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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l 12. 2022

인문학자는 무얼 먹고 사나

:: 인문학자가 맞나?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한다. 무슨 증명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건 없고, 제 꼴에 대한 질문이 솟아날 때면 적절한 답을 찾기 힘들다. 하긴, 설사 석사니 박사니 하는 학위로 인문학자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도 웃기다. 세상에 이름난 박사니 석사니 하는 인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인문학 생태계 안에서 제 위치를 명확히 찾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논문을 쓰지도 않고, 학회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반대로 논문을 읽지도 않고, 학회가 열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홀로 인문학자 입네 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


::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반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가끔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누군가 그러더라 왜 지역 사회에 기여를 하지 않느냐고. 나름 지식인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나름의 역할을 기대했는가 본데... 속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이 동네가 나에게 해 준 게 뭔데?"


:: 해방촌 거주 10년이 넘었다. 그렇다고 여기가 내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첫째는 언제든 씻겨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대가 오르면 언제든 떠나야지. 이 땅은 건물주님의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떠나도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 둘째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특성상 지역성이 과연 중요한가 하는 근본적 질문이 들기 때문이다. 용산2가동이라는 행정동도, 해방촌이라는 지역적  공간도 도시인의 삶을 설명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도리어 네트워크가 도시인의 삶을 구성한다. 온라인 비대면 모임은 선과 선으로 이어지는 네트워크적 일상을 더 촉진시켰다. 도시의 평면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 몇 년간 지역에서 여러 활동을 했다. 지자체 단위에서 진행하는 교육 사업, 마을 사업, 공동체 사업 등등. 강사료나 활동비가 내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별 관심이 없다. 간단히 말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활동비는 노동의 대가 치고는 너무 싸고, 강사료는 지식의 대가 치고는 너무 부족하다. 그나마 같은 강사료라 하더라도 도서관의 강의가 나은데, 지역사회에서는 늘 일상 속의 인문학을 바라기 때문이다. 어려운 거 하지 말아라, 힘든 거 하지 말아라. 두꺼운 책 읽지 말아라 등등.


:: 인문학은 일상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인문학자는 지역 공동체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지만 나는 그런 화사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식을 왜 인문학자에게 바라는가? 때로는 솔직할 필요가 있다. 학자는 본래 대단히 유아적唯我的이다. 제 혼자 신을 만나네, 이성을 탐구하네, 진리를 논하네 운운. 지역 공동체에 인문학자의 자리는 있는가? 그 쓸모를 운운하지만 얼마나 쉽게 씻겨나갈 삶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 사회에 인문학자 하나가 사라진다 한들 뭐 신경이나 쓰겠는가.


:: 결국 1인 사업자라는 생각에, 제 브랜드니 상품이니 따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매일 교안을 쓰고, 아이들을 모아 강의를 하고, 글을 정리하고 등등을 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파는 지식이 얼마나 세상에 이로운지,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효용감을 줄 수 있는지 늘 의문이다. 나는 널리 자랑하고 팔만큼 내 지식을 사랑하지 않는다. 비싼 값으로 팔면 좀 다를까?


::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생활문화시설 인문프로그램 인문협업자"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지역 인문 문화의 부흥, 일상과 함께하는 인문학 좋은 말들이 넘친다. 헌데 생각해보면, 미취업 인문전공자를 위한 지원 사업 아니었나? 문득 인문협업자들의 연배가 높은 것이 못마땅해 보였다. 30-40대 인문 전공자들은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들은 모두 안녕하신지. 그렇게 인문학자라는 명찰을 가슴에 품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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