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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역지사지

나의 학창 시절 나는 남중, 남고에서 야수들의 무리에서 거칠게 남성미를 겨루었다. 남자다움의 겨루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노래방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감정을 폭발시키기 위해 너도 나도 고독하고 슬픔에 젖은 락발라드에 취해 살았다. 신성우의 ‘서시’라는 노래 역시 이런 야성미를 발산하기에 충분한 야수 공통 18번 노래였다. 고독한 수컷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곱씹어 보면 인간관계의 기본자세의 깨달음을 주는 주옥같은 노래이다.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 드을~’

바로 역지사지를 통한 상대방의 이해를 알려주고 있는 노래인 것이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남녀의 기준과 가치는 다르기 마련이다. 단순히 조건이 맞고, 서로의 단편적인 모습에 반해서 결혼한 후,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민낯에 실망하기도 한다. 또는 각자 다른 기준과 가치관으로 인해,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제껏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해라는 과정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서로의 처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획을 완벽히 세워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타입이고 나는 성격이 급해 계획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속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를 닦달하는 상황들이 많았고 아내는 항상 나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청소에 대해서도 바닥에 머리카락이나 먼지가 보이면 바로바로 치워버리는 나는 스케줄을 정해놓고 청소를 하는 아내가 탐탁지 않았다. 그냥 더러운 게 보이면 그때그때 치우면 되지 않나?  아내가 게으른 사람이라 생각하고 항상 잔소리를 하곤 했다.


뇌수술 후, 복시가 심하게 생겨 어지럽고, 이명과 안면마비로 아내와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아내는 안방에서 지내고 나는 거실에서 지냈다. 아내는 내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였기 때문에 거실에서는 발걸음을 조심하며 다녔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냥 스윽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데 뭔가가 발가락 사이에 걸려 끌려왔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 뭉치였다. 깜짝 놀라 자세를 숙이고 바닥을 살펴보니 우와~ 먼지와 머리카락, 각질들이…… 복시 때문이구나! 그 순간 머리를 한방 맞은 듯했다. 아내는 안구가 선천적으로 타원형으로 생겨서 난시가 심하다. 그렇구나. 안 보여서 그랬구나. 그래서 스케줄을 정해서 청소를 하는구나. 잠시 넋이 나가 있었다. 아마 복시가 생기지 않았다면 죽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주부가 되어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는 요즘도 아내는 내 눈치를 살피곤 한다. 침실을 정리 못해서 미안하다며 연신 굽신굽신 사과를 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들들 볶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욱하지 말라고 벌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론 아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그 배경을 더 고민해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긴 힘들어 버릇처럼 목소리가 경직되긴 하지만 그때마다 발가락에 엉켜 붙은 머리카락을 떠올린다. 


장모님께서 부부는 이심 이체(二心二體)라고 하셨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앞으로도 익숙함에 속지 않고 아내의 입장에서 배려할 수 있는 남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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