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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식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환자가 되어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아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어지는 고통이 너무 싫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죽는 순간까지 아프고 싶진 않아서 편안히 죽을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곤 했다. 안락사가 가능하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 그리고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안락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안락사 조력 단체들도 몇몇 있는데 그 기준이나 비용들이 만만치가 않은 것 같다. 현실적으로 안락사는 불가능하다. 안락사를 제외하고 가장 이상적인 죽음은 자다가 죽는 것이라 생각된다. 자다가 죽는 것을 오복 중에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항상 잠을 설치는 나로서는 자다가 죽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아니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눈 깜짝할 새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봐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고도로 훈련된 킬러를 고용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자연재해 같은 불가항력에 의해 죽음에 떠밀리는 경우가 있겠지만 고통이 따르겠지. 여러 상상들을 하지만 역시 용기가 나지 않는다. 좋든 싫든 태어난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다. “태어난 김에 산다.” 또는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들이 마치 진리처럼 느껴진다.


다음 생에 대한 상상도 많이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다음 생이 있을 것 같다. 다음 생에 대한 확신은 아마 보상심리 인가보다. 이번 생은 이만큼이나 힘들게 살고 있으니 다음 생은 좀 더 건강하고 순탄하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어떻게 알겠는가? 더욱 힘들 수도 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면 죽고 나서 7번의 재판을 받게 되는데 판결하는 신들이 어찌나 깐깐한지 모른다.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으니 살인 지옥은 무사히 통과할 것이다. 하지만 나태 지옥은 무사히 통과하긴 힘들 것 같다. 사실 나태 지옥을 통과할 수 있는 영혼이 얼마나 있을까?? 살면서 한 순간도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라도 그 거대한 굴러가는 봉을 피해 한 바퀴는 뛰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본다면 지옥 순환 투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지인분께서 공기정화식물을 선물로 주셨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잎사귀가 넓고 두꺼운 수경재배로 키우는 식물이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주기적으로 물갈이를 해주며 정성스레 키웠다. 왠지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정화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아내가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몸에 좋지 않으니 잠을 잘 때 머리맡에 두지 말라는 걱정스러운 명령을 내린다. 그래…… 우린 전자파의 세상에 살고 있지.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그 식물을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그 옆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전자레인지가 보였다. 인간들도 전자레인지의 전자파는 피하려고 한다. 굶주린 배를 채운다며 전자레인지를 작동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배를 채웠지만 그는 전자파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자리 잡은 곳에서 주어진 환경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얼른 다른 창가로 옮기고 잎을 쓰다듬으며 분무기로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나름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 생은 식물로 태어났지만 다음 생에는 능동적으로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삶을 살길 바란다. 


지구의 모든 식물들에게 힘내라고 전하고 싶다. 아프고 힘들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이번 생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번 생은 끝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생에 대한 기대와 죽음에 대한 상상을 펼치고 있던 내가 작아진다.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식물들은 경험할 수 없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경험들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호전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다가올 경험들을 반기며 살아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소소하게 아내와 치킨과 탄산의 경험을 쌓아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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