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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04. 2021

장자씨 헛소리도 잘하시네 2

우화로 읽는 장자 - 제물론 1/2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이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보였어. 옆에서 서 있던 안성자유가 말했지. "어찌 된 일인가요? 모습은 마치 마른나무와 같고 마음은 마치 죽은 재와 같습니다. 지금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어제 책상에 기대어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남곽자기가 말했지. "좋은 질문이구나.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잃었는데 너는 그것을 알겠느냐? 너는 사람의 피리 소리는 들었어도 땅의 피리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지. 땅의 피리 소리를 들었다 하더라도 하늘의 피리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을 게다."


"무슨 뜻인지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대지가 숨을 내쉬는 것을 바람이라 부르지. 바람이 일지 않을 때도 있지만, 바람이 일면 모든 구멍이 울부짖는다. 휘익휘익 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테다. 깊은 숲 속, 백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나무에 여러 구멍이 있어. 어떤 것을 코 같고, 어떤 것은 입 같고, 귀 같고, 눈 같지. 술잔 같은 것, 절구통 같은 것도 있어. 웅덩이 같은 것도 있고 구덩이 같은 것도 있어. 아아 우우 호통치는 것 같기도 하고, 쉬익 휘익 성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이 여이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낄낄 깔깔 웃는 것 같기도 해. 앞에서 위잉 소리가 나면, 이어서 휘잉 하는 소리가 뒤따르지. 산들바람은 작게, 하늘바람은 크게 세상을 울리지. 아무리 사나운 바람이라도 멈추면 구멍들은 텅 비어 있을 뿐이야. 이윽고 흔들흔들 살랑살랑 소리가 잦아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땅의 피리 소리라는 것은 여러 구멍에서 나는 소리이고, 사람의 피리 소리란 퉁소에서 나는 소리이군요. 하늘의 피리 소리란 어떤 것입니까?"


"갖가지 다른 것에 숨을 불어넣은 것인데도 제 스스로 그런 줄 알아. 저마다 각기 제 생각을 가지고 있다지만, 누가 불어넣은 것일까?"




큰 앎은 넉넉하지만 작은 앎은 쩨쩨하지. 큰 말은 담담하나 작은 말은 재잘거려. 잠을 자도 꿈이 어지럽고 깨어나면 마주치는 온갖 것에 얽매여 날마다 마음이 다투지. 그런데도 태연한 척, 괜찮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 작은 두려움에 쩔쩔매다가도 큰 두려움이 닥치면 넋을 잃어. 시비를 따지는 모습이 마치 화살을 쏘아대듯 날카롭고,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묵묵히 맹세를 지키듯 끈질기지. 그러다가도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날마다 조금씩 쇠락하기 마련이야. 그렇게 흘러가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늙어 고집을 피우면 마치 꽉 눌러 구멍을 닫아놓은 듯해.  마음이 죽음에 가까워지면 다시 일으킬 수가 없어.


희로애락, 근심걱정, 요사하고 변덕스런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 텅 빈 곳에서 음악이 나오듯, 습지에서 버섯이 피어나듯 그렇게 매일 우리 앞에 여러 잡생각이 오가는데 어디서 튀어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그 원인을 찾아보는 일은 그만두자 그만두어. 아침저녁으로 여러 마음이 오가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그런 마음이 없으면 내가 없겠지. 내가 없으면 그런 감정이 일어나지도 않을 테고. 이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아마도 '참된 주인(眞宰)'이 있을 테지만 그 자취는 찾을 수 없어. '참된 주인'이 움직이는 것은 확실한데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아. 실재하지만 형체는 없는 거야. 몸에는 백여 개의 뼈마디,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가 있어. 나는 그중에 무엇을 특별히 아껴야 할까? 너는 모든 것을 다 똑같이 좋아하고 있어? 아마 특별히 마음 가는 게 있겠지. 몸의 모든 부분은 신하나 노비처럼 부수적인 걸까? 이 부수적인 것끼리 서로 다스릴 수는 없을까? 번갈아 임금 노릇하고 신하 노릇 한다면? 아니, 참된 임금(眞君)이 있겠지. 그 실체를 찾던 찾지 못하던 그 참된 것에 더하는 것도 덜어내는 것도 없어. 


한번 이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수명을 다하도록 하자. 다른 이들과 서로 부대끼고 치이며 살아가면 날랜 말이 달리듯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 그렇게 수명을 다하면 애닯지 않겠어? 죽을 때까지 힘써 일하더라도 뭔가 이루어 냈다며 내세울 것이 없지. 고달프고 힘들지만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슬프지 않겠어? 죽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렇더라도 무슨 이로운 게 있겠어. 몸이 늙어가면 마음도 똑같이 늙어가는 걸. 이게 가장 슬픈 일이지. 




사람의 삶이란 정말 이처럼 어리석은 것일까? 나만 홀로 어리석을 뿐, 어리석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걸까? '통념(成心)'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삶의 기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변화를 알고 마음으로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거야. 어리석은 사람도 삶의 기준이 있겠지. 통념을 따라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거야. 통념 없이 옳다 그르다를 따진다면 오늘 월나라로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야. 이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없는 것을 있다고 한다면 옛날 신묘한 능력을 가진 우임금도 알 수 없을 텐데 나라고 어떻게 알겠어. 


말은 공기를 내뱉는 것이 아니야. 말에는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또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말이라면, 그 말에는 메시지가 있는 걸까 메시지가 없는 걸까? 아마도 새소리와는 다르겠지만 그 말을 새소리와 구별할 수 있을까. 구별할 수 없을까. '도'는 어디에 감춰져 참 거짓이 있고, 참된 말은 어디에 감춰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까? '도'는 어디로 사라졌기에 참된 말이 없고, 참된 말은 어디에 있기에 논쟁이 끊이지 않을까. '도'는 보잘것없는 통념에 가리어지고, 참된 말은 화려한 수사에 가리어지는 거야. 그렇게 유가와 묵가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고 있어. 한쪽에서 틀린 것이 다른 쪽에서는 옳고, 한쪽에서 옳은 것이 다른 쪽에서는 틀려. 다른 쪽에서 틀렸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우기고, 다른 쪽에서 틀렸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우기지. 이런 우격다짐 보다 참된 지혜가 낫지.


모든 것을 '저것이다'라고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것이다'라고도 할 수 있어. '저것이다'라고 하면 알 수 없던 것도 '여기'에서 시작하면 알 수 있지.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 "'저것이다'는 '이것이다'에서 나오고, '이것이다'도 '저것이다'에서 시작한다." '저것이다'와 '이것이다'가 함께 생겨난다는 말이야. 그런데 함께 생겨나는 것은 함께 사라지고, 함께 사라지는 것은 함께 생겨나지. 옳다고 하면 옳지 않다는 것이 있고, 옳지 않다고 하면 옳다고 하는 것이 있어. '맞다'에서 시작하는 것은 '틀리다'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고, '틀리다'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다'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아. 그래서 성인은 그렇게 하지 않아. 다만 하늘에 비춰볼 뿐이야.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는 것이야. 그러면 '이것이다'가 '저것이다'가 되고, '저것이다'가 '이것이다'가 되지. 저쪽에도 옳고 그름이 있고, 이쪽에도 옳고 그름이 있어. 그럼 '저것이다'와 '이것이다'의 구분이 있는 걸까. '저것이다'와 '이것이다'의 구분이 없는 걸까? '저것이다'와 '이것이다'가 서로 대립하지 않는 것, 이것을 도추道樞, '도'의 회전축이라 할 수 있어. 회전축은 중심에 있어서 끝없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지. '맞다'도 끝이 없고 '틀리다'도 끝이 없어. 그러므로 '참된 지혜가 낫다'라고 말했던 거야. 




* 매주 목요일 메일을 통해 장자 번역을 나눕니다. 메일링을 신청해주세요. https://zziraci.com/mailing


* 번역문은 원문과 함께 편집하여 차후 <장자씨 헛소리도 잘하시네(가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볼 예정입니다. 우화의 형식을 살려 대화체로 옮겼고, 딱딱한 직역보다는 가능한 의미가 통하도록 옮겼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사전구매 해주세요. https://zziraci.com/kuangrenzhuang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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