 무엇을 볼모로 잡고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저 말뿐이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그의 손에는 화씨벽이 들려 있었다. 그는 화씨벽과 자신의 목숨을 올려놓고는 진왕의 대답을 요구한다.
왕께서 만일 신을 협박하려고 하신다면 신의 머리는 지금 이 화씨벽과 함께 기둥에 부딪쳐 깨질 것입니다.
<염파인상여열전>
결국 진왕은 화씨벽이 깨어질까 두려워 인상여에게 사과하고 지도를 펼쳐 직접 열다섯 개의 성을 짚어주며 약속한다. 그러나 두 번 속을 수는 없는 법, 인상여는 진왕이 순간 자신의 돌발행동에 놀라 이렇게 반응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시간을 끈다. 화씨벽처럼 귀한 물건을 받을 때에는 닷새 동안 재계해야 한다며. 진왕은 인상여의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그를 영빈관에 머물도록 한다. 화씨벽에 걸맞은 예를 갖추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상여는 사람을 시켜 몰래 화씨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내고 홀몸으로 진왕을 대한다. 진나라가 먼저 성을 내어주면 화씨벽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말하면서. 게다가 자신이 죽을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으니 '탕확湯鑊', 가마솥에 삶아 죽는 형벌을 청한다며. 이런 인상여를 두고 진왕과 신하들을 헛웃음을 지었다고 사마천은 기록해놓고 있다. 인상여의 손에 놀아난 꼴이 되었으니 진왕의 마음은 어땠을까.
진의 신하들은 인상여를 죽이자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진왕은 그렇게 속이 좁은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인상여를 죽여버리면 아무런 실리를 얻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조나라에게 명분을 만들어줄 수도 있는 셈. 결국 인상여를 극진히 대접하여 조나라로 돌려보낸다. 화씨벽이 온전히 돌아왔을 뿐 아니라 인상여 자신도 무사히 돌아왔다. 그것뿐인가? 화씨벽을 둘러싼 일종의 외교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사마천은 인상여가 지혜와 용기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 칭송한다. 완벽이란 이런 인물을 가리키는 말일 테다. 인상여는 지혜만 있고 실천한 기개가 없는 인물도, 용기만 있고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인물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