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파서당 책과 글 <천자문>
마을 아이가 <천자문>을 배우고 있었어요.
읽기 싫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하늘은 저렇게 파아란데,
'천天'이라는 글자는 왜 푸르지 않은 거야!
이러니 읽기 싫지."
이 아이가 어찌나 똑똑한지 창힐을 굶주려 죽일 정도입니다.
<창애蒼厓에게 답함 - 연암집>
연암 박지원이라고 들어보았나요? 조선 정조 시대의 인물입니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글을 쓴 인물이었어요. 청나라 황제의 생일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사신으로 먼 여행길을 떠나 '열하'라는 곳까지 다녀왔어요. 그 내용을 <열하일기>라는 글로 담아내기도 했어요. 그런가 하면 <호질虎叱 : 범의 꾸짖음>, <양반전>과 같은 재미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창애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을 아이 이야기를 합니다. <천자문>이라는 책을 읽으며 투덜거리는 아이가 재미있었나 봅니다. 하늘을 뜻하는 '천天'이라는 글자가 푸르지 않아 책을 배우기 싫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불평이냐며 혼을 낼 수도 있겠지만, 박지원은 그 아이가 매우 총명해서 '창힐'이라는 사람을 굶어 죽일 정도라네요. 창힐은 저 먼 옛날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인물입니다. 그는 사물의 모양을 따라 글자를 만들었다고 해요.
실제로 많은 한자는 사물의 모양을 그림으로 옮기고, 이 그림을 다시 글자로 만든 것입니다. 이를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해요. 모습을 본떠(象形) 만든 글자(文字)라는 뜻입니다. 글자를 보면 자연스레 그 글자의 뜻을 떠올릴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산山'이나 '목木'과 같은 글자가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여러 글자가 있습니다. 창힐은 이렇게 모양을 따라 글자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색은 담아내지 못했네요. '山'을 보면 산이 보이고, '木'을 보면 나무가 보이는데, 하늘이라는 글자 '天'은 그냥 시커멓기만 합니다.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자인데... 왜 이리 익히기 싫은지.
이 아이가 배운 <천자문>이라는 책은 네 글자씩 글을 엮어 총 천 개의 글자를 익히도록 만든 책을 말해요. 지금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답니다. 헌데 <천자문>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글자가 '천天'이예요. 이 아이의 불만이 좀 의아합니다. 책을 한참 읽다 불평을 늘어놓은 것이라면 공부가 힘들어 그렇겠거니 생각할 수 있어요. 헌데 책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글자를 보고 불평을 늘어놓는다니. 공부하기가 그다지도 싫었나 봅니다.
<천자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하늘은 컴컴하고 땅은 누렇고 우주는 넓고 아득하구나." 멋지지 않나요? 하늘과 땅, 우주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시작한다니! 이 처음 시작은 워낙 유명해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거예요.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이런 식으로. 한편 옛 서당의 아이들도 책 읽기가 싫어서 그런지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답니다.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한자漢字는 '음'과 '뜻'으로 나뉘어요. 무슨 이야기냐면 글자를 보아도 어떻게 읽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글자는 소리를 글자로 만든 것이어서 글자를 보면 그대로 읽을 수 있어요. '긐ㄹ#人ㅓ 욯롷겧 쓰어두우 햔큑샤럄욘 일쿨술이찌용' 글자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뜻이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헌데 한자는 그렇지 않아요. 읽는 소리가 따로 있고 뜻이 따로 있습니다. 예를 들어 '天', 이 글자는 하늘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우리 말로는 '천'으로 읽어요. 중국어로는 '티엔 (tiān)'이라 읽지요. 일본어로는 '덴(てん)'입니다. 비슷한데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하늘 천'이라는 식으로 뜻과 음을 따로 익히게 되었어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한자를 익히는 것에 반대해요. 왜냐하면 '天'에는 하늘이라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예요. 하느님이라는 뜻도 있구요, 임금이라는 뜻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자연이라는 뜻도 있답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도 있어요. 이처럼 한 글자에 여러 뜻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한자를 익혔으면 해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적어두어요 "天(천) : 하늘, 임금, 자연 ..."
글자를 모으면 글이 됩니다. '한자漢字'를 한 글자씩 모으면 '한문漢文'이 되어요. 단어가 아니라 의미를 전하는 하나의 문장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글이 모이면 '책冊'이 됩니다. '책冊'이라는 글자도 잘 보면 그림이예요. 길게 쪼갠 나무를 가죽끈으로 묶은 모양입니다. 보통 대나무를 잘라 책을 만들었다고 해요.
이렇게 나무 조각으로 만든 책을 어떻게 보관했을까요. 둘둘 말아서 보관했어요. 그래서 책을 세는 단위인 '권卷'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어요. 어때 글자에서 보이나요? 책을 말아놓은 것이. 오늘날 우리는 나무 조각으로 만든 책을 읽지 않아요. 우리는 종이로 만든 책을 읽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에는 전자책도 있어요. 그러나 책은 여전히 冊입니다. 한편, 책을 둘둘 말아 보관할 필요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세는 단위로 '권卷'을 사용합니다. 옛 흔적이 이렇게 우리말 속에 짙게 남아 있습니다.
한자와 한문을 익혀야 하는 이유도 비슷해요. 옛 선비들은 모두 한자 책으로 공부했어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편한 우리 글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여전히 한자 표현이 많이 남아있어요. 한자 표현을 쓰지 않고 우리말로만 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한자 표현을 쓰고 있어요. 이 글에서도 多數의 漢字 單語를 使用했어요. 한자 표현의 뜻을 알면 더 잘 사용할 수 있겠지요?
한자를 익히는 것을 넘어 책을 읽는 것을 권합니다. 옛 말이 오늘날까지 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듯, 좋은 책이 남긴 훌륭한 생각은 지금까지도 우리 생각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옛글을 읽으면 왜 우리가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 곰곰이 우리 생각을 돌아보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옛사람들이 즐겨 읽은 책을 소개하고 이 책의 훌륭한 문장을 함께 익힐 예정이예요. 그러면서 한자를 배우기도 합니다. 글이 문장이 되고 책이 되었듯, 우리는 책 속의 문장에서 글자를 익힐 거예요. 옛사람들의 다양한 책 속에 담긴 다채로운 이야기도 함께 나눕니다.
와파서당 책과 글 1강 교안입니다.
PDF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zziraci.com/wifi-seodang/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