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오락가락한다. 영 기운이 없어 보이다가도 은근히 활력이 비치기도 한다. 아침에 사료를 주었더니 조금 관심을 보인다. 방금도 사료를 주었더니 역시나 입을 댄다. 물론 많이 먹지는 못한다. 평소 먹는 양의 몇 분의 일로 줄었다. 가끔은 그냥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조금 먹으니 몸이 점점 야위어 간다. 어디까지 야윌까. 모르겠다. 품에 안으면 든든하던 그 모습은 되찾을 수 없겠지.
수술하기 전에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의사는 빈혈 수치를 이야기하면서 심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영 기운이 없기는 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초음파 감사 후 비장에 종양이 보인다 했다. 비장 절제수술을 해야 한단다.
복잡한 용어들, 수치들을 들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계속 되뇌었다. 피검사에 초음파까지 벌써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한 상황이다. 수술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용기를 내어 금액을 물어보았다. 비용이 어질어질하다.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지출할 수는 없지 않나.
중증 빈혈이라 수술을 위해서는 수혈을 필요하다 했다. 수혈을 하면 상태가 나아지겠지만 원인인 비장을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 문제가 생길 거라 했다. 나이 등을 생각하면 종양은 악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기약할 수 없는 미래가 눈앞에 펼쳐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꾸 숫자를 계산했던 것은 객관적이려고 하는 내 나름의 간절함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명 앞에서 값을 헤아리고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죄책감에 자책하면서 포기했다 마음을 고쳐먹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결국 책임의 한계는 숫자로 환산된다는 그 현실의 잔인함이 나를 휘둘렀다. 내 모든 것을 바쳐 너를 살리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나의 현실이 싫었다. 이것도 그것도 다 운명이라고 핑계를 대며 무시하고 싶었다.
중국 통장에 넣어둔 얼마 간의 금액이 생각났다. 여름 방학이 끝나면 여행에 쓰려고 모아둔 돈이었다. 그걸 쓰기로 한다. 위안화를 한화로 바꾸어 병원비를 대었다. 여차저차 돈을 끌어다 수술을 마음먹고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수술실에 들어가 영영 이별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수술을 마치고도 영 상태가 나쁜 상황을 맞는 것. 그 둘은 피하고 싶었다.
7월 말, 무더위를 지나며 이 계절을 함께 지내는 것을 최소한의 바람으로 삼았다. 가을까지 함께 보내면 좋고, 다시 새해를 맞으면 더 좋겠지. 수술은 다행히 무사히 마쳤다. 예상보다 입원 기간이 길어져 비용도 늘었지만 감내해야 할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일주일 뒤 조직 검사 결과를 들었다. 혈관육종, 예후가 아주 나쁜 악성 종양이란다.
평균 수명은 70여 일. 당장 이번 주가 될 수도 있고, 운이 좋아 6개월 넘게 살 수도 있지만 여튼 평균은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었기에 항암치료는 포기하기로 한다. 약 70여 일의 시한부 인생을 끌어안고 살기로 한 것이다. 수술 후 남은 흔적에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수액을 놓기 위해 다리에 털을 밀어낸 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털이 덜 자라기 때문일 테다. 민둥산이 되어 축 늘어진 뱃가죽도 슬픈 광경이다.
더위가 가고 새 계절이 왔다. 저녁이면 선선해지는 가을 문턱에서 시한부 삶의 끝자락을 마주하고 있다. 수술대 앞에서 갈등하고 고민한 덕일까. 언제든 끝이 있다는 것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게 눈에 닿지 않을 만큼 아득히 멀지 않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기약 없는 미래가 며칠이 될지 모르겠다.
수술을 앞두고 어질어질 한 상황에 홀로 마음을 먹었다. 든든히 먹어야지. 바쁘게 병원을 오가며 이것저것 챙기며 끼니를 건너다가는 더 판단을 그르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입에 뭐라도 집어넣고 생각할 것. 삐쩍 야위어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보내는 것을 보며 다시 마음먹는다. 건강하게 일상을 살 것. 좋은 이별이라는 것이 있을까. 언젠가 닥칠 황망함에 지나치게 당황하지 말 것. 그러려면 든든히 밥을 먹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