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Mar 26. 2024

한자를 공부해야 할까?

안녕하세요?
기픈옹달님께서 한자를 공부하기엔 한자능력검정시험이 큰 의미가 없다는 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한자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 연락드립니다.
고등학교 때 한자공부만 해봤던지라(사실 그때 공부에 흥미가 없어 그마저도 잘 안했습니다) 다 잊어먹어버려서 기초적인 한자, 아니 그 이하도 다 기억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자공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답변 미리 감사드립니다.


: 은근슬쩍 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읽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무엇보다 경제적 보상 없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브런치를 방치해 두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다른 플랫폼에 정착하지도 못했고, 글을 써서 저장해 둘 곳은 필요하니 다시 브런치를 찾았습니다.


한 일주일 전 '제안'의 형태로 메일을 주신 분이 계셔서 공개적으로 답신을 적어봅니다. 짧게 단답으로 끝나지도 않을 것이고,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도 많으실 테니 그렇습니다. 개인정보가 없으니 메일 내용을 위에 붙였습니다.




https://brunch.co.kr/@zziraci/687


이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낱글자를 외는 공부는 쓸모없다. 특히 한자능력검정시험 등에서 요구하는 '훈-음'으로 외는 것은 한문 공부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래서 저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한자 말고 한문을 공부하라고. 


저도 편의상 종종 '한자'와 '한문'을 뒤섞여 쓰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한자'는 낱글자를 외는 공부를, '한문'은 옛 글을 읽는 공부를 말합니다. 낱글자를 기계적으로 외는 것은 재미도 없을뿐더러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예컨대 과거처럼 국한문혼용체로 쓰인 글을 읽어야 한다면, 음을 아는 것에 나름의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디 한자를 볼 일이 있나요. 한자를 읽는다고 아는 체를 하려면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가야 가능한 일입니다. 


공부는 공부 자체로 재미와 의미가 있기는 합니다만, 글자를 골똘히 탐구하는 게 아니라면 왜 한자를 공부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보통은 한자를 알아야 우리말을 잘 쓰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하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물론 우리글과 말에 한자 표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글자를 왼다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잘 쓰느냐 하는 건 아닙니다. 조금은 풍성하게 볼 수 있겠지만 낱글자를 외는 기계적인 공부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뿐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른바 한문을 꽤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말과 우리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를 왕왕 봅니다. 예컨대 '한문투'의 기묘한 문장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 번역은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합니다. 번역이 엉망이니 길게 주석이 붙고, 길게 주석이 붙으니 고전은 더욱 읽기 어렵고 버거운 글이 됩니다.


목적에 따라 다르겠으나, 뭔가 '공부'를 할 생각이라면 글자보다는 글을 읽으라 권하고 싶습니다. 글자는 글을 위한 도구일 뿐, 글자를 뚫어지게 본다 해서 뭔가를 깨우치는 일도, 뭔가를 새롭게 아는 일도 없습니다.




과거의 한자 공부란 그냥 무작정 쓰고 외는 것이었습니다. 욀 때까지 쓰는 것. 그러나 오늘날 과연 쓰기가 필요한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한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경우에는 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니, 쓰기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라면 복잡한 한자를 쓰며 익히는 것은 불필요할 것입니다.


하여 예전에는 필순도 중요하고, 육서니 하는 한자의 구조를 익히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파자, 글자를 쪼개 공부하기도 했고, 부수와 획수를 아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이 다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자를 공부한다면, 낱글자를 따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의 쓰임과 용례를 공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천天이라는 글자를 보고, 태반의 사람은 '하늘'이라는 뜻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천연天然, 천명天命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여기에는 자연이라는 뜻도 있고 하느님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여 글자를 하나씩 익힌다 하더라도, 기계적으로 훈과 음을 함께 익히는 것이 아니라 뜻을 추론하며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天(천) : 하늘, 자연, 하느님, 운명 ... 



작가의 이전글 붉은 별을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