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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감히, 여자가 집안일을?

오늘도 그날이 왔다. 일주일에 두 번 전쟁이 시작된다. 마룻바닥 무늬를 보호색으로 삼고 잘도 숨어있구나. 자세를 낮추어 볼을 바닥에 맞대어 보면 그들이 드러난다. 전쟁이다! 먼저 들어서 옮길 수 있는 폼롤러, 요가매트, 잡동사니들을 제거하여 그들의 은폐 엄폐물을 제거한다. 그리고 다이슨 8 청소기의 충전상태를 체크하고 거침없이 빨아들인다. 중간중간 낮은 포복자세로 바닥상태를 체크해준다. 주방부터 시작해서 현관까지 마치 마룻바닥 나뭇결을 빗질하는 심경으로 꼼꼼하게 청소기를 쓸어준다. 이제 창틀에 걸려있는 마른오징어 같은 녹색 걸레가 나설 차례이다.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그야말로 걸레와 물아일체가 되어 바닥을 닦아낸다. 다이슨 8이 미처 빨아들이지 못한 머리카락과 먼지들이 발견되면 하나하나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려준다. 이것이야말로 핀셋 청소라 할 수 있지. 걸레질까지 마무리하고, 걸레를 깨끗이 빨아내어 창틀에 널어주면 끝이다. 내 몸의 모세혈관까지 깨끗해진 기분이다~~


아내와 나는 작은 공방 카페를 운영한다. 안타깝게도 몸 상태가 악화된 후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었다. 사람을 상대하거나 능숙하게 음료를 만들고 디저트를 포장해주어야 하는데 나의 팔다리로는 사고만 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역할이 있다. 작은 공방 전속 아티스트, 시크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사연 많은 작가 역할을 하며 손님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제법 근사한 그림실력과, 거기에 클레이 아트 강사 자격증까지 직장과는 결별했지만 공방지기로는 손색이 없다. 야심 차게 성인 취미활동반을 이끌어 보겠다고 공방 카페를 시작했지만 재출혈의 후유증으로 손발이 다시 묶여버렸다. 지금은 아내의 응원과 지지로 개인작업을 하며 천천히 환자에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역할이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사연 많은 작가이고 또 하나는 김주부의 역할이다. 김주부는 청소와 빨래, 집안 설거지 쓰레기 분류의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카페의 설거지와 잡다한 일은 아직 아내의 역할이다. 사회생활을 활발히 해오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어 삶의 의욕을 잃었을 때, 아내가 나에게 사연 많은 작가의 역할을 주며 결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며 일깨워 주었다.

김주부의 역할은 스스로 찾아낸 나만의 영역이다. 아내는 하루 종일 카페 일에 시달리고 집으로 오면 또 집안일을 한다. 뭔가 아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 보았다. 느리긴 하지만 집안을 더듬거리며 다닐 수 있었고 천천히 하면 청소나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빨래는 손가락으로 버튼만 누르면 거뜬히 해낼 수 있지 않은가? 빨래 정리는 바닥에 펼쳐놓고 천천히 개면 끝이다. 속도전과 무관한 나의 세상에서는 서두름이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만으로도 나는 설렜다. 아내를 불러 앞으로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 할 것이고 일주일에 한 번 빨래를 할 것이다. 집안의 설거지와 쓰레기 분류는 내가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으름장도 놓았다

그 후로 충실히 나의 일을 하며 틈틈이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 요즘은 간단한 요리도 한다. 미리 재워놓은 닭가슴살과 채소를 구워내고 달걀프라이와 샐러드를 곁들인 다이어트 식단을 선보인다. 밥과 된장찌개도 가능하다. 나에게 집안일은 아내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고마움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뭐 도와줄 것 없어?”

아내의 질문에 나는 발끈한다.

“감히, 여자가 집안일을?”

씩 웃으며 오늘도 걸레를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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