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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가족 언어 영역 입문기

‘깨톡~깨톡!

뭐지?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 자동이체 알림인가? 나에게 전장에 참여하라는 길드의 부름인가? 

그렇다면 응당 그 부름에 응해줘야겠지! 자 ~장비를 챙겨 출발해보자!!

핸드폰을 현란하게 잡아들고 길드의 부름을 확인하려고 봤더니 긴 메시지다.


“힘내자 우리 같이~ 이제까지 잘 해 왔으니 또 한고비 이겨내는 거지~ 아픈 것도 소리내면 덜 아프다는 정설이 있데. 그래서 노인들이 '아구구~' 그러면서 덜어낸다는군. 요롱이도 아픈 것도 속상함도 밖으로 발산시켜 보내버려. 누구에게? 장인 장모(톡으로)한테도 하고 공기에게도 하고 부모에게도 하고 별에게는 사랑 담아 하고 등등... 뇌가 장기 중에서 가장 단순해서 버리면 금방 나가고 담으면 담고 하는 컴퓨터. 누구에게 미안할 것도 고마울 것도 없어. 가장 고마운 대상은 바로 요롱 자신~ 버텨내고 있는 요롱이지. 내가 갈까 하니 둘이서 잘 해 내리란 믿음에 여기서 기도하고 응원하면서 힘을 보탤게. 언제나 무엇이든지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고 요롱을 하루도 빠짐없이 아끼고 있는 장모가 있다는 걸 생각하고 우리 힘내자~.” 


재출혈이 되어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지들 중 하나이다. 참고로 장모님께서는 아내를 ‘별이’로 나를 ‘요롱이’라고 부르신다. 연애할 때 허리가 긴 인형을 아내에게 선물한 이후로 나는 ‘요롱이’가 되었다. 장모님께서 가끔씩 좋은 글귀나 응원의 말씀 또는 나를 닮은 꽃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곤 한다. 나를 닮은 꽃이라, 요리조리 사진을 뜯어보며 공통점을 찾는다. 외부활동을 전혀 할 수 없어서 집안에만 있어야 했기에 장모님께서 보내주시는 사진이 위안이 되곤 했다. 어느 날은 산책을 하시며 실시간으로 들꽃사진과 풍경사진을 보내주셨다. 마치 장모님과 함께 산책을 하는 느낌이 들어 감동을 받았고 그 사진들은 폴더에 따로 저장해서 종종 꺼내 보곤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구성원에게 이런 관심과 사랑의 표현을 받아 본적이 없다.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집안의 장남으로 살면서 가족구성원들간의 애정표현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환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가족들을 보면서 사랑과 배려는 표현되어야 하고 상대방이 느낄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겠는가? 


20대 초반에 강직성척추염에 걸려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지만,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장모님의 애정 가득한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 방법조차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 후로도 장모님의 지속적인 관심에 어떤 답을 보내드려야 할지 몰랐다. 아내에게 해독을 부탁하기도 하고 나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수능 언어영역 공부하듯이 어렵사리 답장을 보냈다. 장문의 응원의 말씀을 톡으로 받은 어느 날, 답장을 보내드리며 생각했다. 다른 이에게 좋은 말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수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나쁜 말들은 그냥 나오는 데로 막 그대로 질러버리면 그만이다. 좋은 말들은 단순히 멋진 언어의 조합이 아니다. 애정을 똘똘 뭉쳐서 배려라는 큰 마음으로 감싸 조심스럽게 내어 놓는다. 아내는 지인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정말 살갑다. 현란한 말솜씨로 포장된 립서비스가 아닌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따뜻한 말들을 건넨다. 마치 태어나면서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나는 이제서야 가족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아직 어색하고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 답장을 보낸다.


“요즘 날씨가 조금씩 풀려가는지 잠을 잘 자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일찍 눈이 떠져서 워킹머신에서 운동도 하고 샤워도 하고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만큼 분명히 느리지만 지금보다는 좋아지리라 믿고 있습니다~가끔씩 기분이 쳐지고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예전만큼 오래 지속되진 않습니다~좋은 생각도 자주하는 버릇을 들이면 그만큼 배로 늘어남을 느끼며 별이와 행복한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제가 좋은 기운을 드릴 수 있도록 제 스스로 더욱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항상 감사 드립니다~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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