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연
기력이 없어 누워만 있다.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눈빛에 생기가 좀 보인다는 거다. 몸은 기운이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눈빛이 또렷해 보일 때가 있다. 얼굴 한쪽에 피주머니가 가득 차서 퉁퉁 부었다. 입이 지저분하다. 밥을 먹고 그루밍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럴 테다. 눈곱도 끼었다. 물티슈로 좀 닦아주는데 싫어하는 걸 알아 조금만 닦아주기로 한다.
갑자기 사라져서 어디 갔나 했더니 침대 밑에 들어가 있다. 고양이는 몸이 아프면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몸이 아프니 이것저것 귀찮기도 한 것이다. 어디가 아픈지 모르니 그의 도피를 마냥 서운해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기어코 끄집어내어 창문가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침대 밑보다는 깨끗한 공기를 맡으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밖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새소리를 들으면 흥분하기도 했다. 여느 고양이나 그렇지만 꽃돌이는 종종 밖이 그립지 않을까. 고양이 집사들이 들으면 뜨악할 이야기인데, 꽃돌이는 한동안 외출냥이였다. 한 여름날이 더워 창이며 문이며 활짝 열어놓고 지냈다. 이층 집에 살아 더위를 피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고양이들도 바깥에 나가 계단에 앉아 바람을 즐기곤 했다.
겁도 없이 골목을 누볐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곤 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으려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제 영역을 둘러보러 나가는 거다. 동네 길냥이와 어울리기도 했다. 가끔 외출을 하면 동네 길냥이에게 치여 내쫓기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있다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돌아보면 그냥 운이 좋았다.
밖에 나가서 만나기라도 하면 어찌나 반갑게 아는 체를 하던지. 때로는 제가 앞장서 집으로 함께 들어오기도 했다. 물론 성에 차지 않으면 결코 집으로 오지 않았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어찌나 재빠르게 달아나고 숨던지. 그때는 제풀에 질려 돌아오겠지 하며 그냥 집으로 발을 돌렸다. 기다리다 보면 잘 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가 영 없었던 건 아니다. 여름날이었다. 두 살인가 세 살 때의 일이다. 오후에 밖에 나갔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한 밤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비 때문이었을까. 밤이 되었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겁이 났다. 어디 길을 잘못 들었을까. 아니면 차에 치였을까. 아니면 누가 잡아갔을까.
새벽이 되어도 못 찾았다. 이틀째에도 못 찾았다.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었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도닥였다. 사흘 째 되는 날 새벽에 다시 찾았다. 이름을 부르며 찾았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큰길 건너 어느 창고 같은데에서 기어 나오더라.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차가 다니는 위험한 길인데.
목소리를 듣고 제 스스로 나오더라. 품에 안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잃지 말아야지.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 뒤에도 가출은 잦았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했지만 꼬박꼬박 집에 잘 돌아왔다. 여느 고양이처럼 가끔 이상한 것을 물어오기도 하고⋯ 함께 자고 아침 인사를 하는 식구로 그렇게 살았다. 낮에는 제각기 일터로 놀이터로 떠나고.
묘연猫緣이 있단다. 그래서 만났고 그래서 살갑게 살았다. 그 뒤로도 그날 새벽이 가끔 떠오르기도 했다. 간절함과 죄책감, 희망과 절망, 포기와 주저 사이에서 조심스래 이름을 부르며 한없이 걸었던 그 시간의 막막함.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그때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 품에 돌아온 것이, 언제든 곁에 있다는 사실이 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