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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Feb 23. 2022

'가로 왈' 말고

아이들과 한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논어>도 읽고 <삼국지> 내용을 나누기도 합니다. 가끔 아는 내용이 나오면 매우 반가워합니다. 역시나 훈과 음을 붙여 읽어요. 왈曰을 보고는 '가로 왈'하는 식으로.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렇게 한자를 익히는 것이 좋은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도무지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글자도 아닌데, 뜻을 물어보면 모릅니다.


'가로 왈'에서 '가로'가 뜻일 테니 '가로세로'의 가로가 아니냐 합니다. '가로되'라는 식의 옛 표현을 쓰지 않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러 줍니다. '왈'이라 읽고 뜻은 '말하다', '이야기하다'라고. 


'유由'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미암을 유'라고 크게 소리치는데, 역시 뜻은 모릅니다. '말미암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까닭입니다. 차라리 '이유理由'라는 뜻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은 '제弟'를 두고 '아우 제'라 하기에 동생이라는 뜻이라 일러 주었습니다. 쓰지 않는 옛 말로 한자를 익히는 것은 수고로움을 더할 뿐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은 한자를 익힐 때 훈과 음을 붙여 읽습니다. 마법천자문 류의 책 때문이기도 할 테고, 한자 공부가 옛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식은 낡았을뿐더러 불필요하기까지 합니다. 매 글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뜻을 생각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까닭입니다. '백白'을 '흰 백'이라고만 익히면 '깨끗하다, 비어있다'는 뜻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아이들만 그런 건 아니예요. 한자 공부를 꽤 했다는 이들에게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훈과 음을 함께 익히는 버릇은 글자가 가진 뜻을 골똘히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현자賢者와  인자仁者의 차이가 그렇습니다. 현賢과 인仁을 모두 '어질다'라고 새기므로 도무지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논어>, <맹자> 따위를 읽은 사람도 이 두 차이를 잘 이야기하지 못하곤 합니다.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질 현', '어질 인'이라 외웠기 때문입니다. 현賢은 능력을 인仁은 인품을, 인仁은 최상의 인격을 의미하나 현賢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간과됩니다.


따라서 '가로 왈'이라 하지 말고 '(왈): 말하다, 이야기하다'라고 표기해야 합니다. 교안을 만들면서 한자 아래에 음을 달고 뜻을 적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양한 쓰임에 따라 글자 하나하나가 가진 풍성한 의미를 두루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해보면 제법 많은 쓰임을 생각해냅니다. 일상에서 쓰이는 뜻을 두루 생각해야 글자 하나하나가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을지요.


그러니 한자를 익힌다면 훈과 음으로 외는 것을 그치기 바랍니다. 음을 표기하고 뜻을 따로 적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 之(지) : 1)~의, 2)그것(대명사), 3)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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